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났다.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책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 책을 썼다."
유시민 작가의 신작 <청춘의 독서>는 작가의 말에 나온 감상처럼 무어라 콕 집어서 정의하기 어려운 책이다. 어떻게 보면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은 고전을 소개하는 인문서적이고, 다르게 보면 작가가 책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아성찰적 에세이이고, 또 새롭게 보면 현대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고전의 메시지를 사용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논평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모호함이 내포하고 있는 다층성이 <청춘의 독서>가 지닌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1) 인문서적으로서의 매력
작가는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등 역사상 위대한 지성인들의 서적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넘게 정독한 사람이다. 책 한 권당 한 챕터씩 할애하며 고전의 내용을 독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청춘의 독서>는 고전과 독자를 연결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작가는 고전의 핵심 메시지(이를테면 돈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라는 것, 모든 종은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으며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해온 것)를 자신의 언어로 명쾌하게 제시할 뿐 아니라, 그 깨달음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어떻게 되는지, 그 깨달음이 암시하는 고전의 작가의 세계관 및 가치관이 무엇인지,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어서 고전의 작가가 미처 간과한 한계나 부작용은 없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한다. 때로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고전 속 명문장을 설명과 함께 인용하여 독자가 원문만이 선사할 수 있는 감동을 느끼도록 만들기도 한다. 고전을 안 읽은 (그리고 앞으로도 읽을 계획이 없는) 이들을 고전을 읽은 사람처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그것도 고전을 어설프게 읽은 사람보다 더 똑부러지게 고전을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어볼 가치가 있다. 덧붙여, 작가가 아름다운 보수주의자라고 명명한 맹자의 사상을 더 알아보고 싶어진 필자처럼, 이 책에서 소개하는 수십개의 고전 중 직접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읽어보고 싶은 고전 한 작품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2) 자전적/자아성찰적 에세이로서의 매력
같은 책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읽으면 감상이 당연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놓쳤던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별 감흥 없었던 것에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섣부르게 내린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그러한 재탐색과 재발견의 과정이 <청춘의 독서>에서 진솔하게 담겨있다. 가령 작가는 32년이 지난 후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두냐'라는 인물을 새로이 눈여겨보게 되는데, 소설 내내 변함없는 그녀의 인간적 품위와 올곧은 가치관을 보며 선한 목적은 오로지 선한 수단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으며, 그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좋은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최인훈의 <광장>을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대한민국의 불합리한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소설로 받아들이지만, 다시 읽고 난 다음에는 자신의 부족했던 지적 수준을 반성하며 북한 체제에 대한 작가의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인구론>을 처음 읽었을 때는 편견에 사로잡혀 비관적이고 기괴한 결론을 내버린 멜서스를 맹렬히 비난하지만, 다시 인구론을 읽고 난 다음에는 비판의 주체였던 자신도 과연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존재라고 할 수 있는지, 멜서스와 비슷한 우를 범한 적이 있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기도 한다. 책을 다시보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생각 및 가치관은 고정되지 않고 변한다는 것, 따라서 자신이 과거에 느끼고 생각한 것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또한 한때 자신의 세계관에 어떤 방식과 형태와 크기로든 영향을 준 책이 있다면 살면서 한 번쯤은 다시 그 책의 가치를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진정한 사유와 자신에 대한 이해가 어디서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에 담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참고하면 된다.
(3) 촌철살인 논평문으로서의 매력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고전의 말을 빌려 현대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짚어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전이 비판하고 있는 문제가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을 때 그러하다. 예를 들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제대로 된 취재와 사실검증도 없이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아무 힘 없는 일반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황색언론을 비판하고 있는 소설인데, 작가는 이 책을 다시 읽은 소감을 얘기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자신한테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정보를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형식으로 가공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형식으로 국민에게 제공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뼈있는 말을 던진다. 진실을 추구하는 좋은 언론의 등장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실현되지 못한 숙제임을 작가가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예시로, 작가는 밀의 <자유론>에 담긴 핵심 가치는 바로 표현의 자유임을 거듭 강조한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절대적 양심의 자유, 생각의 자유, 삶을 원하는 대로 설계한 자유를 해치게 된다고 서술하며, 최근 비상계엄이 표현의 자유를 짓밟으러 했다는 측면에서 헌법적 가치를 중대하게 훼손하는 위법행위임을 독자에게 납득시킨다. 불가침의 기본권을 향한 존중, 그리고 이를 수호하려는 노력이 한시도 소홀해지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작가가 사회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청춘의 독서>에는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해나갈 책임이, 시민으로서는 더 나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갈 책임이 있는 독자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아햘 지침이 담겨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발휘된 '잘못을 바로잡는' 우리의 능력이 어떻게 사그라들지 않은 채 필요한 순간마다 발휘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독자라면 이 책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