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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Nov 27. 2024

입김 가득

  얼마 전, 고등학생의 윈터캠프에 대해 들었다. 워낙 입시 정보나 학원 정보에 무지하기는 했지만 새로 들은 '윈터캠프'는 뭔가 띵했다. 관리형 독서실 또는 관리형 학원이라고 하는데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아이가 공부할 수 있게 관리해 주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중간중간 자는 아이를 깨워주고 인강을 잘 들을 수 있게 해 주며, 휴대폰이나 텝으로 한 눈 파는 것을 방지해 주는 등 공부 관리를 해준다고 한다. 한 달에 내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이해되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혹시 일정한 과목에 대한 강의냐고. 그랬더니 아니라 한다. 아이 스스로 하지 않기 때문에 혹은 부모가 강제하면 아이와의 사이가 나빠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청하는 것이며, 이 신청을 위해 아이를 설득하는데 힘들었다고 한다.

요즘 들어 보면 참 신기한 것도 편리한 것도 많다. 필요하다 생각하면 이미 만들어져 있는 물건도 있고 이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놀랍다. 가끔 내가 시대에 너무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아이 키울 때부터 육아는 템빨이라는 소리를 누누이 들었다. 시어머니랑 같이 살아서 그럴 수 없다는 구차한 변명을 했지만 사실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냥 나 자체가 참 구식엄마였다. 남들이 쓰는 육아템의 기발함에 놀랐지만 굳이 구매하지 않은 것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매사 대충대충을 외치는 내게 육아템은 한없이 복잡하고 번거롭게만 느껴졌다. 굳이 저런 것을~ 하면서 엄마가 우리를 키웠던 때처럼 그냥 키웠다. 하다 못해 샴푸 시킬 때 눈에 들어가지 말라고 씌우는 것도, 턱받이도 한번 더 손 가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었다. 이유식도 그렇다. 간 음식이나 죽을 싫어하는 착한(?) 딸들 덕분에 맨밥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 반찬을 따로 없이 식탁에서 어른 반찬으로 함께 먹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충엄마 아래 무탈하게 자란 아이들에 고마울 뿐이다.

물론 몸은 조금 더 고생스러웠다. 매일 얼룩 묻은 옷을 손빨래 또는 애벌빨래를 해야 했고 집밥을 좋아하는 개인적 성향으로 직접 해 먹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늘 손이 닿아있었다. 숨길 수 없는 장난기에 늘 우리는 부대끼면서 울고 웃었다. 조금 무식하거나 촌스러울지 모르지만 난 늘 '정성 어린 손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일찍부터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는 것도 한 몫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체험학습이나 캠핑을 따로 가기보다 들판으로 나가 나물을 캐고 시골길에서 고구마를 주웠다. 돈보다 품이 드는 생활이었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지 어떤 아이템이나 기관에 의존하기보다는 가족 내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습관이 생긴 것은.

박완서 작가의 글이 마음에 훅 와닿는 것도 나도 내 아이도 그렇게 자랐는데 그 입김이, 사랑 가득한 숨결이 줄어드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린 날, 내가 누렸던 평화를 생각할 때마다 어린 날의 커다란 상처로부터 일용한 양식, 필요한 물건, 입고 다니던 입성, 그리고 식구들 사이, 집 안 속 가득히 고루 스며 있던 어머니의 입김, 그 따스함이나 숨결이 어제인 듯 되살아난다. 그것을 빼놓은 평화란 상상도 할 수 없다. 싸우지 않고 다투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 어린 날이 어디 있으랴. 다만 그런 일이 어머니의 입김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행복과 평화로 회상되는 게 아닐까? -중략- 나보다 내 자식들이, 내 자식들보다는 손자들이 따뜻한 입김의 덕을 덜 보고 자라는 게 아닌가 싶다. 그건 부모의 허물만도 아닌 것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구태어 입김을 거칠 필요 없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법까지도 매스컴이나 그 밖의 정보를 통해 대량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집집마다 대대로 물려오는 입김에 서린 가풍마저 소멸해가고 있다. -중략- 입김이란 곧 살아있는 표시인 숨결이고 사랑이 아닐까? 싸우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심심해하지 않는 게 평화가 아니라 그런 일이 입김 속에서 즉 사랑 속에서 될 수 있는 대로 활발하게 일어나는 게 평화가 아닐는지.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


 아이를 키우는 데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사랑 가득한 손길이 닿고 입김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경제적으로 누릴 수 있는 편안함 또는 강제성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어른의 온전한 손길 안에서 아이들이 크면 좋겠다. 박완서 작가의 글처럼 안전한 환경 속에서 안정적이고 평화로움을 누리기보다 사랑 가득한 숨결이 있는 곳에서 많이 싸워보고, 슬퍼하고, 다투고 미워해보면서 자랐으면 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보다 안전한 환경이서 싸우고 소통하고 또 화해하는 방법을 익힐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세상에 나온다면 숨결이 있는 집의 든든함을 배경으로 어느 누구와도 어우러져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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