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말을 걸 수가
준비물 : 이문열 삼국지 7권, 3M 방음 헤드셋, 연습장
8:49 중동역.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다. 어제 수면시간은 5시간. 피곤하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된다. 일단 신도림역으로 가보자. 오늘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있으려나? 9:28 신도림역 도착. 오늘은 지난번과 반대로 돌아보자. 문래행이다.
9:31 문래행 2호선 탑승 완료. 주말 오전인데 사람이 제법 많다. 가방을 앞으로 메고 삼국지를 읽기 시작했다. 9:42 자리에 앉았다. 독서 여행 시작. 새로운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10:24 3M 방음 헤드셋 착용. 본격적으로 독서 시작. 삼국지는 여전히 재밌고, 방통의 죽음은 애석하고 허무했다. 다양한 생각들이 스쳐갔다. 2호선 라인으로 집이나 건물을 알아볼까? 2호선에 있는 기업들에 투자해볼까?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왜 드는 거지?
오늘은 아침부터 바닐라 소프트 아이스크림 위에 초코 코팅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다. 전날 누군가 맛있게 먹는 것을 봤다. 11:01 신도림 도착, 한 바퀴 소요시간 1시간 30분. 지난번과 비슷하다. 비슷한 게 당연했다.
11:27 책 읽기를 멈췄다. 점심을 먹어야 했다. 헤드셋을 벗으니 역시나 엄청난 소음이 폭발했다. 헤드셋은 좋은 집중력 도구다.
11:28 '을지로 4가'역이 오늘 점심 장소다. 지난번과 비슷한 위치다. 방법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이러면 매번 비슷한 사건들이 벌어지게 된다. 이 여행의 의미가 없어진다. 전면 수정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5번 출구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맙소사 외부에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공구 관련 가게들뿐이었다. 80m 정도 걸었을까. 오른쪽 골목으로 표지판 하나가 보였다. '淸水복어'였다.
복어는 먹어본 적 없다. 이번 여행 취지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m 정도 걸어 들어가니 가게가 보였다. 복어를 모르니 추천을 받아야 했다. 아주머니는 '참복'을 추천했다. 나는 지리와 매운탕 중 지리를 선택했다.
불현듯 '복어 독'이 떠올랐다. 이미 늦었다. 아주머니가 음식 설명을 마쳤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국물을 떠먹는 순간 납득할 수 없는 맛에 연신 감탄했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그 맛은 죽음과도 바꿀 가치가 있다."라고 할만했다.
자고로 맛집은 어른들이 많다. 이곳은 어른들로 가득했다. 여행을 계획하고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식사는 미지막까지 만족스러웠다. 가족들과 함께 오고 싶을 정도였다.
당 충전을 위해 근처 커피숖을 찾았다. 딸기 요구르트 스무디와 쿠키, 스콘을 시켰다. 복지리 가격과 비슷하게 나왔다.
이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했다. 인터뷰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심호흡을 하고 시도하려는데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정도로 숫기가 없진 않은데 왜 이런지 모르겠다. 끊었던 술이라도 다시 먹어야 하나.
이번에도 사람들에게 말 걸기는 실패했다. 두 번째 여행 시도만에 한계가 찾아왔다. 진전 없는 말 걸기, 매번 비슷한 위치의 점심. 이대로면 애초에 계획했던 의외성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시행착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좀 더 구체적인 방법들을 모색해야겠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이 여행을 위해서 기대하고 계획했던 순간들을 수포로 돌릴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