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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Oct 05. 2023

인터넷이 불러 온 공포

#12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를 켜는 것이다. 일단 전원을 눌러놓고 물을 마시든 화장실에 가든 다른 일을 본다. 커피를 가져와 책상 앞에 앉는다. 메일을 확인하고 마감 날짜와 스케줄을 본다. 별일이 없으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뉴스를 뒤적인다. 문학 기금이나 행사, 공모전 등도 확인한다. 커피 한 잔이 사라질 때까지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다.


며칠 전부터 집 앞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스팔트를 새로 까는 것 같았다. 오래된 빌라 전체가 들썩들썩했다. 참을 수 없는 진동과 소음이었지만, 마감하지 못한 원고가 있어서 집중해야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컴퓨터 화면 왼쪽 하단에 인터넷이 끊겼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동시에 컴퓨터에 띄워놓은 화면들이 사라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화면을 바라보던 눈도 마우스를 움켜쥔 손도 얼어붙었다. 잠시 후 다시 ‘인터넷이 복구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아마도 공사를 하면서 뭔가 건드린 것 같았다.     


세상 모든 게 다 끊겨도, 어떤 인연이든 다 사라져도 내가 절대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건 인터넷이다. 소설에 필요한 많은 정보를 인터넷으로 얻는다. 출간 원고 교정본이 메일로 오가고, 강의 기획안들도 메일로 오간다. 급하면 카톡으로 오는 경우도 있다. 강연 문의나 확인서, 정산 명세도 그렇다. 원고료도 강의료도 계좌이체로 들어온다. 나의 모든 밥벌이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그러니, 인터넷이 끊기면 밥줄이 끊기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공포다.      


또다시 인터넷이 끊겼다는 문구가 떴다. 반복되니까 슬슬 걱정이 시작되었다. 복구되었을 때, 나는 급하게 작업물들을 백업했다.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공포. 두 개의 USB에 모든 작업물을 옮기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작업한 원고들이 모두 날아간다면 나는 KT를 증오하겠지. 내가 VVIP가 된 게 언젠데. 내가 너희한테 갖다 바치는 돈이 얼만데. 어쩌면 자책하겠지. 작가라는 사람이 백업은 기본이잖아. 이 멍청아.      


공사하는 걸 보니 전봇대를 다시 박고 있었다. 그래서 인터넷이 끊겼다가 복구되는 게 반복된 모양이다. 언젠가 태풍이 왔을 때도 그랬다. 바람에 인터넷 선이 휘청거리면서 인터넷이 끊겼는데, 당장 복구해주지 않았다. 조바심과 걱정과 공포.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들. 나는 거의 비슷한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평소 같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낀다. 특히, 일에 지장이 생기면 더 크게 느낀다. 유일한 공포는 마감이 아니다. 인터넷이다.


집에서 일만 하니까 휴대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8년째 같은 기종을 쓴다. 요금은 4만 원대다. 내 휴대폰은 거의 업무용으로만 쓰인다. 무선 이어폰으로 통화하고 카톡은 컴퓨터로 하다 보니 휴대폰에 손댈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기기의 수명이 오래가는 것이다. 컴퓨터나 노트북도 마찬가지다. 딱 글 쓰는 용. 나는 온라인 게임을 할 줄도 모르고 그림 작업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기기 자체는 다 오래 쓰는 편이다. 문제는 인터넷. 기기가 멀쩡해도, 내가 멀쩡해도 인터넷이 끊기면 아무 쓸모 없는 현실.     


문득, 이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필로 써보자. 집에는 노트와 연필이 넘치니까. 언젠가 내가 막, 너무, 심하게, 유명한 작가로 이름을 펄럭이며 죽게 된다면, 내가 자필로 쓴 소설들이 박물관 같은 데 기증되고 막. 나는 자식이 없으니 어차피 다 기증하고 죽을 건데, 넘쳐나는 책을 남기는 것보다 자필 소설을 남기는 게 더 멋있어 보이고 막. 작가 지망생들은 유리 속에 든 내 자필 소설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미래를 상상하고 막.  어떤 상상을 시작하면 뿅 갈 때까지 하는 게 나란 인간이다. 이건 내가 소설을 쓰는 원동력이다. 상상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게 소설이니까. 일단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나는 아날로그 시절을 겪은 세대다. 손편지에 우표를 붙이고 빨간 우체통에 넣던 기억, 십 원 짜리 동전을 들고 공중전화를 찾아다녔던 기억, 네비게이션이 없어서 일일이 사람한테 물어서 여행 다녔던 기억, 삐삐로 교신했던 낭만적인 시절. 더 어릴 적에는 버스 안내원이 있었다. 구멍 뚫린 작은 토큰과 학생들의 필수품인 회수권. 회수권을 교묘하게 잘라서 사용했던 고백. 어릴 때 백일장에 나가면 200자 원고지를 주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아무튼, 인터넷 끊김 사고로 인해 나는 뜯지 않았던 노트와 연습장을 몇 권 찾았다. 책상 위에는 이면지를 묶어놓은 메모지가 항상 있는데, 거기에는 영감이나 구성을 갈겨 쓰곤 한다. 컴퓨터에 저장된 내 소설들을 조금씩 노트에 옮겨 볼 생각이다. 학생 때처럼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게 힘들면 타자기를 하나 장만할지도 모른다. 


나는 2014년 이후 불안과 공포 때문에 몹시 힘든 세월을 지나왔는데, 지금도 그런 감정들과 싸울 여력이나 자신이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왜 꼭 싸워야 하는가 싶다. 비껴갈 방법들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요령. 예방. 어느 날 지구상에 인터넷이 전멸하는 날이 오는 것이다. 인간들은 우왕좌왕하고 좌절하고 공포에 휩싸이며 자포자기한다. 지구상에 모든 업무가 마비된다. 출판사는 원고를 찾아 헤맨다. 그때 나는 자필로 쓴 소설을 들고 유유히 출판사로 가야지. 이런 개똥 같은 상상들은 인터넷이 끊기면서 생긴 공포로 인해 발발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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