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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pr 03. 2024

자기 자신을 아는 부모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그럼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육아서와 예전에 비해 질 높은 교육을 받은 부모가 많아지면서 아이에게 "좋은 부모" 혹은 "완벽한 부모"의 자리를 욕심낸다. 우리 사회가 아이를 키우는 문제에 있어서 많은 책임감을 부모에게 요구하며, "평범한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가족에 대해 편견을 갖기도 한다. 소외계층이나 흔히 말하는 평범한 가족이지 못한 경우, 국가 차원의 지원은 적으면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부모로 돌리기도 한다. 그 외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부모는 아이에게 완벽하고 풍족한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어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하게 해 줄 수 있는 조건을 바탕으로 인격적으로도 준비된 부모가 되길 원한다. 단순하게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하나도 없음을 생각하면 완벽한 부모도 없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은 아이 앞에서 인정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 부모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상담은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는 얼마나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자주 나오는 "잘" 혹은 "좋은"이라는 모호한 말에 본질적인 의문이 생겼다. 어떤 부모가 되고 싶었냐는 물었고 누구나 좋은 부모이고 싶다고 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시고 싶냐는 질문에는 여러 답변이 나오지만 종합해 보면 결국 "잘 키우고" 싶다는 말과 일맥상통한 답변을 한다. 그렇다면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이며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교사로서의 경력이 많아지고 공부를 계속하면 모든 것에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알았는데 세상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음만 깨닫는다. 다만 대부분의 부모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많이 노력을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도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꺼려하는 것을 느낀다. 당연히 아이 앞에서는 실수한 것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어떤 부분을 짚다 보면 "부모 잘못이네요." 혹은 "제가 잘못 키웠네요."라고 아이의 문제를 본인의 탓으로 돌리는 부모도 많다. 보통 부모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아이의 문제를 전부 부모 탓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쩌라는 것인가.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면 혹은 바른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육아서에서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육아서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다. 더 이상 답을 주지 못하는 육아서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더 답답하다. 그들이 말하는 아이와 내 아이는 완전히 다를 수 있으며 내 아이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 양육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기에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나만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아이를 아이를 잘 아는 것보다 '나'를 잘 아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한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 생기면서 육아서를 내려놓고 인문학책 혹은 철학책을 들었다.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더 이상 장난처럼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파 들어가면서 고민하는가. 사실 자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부모가 되고 나서는 '본연의 나'를 잃거나 잊고 '부모로서의 나'의 역할에 충실하게 되면서 나를 더 파고들지 못한다. 아이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떤 기준으로 양육을 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부모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과 고민은 내가 자라면서 받았던 영향, 성향,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이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부분일 수도 있다. 아이를 행복을 가장 바란다고 아이를 잘 키우고자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부모의 욕심일 수도 있고 체면일 수 있다. 가끔 자식을 자아실현의 도구로 대하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서 아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내려놓지 못하는 많은 이유를 부모의 욕구와 연결 지어봐야 한다. 즉, 나를 객관화하여 생각해 봄으로써 아이를 키우는데 내 욕구를 반영하고 있지 않은지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잘 기르고 싶었다.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만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아이 앞에서 어른인 척, 완벽한 부모인척 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놓는다. 실수를 인정하고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함께 성장하고자 손을 내민다. 결국 아이를 기르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라는 사람을 먼저 인정하고 들여다봐야 한다. 나의 불완전한 과거가 아이와 나의 관계를 발목 잡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자꾸 인문학책을, 철학책을 읽는다. 나를 알고 너를 알기 위해 그리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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