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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Jul 18. 2024

더 베어 시즌 3

음식 냄새보다 짙어진 사람 냄새


더 베어 시즌 3이 돌아왔다. 사실 공개일은 우리나라보다 미국 현지가 3주 정도 빨랐다. 리뷰글을 살펴보니 시즌 1, 2보다는 못하다, 아쉽다는 비평이 많아서, 시즌제의 고질적인 문제가 더 베어에도 찾아왔나 싶어서 걱정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것은 기우였다. 더 베어 시즌 3은 오랜 시간 기다린 팬들을 만족시키에 충분한 시리즈이다.  내용과 연출에서 '요리'보다는 '인물'에 집중했다는 것, 그리고 카르멘 식당의 성장기보다는 누구나 한 번쯤 거쳐야 하는 '정체기'를 다룬다는 것이 이전 시즌과는 다른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전 시즌의 치열함, 소란스러움, 긴박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베어 시즌 3은 다소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사람' 없이 굴러가는 식당이란 없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서비스는 '사람들'의 협업과 정성이 있기 때문애 존재한다. 따라서 식당을 풀프레임으로 잡는 대신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잡아 식당을 지탱하는 기반인 '사람'에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더 베어의 변화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더 베어 시즌 3의 최고 에피소드를 선정해보았다.

첫 번째 에피소드, '내일'

모두가 기다려왔던 주인공 카르멘의 단독 에피소드다. '그날로 이끈 나날들' 이 로그라인이 에피소드의 내용을 탁월하게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연출 방식이 백미이다. '삶의 가장 극적인 일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다른 조연의 단독 에피소드와 달리, 이 에피소드는 카르멘의 셰프 생활 전체를 조망한다. 어떤 음식점을 전진했는지, 어떤 선배 셰프들의 가르침을 받았는지, 어떤 장소에서 생활했는지 등 이전 시즌까지 수상하리만치 꽁꽁 숨겨져 있던  카르멘의 발자취가 '드디어' 이 에피소드에서 모두 밝혀진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전 에피소드와의 연관성이 더 베어 시즌의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가령 시즌 2에서 카르멘은 리치를 웨이터로 성장시키기 위해 파인 다이닝 식당에 보내는데, 이 에피소드에는 카르멘이 초보 요리사 시절 그 똑같은 식당에서 어떻게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는지가 나온다. 또한 시즌 2에서 카르멘은 페스츄리와 디저트의 기본을 익히도록 마커스를 코펜하겐으로 보내는데, 이 에피소드에는 카르멘이 과거 그 똑같은 장소에서 어떻게 요리에 대한 영감을 수집했는지가 나온다. 현재에서 과거로의 역순행적 연결고리는, 카르멘은 자신의 경험과 자산을 기꺼이 자신의 동료들에게 공유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카르멘 또한 주변의 동료들처럼 '시작' 단계였던 시기가 있었고, 그 모든 세월을 거쳐 현재의 자리로 올라서게 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시사하며, 캐릭터에 짙은 깊이를 더해준다. 

하지만 이 모든 과거의 족적은 이 에피소드에서 선형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과거의 기억들을 불현듯이, 아무 논리나 순서나 명분 없이 떠올리는 것처럼, 이 에피소드 또한 카르멘의 과거 기억들을 무작위로 배치하여 보여준다. 하지만 이 무질서 속에도 하나의 법칙은 있다. 현재의 카르멘을 형성하는 데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인사이드 아웃의 비유를 빌리자면) '핵심 기억'들을 비춘다. 그 핵심 기억들에는 행복한 것도 있지만, 슬프고 아픈 것들도 있다. 형의 자살 소식을 누나로부터 전화로 전해들은 기억, 정신질환을 지닌 엄마로 인해 가족 행사 분위기가 처참히 망가진 기억, 미쉐린 식당에서 악질 셰프에게 정신적 학대를 받은 기억 등이 에피소드의 후반부로 갈수록 카르멘에게 업습해온다. 그 기억들은 카르멘이 왜 시즌 2에서 '고독과 우울'의 냉장고에 갇혔고, 만성적인 불안 장애에 시달리는지를 설명해준다. 이 연출 방식은 카르멘의 결함과, 향후 그 결함으로 발생할 문제를 암시하는 효과적인 복선으로 작동한다. 또한 사람들이 카르멘을 그날로 이끈 나날들을 숨죽여 지켜보게 만듦으로써, 각자 나를 현재의 나로 이끈 나날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보게끔 유도한다. 이야기를 넘어 한 인물의 입체적인 '자아'를 구현했다는 것이 바로 이 에피소드의 빛나는 성취다.


두 번째 에피소드, '냅킨'

카르멘의 에피소드만큼 더 베어의 팬들이 간절히 기다려온 티나의 단독 에피소드다. 이 에피소드는 티나의 과거 서사를 풀면서, '티나가 더 베어 식당에 일하게 된 이유'라는 팬들의 오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에피소드에서 티나의 처지는 삶의 최저점을 찍어본 적 있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만한 상황이다. 집세도 오르고, 남편의 승진은 실패하고, 티나는 하루 아침에 15년 동안 일한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한다. 티나는 루틴이 중요한 사람이다. 티나가 가족을 위해 요리하고 샤워를 하는 등 모닝 루틴을 철저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이 '어딘가에 소속되어서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티나의 성격을 단적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사회는 티나에게 가혹하다. 학위가 없다고, 링크드인이 없다고, 나이가 많다고, 티나보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은 티나의 조건을 문제삼으며 탈락을 통보한다. 결국 무너진 티나는 버스가 오기 전 정처없이 헤매다가 무작정 한 소란스러운 음식점을 들어가게 되는데, 그 음식점이 하필 샌드위치를 파는 '더 베어'다.

눈물을 흘리는 티나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카르멘의 형 마이클이 냅킨을 어색하게 만지작거리다가 겨우 용기내어 티나에게 말을 건다. 티나와 마이클이 나누는, 러닝타임의 10분 남짓한 대화가 바로 이 에피소드의 백미이다. 똑같이 일진 사나운 날을 보내고 있었던 두 인물은 자신의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에 대한 고충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이 짧은 대화에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고민들, 이를테면 간절한 꿈이 없다는 문제, 특출난 재능이 없다는 문제, 말썽인 가족이 있다는 문제, 돈이 없다는 문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는 문제, 이제 자신은 너무 늦었다는 문제, 가 마이클과 티나의 대화에서 모두 다뤄진다. 왜냐하면, 마이클과 티나는 하필이면 현재 그 모든 문제들에 짓눌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잡다하게 하는 데 꽤 잘하는 건 하나도 없어요'하는 마이클의 말과,  '뭣도 모르기는. 고생도 안 해 봤고 스트레스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랬죠. 나도 저것들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청 질투가 나는거예요.'하는 티나의 말에 우리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누구 하나도 사회가 정의하는 '좋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티나와 마이클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진심을 담은 위로를 건내고, 깊은 이해와 공감을 표한다. 따라서 자신의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해보는 게 어떻냐는 마이클의 제안은, 절대자가 가여운 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닌, 동등한 처지의 사람이 건내는 인정과 연대의 표현으로 귀결된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가 엉망인 일상에서 만들어나가고 있는 작은 기적들, 이를테면 따뜻한 대화, 도움, 공감 같은 것들, 그것이 얼마나 빛나는지를 조명하고 있기에 이 에피소드는 모두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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