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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빛 Nov 17. 2024

인간 실격,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짐과 사랑에 대하여

사랑받지 못했던 나와 너에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속 주인공 요조는 극도로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러기를 두려워한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가까워지기 두려워하는 그의 모습은 회피성 애착 유형을 떠올리게 한다. 요조가 말하는 인간 실격은 사회에서 격리되거나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 사람들과 진심으로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요조가 인간 실격에 이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는 병약하여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고, 아버지는 지나치게 엄격하여 그의 진짜 모습을 발견해 주지 못했다. 요조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받았다면, 혹은 단 한 사람이라도 그를 온전히 알아주었다면 그의 삶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극단적인 선택 또한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진 경험이 있었을까 돌이켜 보았다. 얼핏 생각해 보니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조건부 사랑을 주었다. 내가 잘했을 때만 칭찬해 주었고, 못했을 때는 엄격하게 혼냈다. 아버지는 육아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거리감이 있었기에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친밀한 가족에게조차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나라도 받아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유년 시절은 할머니였다. 엄마에게 혼났을 때면 내 편을 들어주셨다. 할머니는 내가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어떤 모습이라도 예뻐해 주셨다. 할머니의 따뜻함은 유년 시절의 나를 지탱해 준 커다란 울타리와도 같았다. 

학창 시절은 선생님들이었다. 모든 학생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었으며 성심성의껏 대해주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으로 품어주는 게 느껴졌다.

현재는 친구들이다.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애쓰지만 가끔은 실수하고 못난 모습도 드러난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그런 나를 따뜻하게 받아준다. 나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친구들 곁에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위안이 된다.


죽음을 자주 생각했던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 속에서 이 사람들 덕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 뭘 해도 예쁘게 봐준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그들의 사랑 덕분에 나는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더 많은 감사함을 표현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다. 내가 그들에게 받았던 환대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요조일 수도 요조의 주변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인간 실격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상대를 사랑으로 대하면 좋겠다. 낯선 세상에 내던져졌지만 사람들에게 환대받으며 사람이 되어간 것처럼 우리도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자. 그리고 혹시라도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내가 나에게 그런 사랑을 베풀어 주면 좋겠다. 자신의 존재를 환대하며 살아갈 때, 어쩌면 더 이상 인간 실격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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