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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들 Sep 22. 2022

<운수 좋은 날>에서의 한 단어

푼푼하다

푼푼하다

형용사

1.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

2. 옹졸하지 아니하고 시원스러우며 너그럽다.


유의어 : 만족하다, 넉넉하다, 충분하다
 

출처 : 표준 국어 대사전
 
 푼푼하다. 이 얼마나 뜻도 발음도 모두 만족스러운 단어인가요? 발음할 때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면서 나는 입술소리라 그런지 귀여운 느낌도 들어서 발음할 때마다 모자람 없이 만족감을 느낍니다. [푸운푸운] 발음을 할 때 우리말 특유의 느낌이 살면서도 그저 의성어처럼 운율감도 느껴지는 형용사라니요. 긍정적인 상황 어디에도 어울리는 넉넉함을 느낍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시겠어요? 푸운~푸운~)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푼푼하다'라는 단어를 처음 만난 곳은 제게 치졸함과 폭력성을 보여주는 소설 속 서술이었습니다. '팔십 전을 손에 쥔 김 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운수 좋은 날>에서 푼푼하다는 말처럼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남자라는 사실에 정말 분개합니다. 같은 손님이어도 자신보다 어린 남자에게는 90도로 절을 하면서 감사인사를 보내고, 굳이 인력거가 필요 없다고 하는 여자에게는 '퇴물 기생', '난봉 여학생' , '논다니(웃음을 파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라고 멸시하며 술안주로 삼고는 합니다. <운수 좋은 날>을 우리 사회가 계속 소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절대다수의 한국 여성이 운수가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지 않을까요?

 매년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저는 낯선 폭력성을 발견하며 놀라곤 합니다. 이런 작품을 타의에 의해 읽고 해석해야 할 때에는 '혹시 내가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닐까', '내가 좀 예민하게 접근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폭력성을 수치로 환산하며 확인해보곤 합니다. <운수 좋은 날>에는 총 30번의 비하적 표현과 16번의 여성 비하적 표현이 등장합니다(둘이 중첩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이렇게 폭력적인 글을 포장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마다 구역질이 납니다. 물론 식민지 남성성을 비판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의미가 큰 작품이지만 과연 교과서에 실린 목적이 그것일까요? 아니라는 것에 제 책상 서랍에 있는 모든 간식을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 어디에서나 의미를 찾아 만드는 한국인답게(우리나라에서 먹는 모든 음식은 효능이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렇게 여성을 조각조각 내고 죽은 존재로 만드는 이 작품에서도 기어코 마음에 드는 한 줄기 빛을 찾아내어 이 작품을 수업하는 것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푼푼하다' 이 단어를 알게 된 것은 정말 행복이고 행운이니까요. [푸운푸운]한 마음으로 다른 작품을 읽고 싶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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