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irst Penguine Jan 21. 2024

재택근무자의 귀촌 일상

숨 막히는 일몰, 계산 없는 관계들, 시골의 텃세에 대해 생각해 보다

그래서, 시골 텃세는 없어?

텃세는 어디나 있고 사람 사는 곳 다 똑같지 않나요? 


온갖 옵션을 저울질하는 쌉TJ, aka 선택장애자는 큰 결심이 필요한 일에는 에라 모르겠다 모드로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편이다. 인생 경험상 깊게 생각하고 결정한 일보다 기대 없이 저지른 일들에서 더 좋은 결과를 뽑아낸 적이 많았기에 이번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잘 풀릴 거니까. 그렇게 결정에서 이사까지 정확히 일주일이 걸린 나의 귀촌 일상이 마냥 동화 속 이야기일리는 없지만 최소한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지인의 지인이 전하는 괴랄한 이장님 스토리, 마을이 합심하여 귀촌민의 땅을 맹지로 만들어 버리는 상황들. 나도 지금까지 뉴스에서만 보고 들은 상황들이다. 


올해로 오십이 되는 우리 부부는 마을에서 가장 어리다. 평생 장손 장녀로 살아온 우리는 귀촌을 하고 나서야 인생 처음 막내 대접을 받고 있다. 서울에 비하면 턱없이 저렴하지만 이곳에서는 비싼 월세에 살면서 텃밭 하나 제대로 못 가꾸어 겨우내 먹을거리도 준비하지 못한 게 분명한 우리가 궁금하실 테다. 


우리가 이사한 마을은 절반 이상 할머니 혼자인 가구이다. 그마저도 올 겨울 들어 한 분은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고 들었다. 이사하고 두 달이 지났을 적에도 이웃 주민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나는 재택근무 중이라 주중 낮시간에는 집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내가 일어나는 아침 7시이면 할머니들은 텃밭 농사를 끝내고 휴식에 들어가는 시각이다. 하루종일 우리의 교점은 거의 없는 셈이다.


어느 날 읍내의 수영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운전해서 집에 오는 길이었다. 컴컴하고 가로등 하나 없는 마을 어귀, 집채 만한 검은 개가 항상 컹컹컹 짖어 대는 개조심 대문집이 그날따라 조용했다. 이상하네 혼잣말하면서 핸들을 우로 돌리려는 순간, 찻길 옆에 허연 물체가 불쑥 시야에 들어왔다.

"어맛, 깜짝이야. 비닐이야? 귀신이야?"

차를 급정거하고 눈을 비비고 보니 머리가 새하얗고 등이 구부정한 할머니 한 분이 찻길에 걸터앉아 계신 것이 아닌가.

"할머니,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도와 드릴까요?" 귀신인지 사람인지 여전히 존재를 확정하지 못한 채 차 창문만 살짝 내리고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훅, 초겨울 찬바람이 살짝 내린 차 창문을 통해 얼씨구나하고 치고 들어왔다.

"아, 내가 잠시 산책을 나왔는디. 집에 못 들어 가고 있구만. 날이 금방 어두워져서 열쇠 구멍을 못 찾겠어." 기운이 빠지신 건지, 추위에 입술이 언 것인지, 할머니의 어투는 명확하지 않다. 몇 시간째 이렇게 계셨던 걸까. 남편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대문을 대신 열어 드렸다.

"마을에 새로 이사 오셨다고? 젊은 사람들이 이사 와서 얼마나 다행이여."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움직이는 할머니의 뒷모습. 검정개가 그날은 우리를 보고도 짖지 않았다.


오전 내내 바쁜 업무에 지친 어느 오후 3시, 물까치 떼들이 처마를 두드리며 일제히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침에만 울던 너희가 웬일이니? 

사람을 가려 짖는 영특한 주인집 진돗개는 조용했고 별일 아니려니 살짝 안도를 하던 중이었다.

"있는가?" 들릴락 말락 조심스러운 목소리이다. 

"네네 나갑니다." 피곤해서 환청이 들렸나? 일단 예의 바르게 큰 목소리로 대꾸한다.

가끔 오는 택배 말고는 초인종도 없는 우리 집을 찾는 이는 없다. 얼마 전 동파로 발생한 누수가 문제가 된 것일까? 이사 오고 나서 제대로 인사드린 적이 없는 이웃 어르신이면 어쩌나. 하필 남편은 읍내로 볼일을 나가고 없다. 예고 없는 방문은 누구에게나 불편하고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는 두려움도 살짝 동반한다.

"아, 미안허요. 내가 눈이 나빠서, 요상한 문자를 받았는디 뭘 잘못 눌렀나 봐." 얼굴이 낯익은 걸 보니 이사 오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반장님과 잠시 오셨던 이웃 할머니이시다.

"딸한테 전화했더니 문자를 보내라는디 어떻게 하는지 몰리겠고만." 손때 묻은 옛날 폴더폰을 꼭 쥔 할머니의 마디마디 굵고 뭉특한 손이 살짝 떨리고 있다.

 젊은 양반 낮에 일 헌다고 바쁘다고 들었는디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없고만." 

문자를 확인하고 그 내용을 따님께 전달하고 별 내용이 없음을 확인하는데 고작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할머니의 따님과 사위가 도시에서 월매나 훌륭하게 사는지 알게 되었다. 평생 저 손으로 자식 키워 도시 보내고 홀로 고향을 지키는 할머니. 아들과 손주 자랑도 들어 드리려고 커피를 내오려는 나에게 손사래를 치시면서 벌써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젊은 사람, 바쁘게 일하는데 시간을 너무 뺐었구먼. 미안허요. 마을에 젊은 사람들 이사 와서 월매나 좋은지. 어디 가지 말고 오래 살어."


내가 겪은 시골 어르신들은 대체적으로 말수가 적으시다. 그마저 반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와 주어 실종의 문장구조로 되물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해석은 청자의 센스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지배하게 되는 관계라면 의사소통에 많은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왕년에 날렸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유튜브로 농사를 배워 모양새 빠지지 않는 귀촌의 삶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원인제공이 되는 경우도 보았다. 물론 그런 분들은 극소수이고 시골 어르신들은 생각보다 더 이해심이 많으시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운이 좋았을 수 있다. 앞으로 귀촌의 삶을 이어나가면서 뉴스에서나 보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 낮은 확률마저 피해 가기 위해 필요한 행동지침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아름다운 일몰을 이웃과 공유하면서 말이다.

  

이웃과 삼겹살 구워 먹다가 일몰에 감동하다.  한여름 무더위, 한겨울 핵추위 서향집만의 호사라고나 할까. 이런 호사를 같이 누릴 수 있는 이웃이 있어서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재택근무자의 시골살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