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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Aug 12. 2024

소년이 온다-한강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감상문으로 '한 편의 글'을 굳이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나의 단어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다.' 


<소년이 온다>의 소재는 80년 5월 광주이다. 잔혹한 학살과 탄압이 벌어진 시대에서, 치료하지도 망각하지도 못하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첫 번째로 인상적인 부분은 <소년이 온다>가 80년대 광주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방식이다. 동호와 정대는 세상을 떠난 이들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 <어린 새>와 <검은 숨>에서 '고인'이 아닌 '너'로 호명된다.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는 '너라는 것은 이미 죽었다고 해도 너라고 부를 때는 마치 있는 것처럼 부르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나서 앞에 있는 것이죠. 그런 마음, 그래서 계속 부르는 마음, 불러서 살아있게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없어진 존재를 잊지 말아야 하며, 나아가 그들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하나의 존엄한 사람으로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작품의 주제의식이 주체의 호명에서부터 반영되었다.


두 번째로 인상적인 부분은 <소년이 온다>가 80년대 광주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소설에서 광주는 결코 제 3자의 시선에서 타자화되지 않는다. 보고서나 기사처럼 무미건조하고 간략하게 서술되지도 않는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시선으로, 뜨겁거나 차가웠던, 함께였거나 홀로였던 광주의 모든 순간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일례로 <검은 숨>에서, 학살로 인한 사람들의 시체가 쌓인 광경을 묘사하고, 그들을 애도하는 주체는 바로 죽은 정대의 혼이다.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내 배 위에 모르는 아저씨의 몸이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고, 아저씨의 배 위에 모르는 형의 몸이 다시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어. 내 얼굴에 그 형의 머리카락이 닿았어. 그 형의 오금이 내 맨발에 걸쳐졌어.' <밤의 눈동자>에서 군인의 탄압에 저항한 용기 있었던 사람들을 회고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그들과 뜻을 같이했던 선주이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버스에서 터져나오는 여자애들의 쨍쨍한 노래에 이끌려 광장으로, 총을 든 군대가 지키는 광장으로 걸었던 것처럼. 끝까지 남겠다고 가만히 손을 들었던 마지막 밤처럶. 희생자가 되어선 안돼,라고 성의 언니는 말했다.' 광주의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광주를 이야기하는 구조를 통해, 작품은 광주가 결코 왜곡되거나 폄하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전한다.


세 번째로 인상적인 부분은 <소년이 온다>가 생존자와 유가족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다. '고통'이라는 단어 하나로 결코 압축될 수 없는, 그들의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다뤄진다.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상처가 얼마나 지독하게 계속되고 있는지, 상처와 싸우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실감할 수 있다. <쇠와 피>는 잔혹한 고문의 생존자가 주인공인 장으로서, 고문이 어떻게 그의 육체를 넘어 영혼까지 망가뜨렸는지를 보여준다. 망가진 자신을 자조하는 태도, 같은 생존자에게 느끼는 공감과 혐오의 양가적인 감정이 나타난다. '그와 내가 가까웠다 한들 얼마나 가까웠겠습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했지만, 동시에 언제나 서로의 얼굴을 후려치고 싶어했습니다. 지우고 싶어했습니다. 영원히 밀어내고 싶어했습니다.'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가지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다는 걸 증명한거야.' <밤의 눈동자>는 노동 운동과 고문의 생존자가 주인공인 장으로서,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이들을 향한 죄책감, 참상을 되짚어가며 느끼는 괴로움이 생생히 나타나 있다.  '눈을 뜬 달이 침묵하며 옥상의 여자애들을 내려다 보던 봄밤이었다.'의 묘사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시대의 불합리와 폭력성에 대한 생존자의 원한이 서려 있다. <꽃 핀 쪽으로>는 아들 동호를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로, 가족이 망가지는 과정과 뼈에 사무치는 부모의 그리움이 그려진다. '봄이 오면 늘 그랬듯이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면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와 같은 심리 묘사는 그야말로 지옥에 남겨진 가족의 마음을 포착해낸다. 이처럼 '당신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일곱개의 뺨>의 직접적인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소년이 온다>는 저녁을 살아간, 죽지는 않았어도 삶이 장례식이 되어버린 광주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고통을 절대 묵인하거나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소년이 온다>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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