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 감상문
넷플릭스에서 퍼스트 러브-하츠코이라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몰아봤다. 스토리 자체는 클리셰 범벅이라서 딱히 특별할게 없었다. '퍼스트 러브'라는 제목 자체에서 알아볼 수 있듯이 첫사랑 이야기이다. 여주인공 야에와 남주인공 하루미치는 고등학생 때 서로의 첫사랑 상대로서 예쁜 사랑을 한다. 야에는 도쿄의 대학교에, 하루미치는 항공 자위대에 진학하며 멀리 떨어진다. 하루미치와 야에는 오랜만에 만나 데이트를 하던 날 사소한 이유로 크게 다투게 되고, 하루미치는 야에를 두고 홧김에 떠나지만, 하필 그날, 야에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려 하루미치를 잊어버련다. 화가 난 야에의 어머니는 하루미치에게 다시는 자신의 딸과 교제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야에는 자신을 치료하던 의사인 유키히토와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하루미치는 파일럿으로 일하며 자신의 심리 상담 치료사인 츠네미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다. 그렇게 서로 엇갈려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다가, 우연히 하루미치와 야에가 재회하게 된다. 과연 그들의 첫사랑은 그대로 '실패한 첫사랑'으로 남게 될지, 아니면 그 첫사랑은 기적적으로 '성공한 끝사랑'으로 완성될지. 이 뻔한 클리셰를 다루며 시즌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시청자들을 맘 졸이게 만드는 흔한 스토리라인었다.
넷플릭스 드라마에 대한 나의 관심과 열정은 양은 냄비 같다. 처음 꽂혀서 하루 안에 미친듯이 몰아봤다가, 다음 날에는 금방 전부 잊어버리고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는 시즌의 에피소드 전체를 몰아본 날 다음에도, 일주일 뒤에도, 한 달 뒤에도, 계속 기억에 남았다. '퍼스트 러브'류의 멜로를 보면 (두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하는 예쁜 장면을 볼 때) 마음이 설레거나 (두 남녀 주인공이 시련을 겪는 슬픈 장면을 볼 떄) 마음이 아픈데, '퍼스트 러브'를 봤을 때는 항상 마음이 '먹먹'했고, 그 진통이 '퍼스트 러브'를 본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었다. 그렇다. 퍼스트 러브는 일반적인 멜로와는 분명히 다른 결로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치면 자동완성으로 그 뒤에 '이루지 못함'이 뜰 것이다. 그만큼 '첫사랑=이루지 못함'의 공식이 암묵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가 인상적인 작품인 이유는, 첫사랑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이루지 못한 것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야에와 하루미치의 인생은 잔인할 만큼 '이루지 못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야에의 아버지는 이미 가정이 있었던 남자로, 야에는 야에 아버지와 야에 어머니와의 '찰나의 사랑'으로 인해 우연하게 태어난 아이다. 자신을 아끼기는 하지만, 자신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짓말쟁이' 아빠 때문에 야에는 '아빠에게 사랑받는 아빠의 유일한 딸'이라는 소망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야에는 항상 스튜어디스를 꿈꿔왔다. 그러나 야에는 아이를 갖게 된 후에 대학교를 중퇴하면서 '스튜어디스'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부유한 의사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은 젊은 엄마로 멋진 삶을 살게될 것이라고 누구나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야에는 자신의 가난한 집안을 무시하는 시어머니와 외도를 한 남편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되면서 '행복한 가정'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이혼 이후 공장에서 악착같이 일하면서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하는 아들, 츠즈루를 키우려고 하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치고, 양육권을 이혼한 남편에게 양도하게 되면서 '아들과 함께하는 삶'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야에의 어머니가 '그렇게 촉망받는 아이였는데, 왜 이렇게 망가졌냐'라고 야에를 타박하고 원망하고, 화가 난 야에는 '성공한 자식이 되지 못했네'라고 응수하게 되면서 '단란한 모녀 관계'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하루미치도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야에는 '첫사랑'이라는 '이루지 못한 것'을 기억 상실증으로 '잃어버린' 대신에 그 이후의 인생에 숱한 '이루지 못한 것'들을 진득하게 마주하면서 시련을 겪는다. 반면 하루미치의 인생에는 야에만큼 인생만큼 '이루지 못한 것'들이 자잘하지는 않다. 굳이 억지로 찾아내자면 허리 부상 때문에 잠시 파일럿을 관두고 경찰 공무원으로 일하게 된다는 것 정도? 그러나 하루미치는 '첫사랑'이라는 '이루지 못한 것'을 '기억'하고, 자신이 어느 정도 그 첫사랑의 실패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 (만약 그가 야에를 방치하고 떠나지 않았다면 야에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에 죄책감을 느낌으로써 그 '하나이지만 거대한' '이루지 못한 것' 때문에 현재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괴로워한다. 재회 이전 하루미치는 야에를 '운명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순간들을 전부 안타깝게 놓쳐버리고, 야에와 관련된 소품들(라일락 꽃, first love 노래, 핸드폰 비밀번호, 박하 사탕)을 맞닥뜨릴 때마다 야에와의 추억을 아련히 떠올리면서 과거의 그늘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이루지 못한 모든 것'을 다루는 퍼스트 러브. 꿈, 사랑, 희망, 열정, 낭만의 청춘은 사라진 채, 오직 매일을 묵묵히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만 남은 중년. '중요한 것'은 희미해지고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만 선명해져서 떨쳐버릴 수 없는 공허함. 어쩌면 정말 '이룬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로 가득한 것이 바로 인생이라서, 인생에서는 간절히 '이루고 싶은 것'이 무참히 '이루지 못한 것'이 되는 실패가 누구에게나 필연적이라서 퍼스트 러브는 모두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빠는 '진정한 어른'이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나에게 항상 '간절히 원했어도, 최선을 다했어도 나에게 재능이 없어서, 나의 역량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해서, 운이 너무 나빠서,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서, 누군가가 훼방하고 방해해서, 누군가가 나보다 월등히 뛰어나서 등의 다양한 이유로 비참한 실패를 맞이하는 경우가 인생에서 분명히 생긴다. 그 실패를 묵묵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이다'라고 답했다. 나는 그 답변이 무서웠다. 물론 소소하게 이루지 못한 것들은 많지만, 정말 이루고 싶어한 것은 지금까지 (운이 따라서인지, 내가 노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이뤄오면서 살아왔다. 분명히 나도 언젠가는 인생에서 하루미치와 야에의 빛나는 첫사랑 같은, '너무나 간절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실패를 필연적으로 겪게 될 것이다. 그 실패는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나는 과연 강인하게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을지 전혀 가늠이 가지 않고, 솔직히 그런 실패를 평생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철없는 생각이 들어서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공포심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었다. '이루지 못한 것'을 회피한 나, '이루지 못한 것'으로 가득한 인생을 상상조차 하기 싫은 나에게 '이루지 못한 것' 자체인 인생을 적나라하게 스크린에 투영한 드라마가 '퍼스트 러브'였기에, 나에게는 특히 이 드라마의 휴유증이 극심했다.
그러나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루지 못한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이루기 위해' 열정을 바치며 반짝인 과거의 나, '이루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에 열심인 현재의 나. 그렇게 'Life goes on'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의 '의미'를 창출할 수 있다고. 시간이 흘러도 계속 사용됨으로써 처음의 순수했던 행복과 사랑을 유사한 형태로 다시 반복해서 실현시키는 오브제들, 우연이지만 운명처럼 느껴지는, 운명으로 믿었던 그 상대와의 특별한 마주침과 야속한 헤어짐, 각박하고 삭막한 혹은 건조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따뜻하게 서로에게 건네는 소소한 응원과 위로들이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야에의 아빠는 비록 야에와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야에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소녀인 야에에게 고급 만년필을 선물해주고, 엄마가 된 야에는 백화점에서 고급 만년필을 판매하는 상점을 구경하며 아들의 생일을 기념하여 아들에게 만년필을 선물해주고 싶어한다.
소년 하루미치는 소녀 야에에게 야에가 제일 좋아하는 꽃인 라일락을 선물해주고, 어른 하루미치는 약혼자 츠네미와의 상견례에서 츠네미에서 선물해주기 위해 라일락 꽃다발을 들고 간다. 소녀 야에는 소년 하루미치와의 첫 데이트를 준비하면서 거울 앞에서 예쁜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행복해하고, 야에의 아들은 엄마 야에에게 파란색 가디건을 선물해주고 어른 야에는 거울 앞아서 아들의 선물을 입어보며 행복해한다. 성인 야에는 자신의 아들에게 작곡가의 꿈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성인 하루미치는 야에의 아들에게 그가 짝사랑하는 춤추는 소녀를 소개함으로써 야에의 아들과 그가 짝사랑하는 춤추는 소녀는 만나게 되고, 서로의 첫사랑인 하루미치와 야에는 야에 아들의 첫사랑이 성공하기를 각자의 방식대로 지지하는 과정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
지구에서 발사한 화상 탐사선이 화성 궤도 진입에 실패할 당시 야에의 집을 방문한 소년 하루미치는 야에의 어머니로부터 야에의 임신과 결혼 소식을 통보받음으로써 야에와 만나지 못할 뿐더러 야에와 헤어지게 되고, 지구의 공전 궤도와 화성의 공전 궤도가 가까워지는 현재 성인 야에는 성인 하루미치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함으로써 둘은 천문대에서 마주치게 되고 화성을 관측하며 설레는 데이트를 하게 된다. 운명 따위는 믿지 않는다고 씁쓸하게 말했던 야에에게 야에의 동료인 택시 운전사는 회의감을 느꼈던 일터에서 든든한 동료인 야에를 만나게 된, 자신에게 발생한 작은 기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운명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힘을 내라고 응원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지 않으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야에에게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던 야에를 사랑했던 하루미치는 위로를 담은 애틋한 입맞춤을 한다.
본질은 유지된 채 다른 형태로 반복해서 나타나는 사랑과 행복, 특별한 마주침과 야속한 헤어짐의 연속, 오고가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들. 과거가 어떠했고, 현재가 어떠하고, 미래가 어떠할지와 상관없이 의미 없는 만남은 없고 의미 없는 추억은 없다. 인생은 의미 있는 인연과 의미 있는 경험의 연속이다. 비록 야에와 하루미치의 인생은 이루지 못한 것들로만 이루어져있지만, 야에와 하루미치는 '의미 있음'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이루지 못한 것'들 중 가장 가슴 시리게 아팠던, 그들의 실패한 첫사랑은 결국 마지막에 낭만적으로 성공한 끝사랑, 즉 '이룬 것'으로 변화한다. 막상 야에와 하루미치 당사자 본인은 의식하고 자각하지 못했지만, 사실 야에와 하루미치는 평생 동안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왔고, 인생에서 의미를 이루려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랬기에 두 사람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운명은 두 사람이 이뤄진다는 운명으로 바뀐다.
이루지 못한 것들 때문에 하찮고 보잘것 없는 삶처럼 보이더라도 계속 파고들어가면 무척 소중한 무엇인가가 반짝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고, 그 소중한 것을 간직하고 있는 자신의 삶, 즉 이루지 못했어도 의미가 있는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면 우연으로만 가득해 보였던 삶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이루지 못한 것을 싫어하고, 이루지 못한 인생을 의미가 없는 인생으로 착각했던 나에게 '퍼스터 러브-하츠코이'가 선사한 낭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