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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스므 Jan 25. 2023

[NZ 01] 여행 동지가 생겼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전 세계 고양이와 집사들을 만나보겠다고 혼자 떠난 세계여행은, <고양이를 여행하다>라는 매거진으로 발행해 하루 1개의 일기와 그림일기로 정리했다. 그 요약본은 <고양이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브런치북으로 발행했고. 마지막 나라인 뉴질랜드는 더 이상 고양이를 만나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기에 <두 번째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매거진으로 정리 중]




인천공항에서의 11시간은 꿈인가 싶었다. 살면서 석 달 가까이 내 35년 절친을 못 만나고 지내본 적이 없다 보니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동안 꽉 막혀있던 명치끝이 한순간 약효 좋은 소화제를 먹은 것처럼 시원하게 뚫려버렸다. 게다가 기자와 마케터로 만나 이제는 그냥 친구가 되어버린 또 다른 '일로 만난 사이' H가 뉴질랜드 여행에 합류하면서 내 행복은 최고조에 달했다. (나의 리셋된 친구 관계에 대한 고찰은 아래 링크에) 


https://brunch.co.kr/@fe3d246c61a94a6/86


사실 H는 내가 한창 현장에 있을 땐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국내 몇 없던 영화 월간지의 편집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를 담당하는 직속 기자들이야 일 핑계로 사석에서도 만나지만 편집장쯤 되고 보면, 한 달에 한번 마감으로 밤을 새우는 주간에 커피와 케이크를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얼굴 도장'을 찍는 거 외엔 만날 일이 그닥 없다. 간혹 제작사 혹은 수입사에서 밥을 사겠다고 하여 비싼 한정식집에서 편집국과 단체로 만나는 일이 있긴 해도 그게 다다.


그러다 우연히 내가 개최한 홍보 행사에서 그녀와 함께 밤을 새우며 술을 마셨고, 우리는 서로의 집이 아주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고 술(자리)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던 우리는 가끔씩 서로의 동네를 방문해 새로운 맛집을 찾아다녔고 그렇게 함께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시간 개념이 사라질 정도로 대화의 주제는 무궁무진했다.


게다가 당시 그녀의 남자친구는 고양이 전문 동물병원의 수의사였고 그를 소개받은 자리에서 나는 걸어 다니는 고양이 백과사전을 하나 얻게(?) 된 셈이었다. 아이들이 조금만 이상해도 병원을 가기 전 일단 구두로 이것저것 물어볼 친한 수의사가 있다는 건 고양이 집사에겐 천군만마였다. 


그렇게 일로 만난 사이였던 우리는 어느새 동네친구가 되었고 서로가 손에 꼽는 절친이 되었다.


이번 여행 계획을 듣고 누구보다 응원해 준 사람도 그녀였고 내 꼬심(!)에 넘어와 바쁜 스케줄도 조정하며 남자 친구도 버리고 뉴질랜드까지 함께해 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여행책도 몇 권 냈던 작가일 정도로 여행 베테랑인 그녀가 곁에 있으니 난 이번 여행을 그냥 즐기면 되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하나 있었으니.


지금껏 짧게 쓰더라도 '1일 1일기'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뉴질랜드를 여행하는 동안은 이게 안될 것 같았다. 여태 혼자 여행을 다녔으니 하루 종일 생각이란 게 멈추지 않았고(내 특기이기도 하고) 밤이면 그 모두를 정리해서 일기를 써왔다. 그런데 동행이, 특히 '시간 순삭 수다'의 장본인 중 하나인 H가 왔으니 혼자 하는 생각이란 건 꼬르륵 잠이 드는 순간에 잠깐, 이 다다.


둘이 하는 수다가 지금으로선 훨씬 훨씬 재밌으니 별 수 있나. 일기 따위 뭐. 


동행자가 있다는 건, 목적지보다 거기까지 가는 길 자체가 행복해지는 일이란 걸 깨달은 첫날.


커피를 나란히 시키고, 마주 앉아 함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지금의 나에겐 최고의 행복 @테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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