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에 대한 작가의 명쾌한 답을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는 민주주의를 (정당이) 패배를 받아들이는 사회라고 정의한다. 정당이 패배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권력이 아무런 잡음(쿠데타, 독재) 없이 이양된다는 뜻이다. 앞으로 다시 승리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과, 권력 이양이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패배를 받아들이는'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앞으로 다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며, 하나의 선거로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정당으로 하여금 권력 이양을 필사적으로 거부하게 만든다. 이러한 작가의 통찰은 현재 민주주의로부터 등을 돌리는 사회는 '믿음'이 아닌 '두려움'을 원동력 삼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2. 작가는 '독재의 평범성'이 어떻게 사회에 뿌리내리는지를 파헤친다. '독재의 평범성'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이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일관되고, 확고하게 거부하는 충직한 민주주의자와 달리,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폭력이나 반민주적 극단주의에 눈을 감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 그들이 반민주적 극단주의를 '묵인'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권력을 보존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서기 위한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반민주적 세력과 폭력을 '인정'하고, 때로는 그들의 행동을 보호하거나, 그들의 세력을 이용함으로써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는 민주주의 붕괴에 반드시 필요한 조력자 역할을 맡게 된다. 작가의 분석은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의 행동 기제가 어떠한지-이를테면 반민주적 세력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목적에는 동조하거나, 공식에서는 거리를 두지만 암묵적으로는 그들의 지원을 받아들인다거나-를 밝혀내며, 그들이 쓴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탈에 속아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3.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신앙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고 규정한다. 법은 민주주의를 '보호한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작가는 법이 어떻게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나, 반민주주의자 세력에 의해)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리는 독으로 악용되는지를 분석한다. 그것도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말이다.
첫 번째로, 정치인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한다. 어떠한 법이나 법률 체계도 모든 우발적인 사건을 포괄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통해, 명시적으로 금지된 행동을 허용 가능하게 만든다. 두 번째로, 정치인은 과도허거나 부당하게 법을 사용한다. 대통령 거부권, 사면권, 탄핵 등 특정한 법은 자제해서 사용하도록, 혹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특수한 법이 요구하는 '인내심'과 '자제력'을 저버리는 행동이 민주주의를 훼손시킨다. 세 번째로, 정치인은 법을 선택적으로 집행한다. 이는 정치인이 측근에게는 아무런 처벌을 내리지 않으면서, 정적에게는 가혹한 처벌을 내림으로써 법을 '사냥무기'로 사용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네 번째로, 정치인은 법률전쟁을 벌인다. 표면적으로는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공정을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정적을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새로운' 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섬뜩하게도, 민주주의는 어떠한 유혈 사태도, 대규모 체포도, 정치적 수감도 없이, 법이라는 합법적 수단을 통해 허물어질 수 있다. 저자는 법의 애매모호함을 이용해 법의 입법 취지 자체를 왜곡하거나 훼손시키는 정치인의 행태를 고발함으로써, 이에 대한 경각심을 지니는 것이 민주주의를 수호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피력한다.
4. 기존의 '민주주의' 담론은 다수에 의해 소수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를 다뤄왔다. 반면에 이 책은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미국의 현주소를 반영하여, 소수의 지배에 의해 다수의 의지가 좌절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이를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반다수결주의 제도, 정치적 소수가 계속해서 거대 다수를 이기거나 정책을 강요하는 것, 나아가 그 시스템을 이용해서 자신의 우위를 굳건하게 만드는 것,의 문제점이다. 작가는 미국이 (다른 나라가 반다수결주의 제도를 허물어뜨리는 동안) 반다수결주의를 고집했기 때문에 현재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퇴보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미국은 유권자가 아닌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선출하는 국가로서, '선거 다수의 의지에 반한'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또한 미국은 강력한 상원을 기반으로 양원제를 유지하는 국가로서, 세력과 권한이 각기 다른 주들을 강제로 평등하게 만들고, 필리버스터와 같은 소수의 거부권을 보장한다. 이는 의회 소수가 외회 다수를 방해하는 것을 용이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대법원 판사의 종신제를 유지하는 유일한 국가로서, '죽기 전까지 물러나지 않는' 소수 판사의 시대착오적이거나 그릇된 판단으로 인해 법의 발전이가로막히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처럼 작가는 미국이 민주주의의 모범이라는 허상을 벗겨내고, 반다수결주의를 과도하게 수호하는 미국의 문제를 비판한다. 선거 결과가 다수의 선택을 반영하도록 만들고, 반다수결주의 의회 및 사법 제도를 약화함으로써 지배하는 다수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는 작가의 개혁안은 '반다수결주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나아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와 다수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가'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