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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Aug 30. 2024

쓰라림을 파헤치는 반성문

'이걸 모른 채 어른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큰일날 뻔 했다.'


인턴 수십개를 지원했고 전부 탈락했다. 그래도 이걸 모른 채 어른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큰일날 뻔 했다. 


내가 무조건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심을 버릴 것.

(그동안 너는 대부분 합격만을 경험하며 하고 싶은 것을 손에 넣어왔으니까)

떨어졌을 때도 해야 할 일을 꿋꿋이 해내는 태도를 갖출 것.

(최종탈락 결과를 받은 날에도 영자신문사 과제인 기사 3편을 울면서 썼던 과거의 나를 토닥여주고 싶다)

타인에게 실패에 대한 한풀이를 하지 말 것.

(그만 좀 징징거리라고 화를 냈던 엄마의 반응을 기억할 것. 일기를 쓰거나 산책을 하면서 감정을 해소할 것)

다음부터는 영리하게 도움을 받을 것.

(학교 경력개발센터 자소서 첨삭, 직무 적합성 상담, 부트 캠프 프로그램. 학교 제휴 잡플래닛 기업 후기&면접 후기 무료 열람 서비스. 면접 예상 질문&답변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학교현장실습 인턴 프로그램. 이번 지원에는 그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공모전을 준비했고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래도 이걸 모른 채 어른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큰일날 뻔 했다. 


공모전 참여는 신중하게 결정할 것.

(몇 주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정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심 없이는 섣부르게 참여하지 말자. 다른 팀원에게 민폐니까. 아무 생각 없이 팀원 모집 톡방 들어가서 하겠다고 했다가 막상 시작하기 전 못할 것 같다는 문자를 팀장에게 보낼까 망설였던 너의 찌질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팀원 모집에 심혈을 기울일 것.

(공모전은 팀원 간 합이 잘 맞아야 한다. 관심 분야가 같은 사람들에게 연락하기를 두려워했고, 에타 홍보글에 팀원 모집글을 올리지 않았던 너의 용기 없었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

끝까지 예의를 갖출 것.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더라도 톡방에 그동안 고생많았고 감사했다는 문자는 팀원들에게 꼭 남겨야 한다)

최종 검토를 꼼꼼히 할 것.

(맞춤법. 시각자료. 캡션. 쪽 여백. 자간. 마감 시간 1분 전 메일을 보내며 느꼈던 그 아찔함을 다시는 느끼지 말도록 해야 한다. 누가 최종 검토를 하고 누가 최종 제출을 할지에 대한 역할 분담도 확실히 되어야 한다)



교환학생을 준비했고 1지망 대학교 합격에 실패했다. 그래도 이걸 모른 채 어른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큰일날 뻔 했다.


마찬가지로, 무조건 내가 원하는 대로 풀릴 것이라는 자만심을 버릴 것.

(당연히 1~3지망 런던 소재 대학교는 되겠지. 이런 자만심을 가졌고 4지망~10지망까지는 대학이 위치한 도시의 특징, 교통의 편리성, 공항의 접근성 따위 고려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썼었다. 이런 너의 무책임함과 방종함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때로 사람은 자신이 상상도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건 아니라고 부당하다고 때를 쓴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뜻밖의 상황, 맘에 들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어야 한다.)

결과가 성에 안 차도 노력한 과정까지 폄하하지 말 것

(그래도 과거의 너는 최선을 다해 어학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고 노력했다.)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이 될 것

(생활비. 기숙사비. 여행비. 등록금. 교환학생이라는 낭만에 취해 그 낭만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 다시 말해,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계획을 짜지 않았던 너의 철없음을 반성해야 한다.)



기타. 그래도 이걸 모른 채 어른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큰일 날 뻔 했다.

너는 너무 조급하다. 당장 나오는 결과만 좇는다. 좋아한 것을 꾸준하게 해온 경험이 거의 없다. 진심을 다해 관심사를 진득히 파고들기보다는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합격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좋아함의 실체가 없어서 공허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않았는가. 그래서 너는 이 플랫폼에 계속 글을 써야 한다. 


너는 너무 겉에 보이는 이미지에 집착했다. 솔직히 말해 합격하거나 성공해서 인스타나 블로그에 자랑하고 싶지 않았는가. 너는 무엇 하나 성취해냈다고 자랑할 것이 없는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미숙한 사람이었다. 지금처럼 반성하며 스토리에 아무것도 올리지 마라. 성공한 나의 모습만 곱게 포장해서 올린 과거의 블로그 포스팅에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추억하기 위해서, 기록하기 위해서, 홍보하기 위해서. 온갖 명분을 갖다 대도 결국은 자랑을 위한 얄팍한 수라는 것을 너는 알고 있지 않은가.


너는 너무 관계에 소홀했다. 마음이 힘들고 자존감 회복이 필요할 때만 그 사람들을 찾지 않았는가. 블로그 글과 인스타 스토리로만 그 사람들의 근황을 짐작하며 열등감과 망상, 피해의식에 빠져 있지 않았는가. 어색할 것 같다며 그 사람들과의 만남을 회피하고 있지 않았는가. 내가 내 편협함을 깨는 방법은 용기 내서 모임에 참석하고 꾸준히 사람과 대화하며 부딪히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는가. 


성공 후기를 쓰고 상승 곡선을 탈 줄만 알았는데 추락하거나 이탈하고 있고 내가 되고 싶은 나보다 내가 제일 피하고 싶었던 최악의 나를 자꾸 발견하게 된다. 어쩔 수 없다. 피를 철철 흘리는 것처럼 아프지만 그래도 이 반성문이라도 남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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