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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여름이_김연수

by 온화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김연수 작가가 낭독회에서 사람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집필한 단편 소설을 모은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이 작품에 실린 모든 단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연인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 사랑, 인간과 동물 간 사랑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소재로 삼으면서, 끝이 난 사랑의 경우 그것을 어떻게 품어갈지, 진행 중인 사랑의 경우 그것을 어떻게 이어갈지를 모색한다. 아무리 현재 처한 상황이 힘겹고 막막하더라도, 의미 없는 인연은 없고 끝이 없는 불행은 없다는 것을 이 작품의 단편들이 말해준다. 사나운 여름, 잔잔한 위로를 받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 매일 너에게서 뭔가를 배웠어. 네 앞에서는 좋아하는 것들만 생각하기. 태풍이든 장마든 뭔가 몰아칠 때는 그때야말로 한없이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기. 지금 이 순간 , 기다릴 만한 것을 기다리기. 아무리 작고 사소하더라도 변화에 민감하기. 비가 그친 뒤 바람의 미세한 변화나 '오늘은 산책을 나가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들을 흘러보내지 말고 알아차리기.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는 온몸으로 기뻐하기.


옥희한테는 뭐가 좋은 생각이니? 나한테는 이런 게 좋은 생각이야. 뱃속에 있는 이 아이도 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기분이 좋아져. 넌 어떤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니? (중략) 그래. 그런 거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더라도 그 좋은 기분만은 잃지 말자고 우리 오늘 약속하자.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떤 별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바라보는 것, 그것이 관찰자로서의 책임감이 아닐까요?


살아간다는 건 우연을 내 인생의 이야기 속으로 녹여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우연이란 나가 있기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우연한 일들을 내 인생으로 끌어들여 녹여낼 수 있느냐, 그러지 못하고 안이하게 외부의 스토리에 내 인생을 내어주고 마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우연을 나의 인생으로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우연에서 새로운 시작을 발견한다.
잘못된 선택은 없다. 잘못 일어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사랑해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많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이 우리를 찾아오리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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