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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연 입니다 Jan 15. 2023

과제 기록 (1st semester)

Theory and concepts in heritage studies

‘The events of the last few years have made heritage more relevant.’

By engaging with authors, ideas and case studies form across the course as a whole make


인트로

'유산은 미리 결정되거나 신에게 주어진 것과는 거리가 먼, 대체로 우리 자신들이 경이적으로 유연하게 만들어내는 창조물이다.' (Lowenthal,1998)

유산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Lowenthal의 말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유산은 시간과 공간에 얽매일 수 없다. 이 말은 즉 유산의 해석은 시간, 공간, 대상, 정치적 이념과 그 시대의 제도에 따라 해석하는 자에 의해 무한대로 다양해질 수 있으며 기술발전 또는 전혀 예상치 못한 환경이슈로 인해 매 순간 변화한다는 의미다. 이번 과제에서 유산의 중요성을 드높인 지난 몇 년간의 사례를 찾아야 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내가 찾은 예시가 지금 이 순간 나의 정치적 이념과 정체성, 내가 속한 공간과 시간 안에서 유산의 중요성을 드높였다고 제시하지만 이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누군가는 같은 사례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10년, 20년 후 나 조차도 이 사례를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이 에세이를 적는다. 나는 오히려 이 에세이를 쓰는 과정을 통해 문화유산의 개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보고 기존의 관행과 프레임워크에서 빠져나와 문화유산관리에 조금 더 대안적이고 창조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유산은 선천적이거나 원시적인 현상이 아니다(Lowenthal). 매 순간 유산은 변화할 수 있다는 해석을 기반으로 나는 최근 몇 년 사이 일어난 두 가지 사회적 변화에 집중하여 이 에세이를 이끌어 가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현대인의 인식변화(식민성, 인종, 성별)가 가져온 사건을 통해 식민지 문화유산을 재해석한 사례다. 두 번째는 환경변화 중 기후위기가 가져온 자연유산의 위협과, 동시에 그 중요성이 부각된 사례다.




1. 식민성, 인종, 성별에 대한 현대인의 인식변화, '식민지 문화유산'에 대한 재해석

사회적 약자로서 겪는 차별과 폭력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고 이를 지키는 현대인들의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일어난 Black Lives Matter(2012)나 Me Too Movements(2006)는 인종, 성별에 따른 부당한 대우에 반말하는 운동을 넘어서 광범위한 사회적 소수 계층의 권리와 이 시대의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의식은 자연스럽게 식민성이 담긴 제국주의의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 예술가, 학자들의 시각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시켰다.


과거로 가보자.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 유산(건축물, 동상, 거리이름 등)은 광장이나 공원, 시민들의 일상이 펼쳐지는 거리에서 그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권력을 주입했다. 중세시대 로마 이교도 유산은 교황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교회에 의해 재해석되고 사용되었다. (David C, 2001) 그 당시 가톨릭 유산과 식민지 유산은 권력 그 자체이자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시민들은 왜 부당한 사회체제에 대항하지 못했을까? 대항했더라면 지금의 유산은 다른 서사로 기록되어 현시대의 우리들에게 전혀 다른 메시지를 주었을까? 아니면 대항했던 그 기록조차 권력에 의해 역사 속에서 사라진 것일까? 생각해 본다.


다시 지금의 시대로 돌아와 차별, 인종, 제국주의라는 시선에서 식민주의의 산물들을 바라본다. 앞서 말한 사회의 인식변화는 이제 더 이상 국가 또는 권위자의 권력으로 이 시대의 유산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시민운동과 비평적인 시선이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극대화시켜 사회의 분열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조금의 우려를 표하기는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움직임은 문화유산을 과거의 박제된 전유물로 단정 짓지 않고 현대의 시선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나는 식민유산을 다룬 학생운동의 대표적인 예로 Spectres of Cecil Rhodes at the University of Cape Town (Shepherd, N. 2022)에서 소개된 "RMF" 사례와 지난 20년간 가장 혁신적인 큐레이터라 평가하는 Okwui Enwezor(1963‒2019)의 "Decolonizing contemporary art exhibitions" 사례 및 연계된 전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이 두 사례를 통해 학생들의 자발적 운동과 큐레이터의 전시 방식이 식민지 유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이 과정을 통해 일반인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의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도 생각해 볼 것이다. 또한 본 과목을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이러한 식민유산의 지속가능한 관리 방식에 대한 나의 고민도 서술해 보고자 한다.




1-1. RMF (Rhodes Must Fall) movement

RMF(Rhodes Must Fall)는 2015년 3월 9일에 UCT(University of Cape Town)의 학생인 Chumani Maxwele가 대학의 입구에 설치된 영국 식민주의자, Cecil Rhodes의 동상에 간이 변기의 내용물을 던진 것이 트리거가 되어 시작된 학생운동이다. Maxwele의 시위가 있은 지 한 달 후 이 동상은 대학 캠퍼스에서 제거되었다. 남아프리카 사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David Goldblatt는 철거의 순간을 상징적인 이미지로 포착했고 현장을 찾은 학생들과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이 상황을 실시간 전파했다. Maxwele의 행동은 학생 주도의 사회 운동 #RhodesMustFall(#RMF)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이 운동은 2015년 내내 전국적인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남아프리카에서 여론을 첨예하게 분열시켰다. Rhodes 동상 철거의 요구로 시작된 시위는 UCT의 식민주의와 제도적 인종주의의 유산과 고등교육을 '탈식민화' 요구로까지 번졌다. (Nyamnjoh 2013) 나아가 이 시위는 남아프리카와 세계 다른 지역의 다른 대학에서 동맹 학생 운동의 출현에 영감을 주었다.


The removal of the statue of Rhodes at University of Cape Town, 2015, ⓒDavid Goldblatt (L)

Campaigners want a statue Rhodes in Oxford to be removed, 2016, ⓒMartin Godwin (R)


Nick(2022)은 Spectres of Cecil Rhodes at the University of Cape Town의 글에서 대학 주요 보행자 입구에 전략적으로 위치한 Rhodes의 동상을 통해 UCT에 깊이 새겨진 식민성을 들추어낸다. 1920년대 캠퍼스를 건축하는 과정과 1890년대 Rhodes가 농가에서 재임하던 시기 그의 정원이나 주택 리모델링 과정을 살펴보며 식민성은 눈으로 보이는 흔적 (동상, 거리이름, 노예제도, 건축물 등)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풍경, 삶, 사상과 관행의 본체에 깊은 각인의 형태로 존재함을 증명하고 있다.


나는 이 사례를 살펴보며 단순한 동상 철거를 넘어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길 바랐다. 앞서 이야기했던 중세시대, 식민시대 당시에는 결코 하지 못했던 이런 시위가 2015년, 왜 이 시기에 벌어졌을까도 묻는다. 또한 전 세계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왜 이 시위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하기를 희망했을까?라는 질문도 던져본다. 나는 그것이 Rhodes가 옹호했던 "인종주의", "가부장제", "식민주의", "제국주의", "자연세계착취"의 관념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연대를 이끌어 내는 도화선이 되는 이슈를 모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또한 기술발달로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 시위 상황을 전달받을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은 해시태그 하나로 어디에서도 쉽게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철거된 동상은 어디로 가야 하며, 동상이 사라진 후의 학교와 학생들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Rhodes 동상이 제거된 후 그 공간은 매년 마리카나 광산 노동자 학살일을 추모하는 장소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식민 흔적은 사라졌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속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관념들은 여전히 존재함을 자각한다. 과연 10년 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슈에서 충분히 자유로워져 있을까?


Rhodes의 유언장에 적힌 글은 매우 흥미롭다.

“the establishment, promotion and development of a Secret Society, the true aim and object whereof shall be for the extension of British rule throughout the world, the perfecting of a system of emigration from the United Kingdom, and of colonisation by British subjects of all lands where the means of livelihood are attainable by energy, labour and enterprise, and especially the occupation by British settlers of the entire Continent of Africa, the Holy Land, the Valley of the Euphrates, the Islands of Cyprus and Candia, the whole of South America, the Islands of the Pacific not heretofore possessed by Great Britain, the whole of the Malay Archipelago, the seaboard of China and Japan …"


"British"라는 단어를 "western"으로, "United Kingdom"을 "the west"로 바꾸면 지난 20년간 전 세계가 추구했던 비전이 Rhodes의 비전과 다를 바 없다. western은 여전히 자유로운 통행과 통제권을 가져야 하며 wetern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잠재적인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로 위장한 사람들로 간주되는 현실 속에 여전히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Amit Chaudhuri, 2016)


동상은 사라졌지만 그 공간에는 Rhodes의 이야기를 뛰어넘은 새로운 사고방식의 담론들이 끊임없이 생성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담론들과 연대의 과정이 유산을 관리하는 지속적이고 대안적인 방식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1-2. Decolonizing Contemporary Art Exhibition

나의 청소년 시기, 미술 수업은 '서양미술사' 이론으로 시작했다. 수업과정은 연대기별 미술풍을 배우고 대표되는 예술가의 이름과 작품들을 숙지하는 것이었다. 책에 나온 예술가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그 당시 ‘서양’이라 함은 나의 나라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나라로 인식되었던 시기라 나는 이것이 미술 역사의 전부라고 믿었다. 학교가 편향된 예술사를 가르치고 있었을 거란 사실을 어린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


Elvan Zabunyan(2022)가 저술한 Decolonizing contemporary art exhibitions에는 탈식민적 큐레이터인 Okwui Enwezor의 작업을 소개하고 있다. Enwezor는 1963년 10월 나이지리아 칼라바르에서 태어나 1983년 공부를 위해 뉴욕으로 이주해 정치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시인이기도 했고, 글쓰기를 현대 미술의 맥락에 대해 반성하기 시작한 뒤 갤러리든 박물관이든 공공 및 민간 제도적 틀에서 아프리카 예술 관행의 눈부신 부재에 주목했다. 1994년에 이러한 불가시화를 보상하기 위해 그는 저널을 창간했다. 코넬 대학교의 아프리카나 연구 및 연구 센터(ASRC)에서 발행한 이 책은 아프리카 예술가 또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예술가를 소개하기로 선택하여 아메리카 노예 제도의 유산을 통합하는 오랜 역사에 초점을 맞춘 제작물을 반영한다. 또한 그는 현대 예술가들에게 과거에 대한 경쟁적 해석을 제시할 수 있는 다원적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관을 통해 모든 주요 유럽 중심적 패러다임의 격변에 참여했다. 주요 국제 현대 미술 전시의 모델과 역사적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전시 양식을 탈식민화하기로 선택함으로써 그는 예술가의 실천을 통해 식민지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Knudsen, 2018) 나아가 그에게 중요한 것은 유럽과 미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와 같은 아시아의 수많은 다른 장면들을 강조함으로써 전후 시대의 역사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미술사를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미술가들이 어디서 무엇으로 무엇을 만드는지 세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전시의 목표였다'(Enwezor, 2016) 나아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경계를 넓히고 작가들의 작품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는 2001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권위 있는 현대미술 행사인 카셀도큐멘타의 최초의 '비유럽'인이자 아프리칸 큐레이터로 임명되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지던 전시 공간에 그는 개막 프로그램으로 아프리카 대륙 미술을 선보였고 그의 등장은 당시 미술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더 이상 예술중심지를 파리와 뉴욕을 기반으로 수직적인 미술사를 만들지 말라'는 그의 말이 떠올려 본다. 그리고 지난해 12회째를 맞은 베를린 비엔날레를 떠올려 본다. 직접 가서 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관심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며 Enwezor의 생전의 활동이 지금 현시대의 탈식민지적 미술사에 끼친 많은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2022년 비엔날레는 'Still Present!’라는 타이틀 아래 동시대의 '탈식민지적 회복'을 주요 쟁점으로 다뤘다. 총괄 큐레이터인 Kader Attia는 그가 기존에 작업하면서 지속적으로 정립한 'Repair'의 개념을 비엔날레의 핵심 주제로 사용했다. 식민, 제국, 젠더, 인종 등의 불평등의 축적물인 서양의 근대 유산을 'Injuires'로 해석한다. 이 말은 우리는 여전히 아픈 상처 그대로인 채 불평등의 길을 뚜벅뚜벅 걸으며 이 거친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는 뜻일 테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 중 하나는 폐 공장이던 KW 현대미술관 벽에 설치된 Yalter의 ‘Exile is a Hard Job’였다. 1980년대 프랑스로 이주한 이민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사진 및 영상 설치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국경이라는 선을 넘어야 하는 유배자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Okwui Enwezor, Chief curator of Kassel Documenta 2002, ⓒRyszard Kasiewicz (L)

Kader Attia, Chief curator of Berlin Biennale 2022, ⓒJennifer Sokike (R)


이번 비엔날레 큐레이터팀은 Attia를 제외한 모두가 여성으로 구성되었고 참가 작가들도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런 예술가들의 창작작업들과, 한데 모여 집단지성의 예술적 메시지를 토론하는 비엔날레와 같은 행사들이 식민지 유산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무척이나 중요한 자리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유명한 예술가를 떠올리면 늘 서양인, 백인의 이미지만 떠올렸던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지금 현대사회에서 답습이 되지 않길 바란다.




2. Even2. 환경변화(기후변화), '유산'의 위협과 재해석

매 순간 유산은 변화할 수 있다는 해석을 기반으로 이 에세이를 시작했다. 여기서의 ‘변화’란 이데올로기, 권력과 정치적 이념, 개인의 정체성 등을 통해 어떤 시기에서도 해석하는 자에 의해 같은 문화유산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 내가 다룰 이야기는 환경변화에 의해 유산의 실질적인 물질의 형태나 구성이 육안으로 변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지금 현시대에 기후변화와 유산의 관계를 연결 지으면 눈으로 존재했던 것들이 소멸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부정적인 단어들인 '위협', '불안정', '취약' 들이 뒤따라온다. David C(2015)에 의하면 우리가 기후 유산으로 정의되는 인류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기후 변화의 쐐기풀을 보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파악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식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안적 관점을 장려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우리는 그 존재를 부정할 필요도, '위협'으로 인한 일방적인 '손실'의 서사를 단순히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지금 당장 수습할 수 있는 설루션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 불안정한 시대에 긴 안목과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 위기를 접근하라니! 너무 안일한 태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로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두 가지의 사례를 통해 지난 수업에서도 언급하였었던 유산이 기후변화에게, 기후변화가 유산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시 살펴보면서 기후위기시대에 유산을 접근하는 창의적인 자세는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David C(2015)가 언급했듯이 미래 유산과 기후변화 접근 방식을 부정적 개념보다는 현재 중심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탄력적 사고로 대안적 솔루션을 찾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사례는 지속적인 해안 침식으로 '사라진 마을 Dunwich'의 이야기다. 나에게는 부정적인 단어 '소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마을이지만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을역사를 오히려 자부심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 강인함이 유산을 재해석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접근 방식이고 지속적 관리방식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사례는 Chemical Heritage Foundation이 주관한 'Sensing Change(2013)' 프로젝트다. 예술과 과학, 그리고 변화하는 환경 사이의 상호 연결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현대미술가의 작품과 과학자의 인터뷰를 담았다. 이 두 사례 모두 기후변화의 부정적 서사보다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위기’를 문화유산 관리의 새로운 ‘기회’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2-1. The Lost Town, Dunwich

Dunwich는 12세기에 전성기를 맞고 한때 영국에서 6번째로 큰 도시였다. 1286년, 1328년 약 40년 간격을 두고 두 번의 심한 폭풍이 마을을 심각하게 파괴했고 1931년에는 파괴적인 홍수까지 발생했다. 주민들은 마을을 되찾으려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회복 불가능한 시점까지 이르렀다. 이후 지속적인 해안침식으로 마을은 결국 소멸되었다. 나는 이 사례에서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첫 번째는 이 현상이 그저 자연환경의 자연스러운 이벤트인 것인지 아니면 인류세를 살아가는 인간의 영향으로 빚어진 기후변화의 영향인 것인지, 두 번째는 예상치 못한 이례적인 환경 이벤트 또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마을의 유산관리는 어떻게 평가되고 근 미래에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가?이다. 원인의 맥락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싶어서다.


첫 번째 의문은 Discover Dunwich 편집자 Matt Salusbury가 University of Southampton의 교수이자 Dunwich Museum의 이사인 David Sear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인터뷰에서 Matt는 Dunwich를 점진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침식과 폭풍이 단지 날씨 탓이라 믿고 있으나 혹시 이 현상이 기후변화와 관계가 있는지 교수에게 질문했다. David Sear는 ‘기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날씨의 평균 상태이고, ‘기후변화’는 평균상태가 변화한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지금 기후변화 상태는 지난 13세기와 17세기 폭풍우가 몰아쳤던 시대보다 훨씬 더 빠르고 크다고 했다.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대기 중 탄소배출이 누적되어 온난화가 증가하여 발생한 것이라 덫 붙였다. 그래서 Dunwich의 침식과 폭풍이 기후변화와 관계가 있냐고 묻는다면 기후의 '평균상태변화'의 정의 따르면 '그렇다'라고 할 수 있다고 답했다.

Saint's Church, Dunwich, 1919, Out of copyright (L)

A coastline of Dunwich, 2022, ⓒcoastalrunner (R)


인터뷰 말미에는 Dunwich의 Greyfriars 수도원이 바다로 사라지기까지 약 50-8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도 덫 붙였다. 수도원의 남은 생이. 숫자로 카운트다운되는 것이 마치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 마냥 두려움이 몰려온다. 이것은 Planetary Boundaries(Stockholm Resilience Centre,2015) 개념을 상기시키며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인간활동에 대한 수치스러움과 반성 또한 동시에 이끌어 낸다. 그렇다면 주민과 연계 기관들은 기후변화에 소멸되어 가는 마을의 유산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키고 있을까?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마을 주민들이 자신들의 잃어버린 자원에 대한 '부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것 자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더라는 것이다. 나아가 마을 박물관은 saints의 쇠퇴와 몰락을 연대순으로 보여주거나 상실한 건축물들을 영화처럼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마을의 정체성을 '몰락'과 '상실' '부재'에 너무 치우쳐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획된 '고대 도시의 잃어버린 교회 재창조 (Johannes Ingrisch, Anne Niemann, 2004)'라는 현대미술 프로젝트는 나의 우려를 뒷받침하는 좋은 사례다. 이 프로젝트는 Dunwich의 침식된 공간에 중세교회를 상징하는 설치 조형물을 제작해 설치하는 것이었는데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반발이 있었다.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는 ‘부재’가 도시의 유산을 정의하고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 내는 것은 억지라는 것이었다. 덫 붙여 예술가 Bettina furnee(2006)은 인터뷰에서 바다에 설치 조형물을 놓는다면 그것은 사라진 마을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오히려 제한하는 행동이라 말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관계자 및 관계 기관들과 타당성 조사를 통해 2005년 최종적으로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Location of Saint's Church before erosion (L), Location of installation after erosion (M),
 Installation Virtual Image (R), all picture copyright NIEMANN INGRISCH


'상실'을 '기회'로, '취약'을 '강인함'로 수용한 이 마을사례는 나에게 사라져 가는 지역유산을 미래 지향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접근방식을 선사했다. 반면에 불확실한 미래를 ‘부재’라는 정체성으로 충분히 포용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조금은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해석의 자세도 마을에 필요해 보인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한국은 손뼉 치고 환영할 테다. 사라져 가는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극찬으로 넘칠 것이다. 우리에게 마을의 정체성과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고민은 지금 시급하지 않은 문제로 치부될 것이 분명하다. (예술가 Antony Gormley의 사례를 한국에서 많이 들먹였는데 다들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씁쓸하다. < 시험이 익명으로 처리되기에 이 문단은 쓰지 못했다. 우리 학과 한국인 나 혼자. :-( 끙




2-2. Sensing Change Project

Sensing Change는 2013년 Chemical heritage foundation 주최로 예술과 과학, 변화하는 환경 사이의 상호 연결을 탐구하기 위해 8명의 동시대 작가들과 9명의 과학자들의 1년간의 작업을 엮어낸 프로젝트다. 기후변화와 교차하는 주제를 가진 작가의 작품 전시와 과학자들의 실험과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본 프로젝트 사례는 앞서 언급했던 그 어떤 사례보다 유산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 더 깊이 있게 이끌어 냈다. 문화유산의 개념과 신유물론을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산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와 인간중심으로 편재된 문화유산의 관행과 제도의 현재의 방식을 다시 한번 심사숙고하게 만들었다. 자연유산-문화유산, 유형유산-무형유산을 분리하는 과정에서의 관계의 얽힘과 모호함은 지난 수업에서도 토론한 바 있다.


대지미술의 창조자인 예술가 Robert Smithson(1938~1973)의 자서전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암석을 읽기 위해서는 지질학적 시간과 지각에 묻혀 있는 선사 시대 물질의 층을 의식해야 한다' 이 말은 우리가 유산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제도를 만든다면 적어도 비인간적인 시간척도를 동시에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측면에서 Sensing Change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Katie Holten의 'Uprooted' 작품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작업을 하는 예술가다. 'Uprooted'는 뉴욕 도심의 나무를 주제로 한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도시의 부분을 나무의 뿌리로 보여주며 나무가 가진 광대한 네트워크를 보여준다. 그녀의 작업은 철저히 탈인간화 한 시선, 즉 나무의 뿌리로부터 출발했다. 인간, 자연, 유산을 이해하는 전혀 다른 출발, 신유물론의 이론이 제시하는 근본적인 대안은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 생각해 볼 여지를 만든다.

‘Paths of Desire’ installation, 2007, ⓒKatie Holten (L)

'Uprooted' installation, 2013, ⓒChemical heritage foundation (R)




결론

나는 본 에세이에서 지난 몇 년 간 유산의 중요성을 부각했던 사건들을 두 가지 측면으로 분리해 기술했다.

첫 번째는 식민성, 인종, 성별에 대한 현대인들의 인식변화로 촉발된 ‘RMF’ 학생운동 사례와 유럽 중심적 패러다임의 현대미술을 비판하며 식민지 유산의 해석을 예술작품을 통해 전달했던 ‘탈식민화 현대미술 전시’를 예로 들었다. 두 번째는 환경변화 중, 기후위기가 가져온 유산의 위협, 하지만 동시에 미래 지향적인 대안적 솔루션을 제시했던 두 개의 사례 ‘The Lost Town, Dunwich’와 ‘Sensing change’를 다뤘다. 이 네 가지의 사례는 격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유산의 개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기존의 관행과 프레임워크로부터 빠져나와 대안적이고 창조적인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Rhodes의 동상은 사라졌고, 탈식민지를 주제로 했던 2022년 베를린 비엔날레는 끝이 났지만 식민지유산을 다루는 담론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로 우리의 미래는 어쩌면 더 불확실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실’을 ‘기회’로 ‘취약’을 ‘강인함’으로 수용하는 자세와 탈인간화된 시선으로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자세를 갖추어야 하겠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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