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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Sep 11. 2024

다른 아이를 위한 기도

내 아이와 살아갈 다른 아이들을 위한다.

  "엄마, 엄마!"


  흥분한 목소리로 첫째 딸이 들어왔다. 학교에서 누군가(특히 선생님이) 뭔가 정의롭지 않은 일을 했구나 예상하면서 쳐다보았다. 유난히 도덕적 기준이 높은 아이라 어른의 언행에 민감하다. 그러면서도 녀석은 자신의 판단이 혹시 치우쳐지지 않았는지 오해하지는 않았는지 종종 나에게 확인한다.


  "아니, 어떤 선생님이 우리가 아침에 불은 켜지 않은 교실에 있다고 너희랑 살아갈 자신의 아들 미래가 캄캄하다는 거야."


  자초지종은 그러했다. 귀찮고 힘든 고3 이들이 이동수업을 위해 정해진 강의실로 갔고 어느 누구 하나 먼저 불을 켜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단다. 마침 수업하러 온 그 선생님은 어느 누구 하나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 화가 났던 것 같다. 거기까지는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같아도 '에구~ 눈 나빠지잖아~' 하고 핀잔을 주었을 테니까. 그러나 문제는 고3 아이들에게 버럭 하면서 그렇게 배려 없고 선행하지 않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아들이 큰다는 것이 끔찍하다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 것이다. 물론 그전에 그 선생님에게 개인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고등학생들의 어떤 면모에 계속 실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 하나 손해보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이기심에 지쳤을지도 모른다. 어떤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더라도 그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대뜸 자신의 아들이 살아갈 미래를 걱정하는 말을 했다는 것은 아이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생님의 마음에 공감한다. 나 역시 평소에 내 아이들과 살아갈 아이들을 유심히 보기 때문이다. 때로는 걱정스럽게 또 때로는 희망을 갖고 들여다본다. 자기 자식 또래의 다른 아이를 내 아이와 앞으로 함께 살아갈 사람들로 인식하면서 진지하게 살피는 부모들은 내 자식만 끼고돌지 못한다. 내 것만 잘 챙기고 나만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도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키운다면 이기심이 팽배한 사회에서 서로 불신하고 불안해하며 살게 될 것이다. 내 아이가 그런 세상에서 산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나라도 혹은 미래사회를 걱정하는 몇몇 부모라도 조금 넓게 세상을 보면서 양보하고 다른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위하다 보면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먼저 관용과 사랑을 베풀어 끌어안다 보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아이 주변 아이들을 챙기는 것은 결국 내 아이를 위한 길이다.


  서로 챙기면서 조금 손해 보더라도 양보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렇게 부모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는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해 나는 기꺼이 다른 아이들을 껴안는다. 내 아이보다  더 많이 손이 가야 그 마음이 전해짐을 알기에 더 많이 위한다. 내 아이에게 양보를 종용하면서 더 친절하게 대한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위해 내 아이를 따뜻하게 키우고자 한다.

결국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다. 부모의, 어른의 이기심이 아이들이 어우러지는 것을 멈추게 해서는 안된다. 부모는 서로에게 아이를 키우는 동지로서 큰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 하면 좋겠다. 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따뜻하게 서로를 위한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가끔 다투면서 타협하면서 어우러져 살 수 있는 힘을 키우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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