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정말 복스럽게 잘 먹는다.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는 김치로 그냥 김치도 아닌 할머니가 담근 김치여야만 한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고기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김치찌개와. 등갈비가 살살 녹는 묵은지 김치찜이다.
소풍 갈 때도 아이는 김치볶음밥을 도시락으로 싸간다. 날씨가 추운 날에 차가운 김밥을 먹던 아이들이 보온도시락에 아직 미지근한 김치볶음밥과 국물을 싸 온 아이의 메뉴를 본 후, 친구들이 하나둘 메뉴를 김치볶음밥으로 바꾸더란다. 김치사랑이 유난해서 김치의 선별도 까다롭다. 김치가 다 떨어져 파는 김치를 사오면, 이 맛은 아니라면서 할머니네 가서 김치 좀 가져와야겠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손주를 위해 여름엔 아삭하게 익은 열무김치를 겨울이면 묵은 총각김치를 씻고 굵은 멸치를 넣어 푹 삶은 지진김치를 해준다. 김치 하나면 밥 두 그릇은 뚝딱이다.
여름이면 열무와 고추장 들기름을 넣어 쓱쓱 비빈 열무비빔밥을 아침으로 먹고 가고, 삼겹살을 구울 때 "엄마 김치도 부탁해"라고 말하면 난 김치를 옆에 올려 같이 구워준다. 비 오는 날이면 간식으로 김치부침개를, 나들이 갈 때면 볶은 김치를 넣은 삼각김밥이다.
요리를 하면 주방에 와서 "뭐 했어" 하며 방금 만든 따끈한 반찬을 집어먹으며 "맛있다"라고 말해주고 지나간다. 뭐가 먹고 싶다고 정확히 말해주고, 해주면 맛있다고 칭찬해 주니 뿌듯함에 힘을 받으며 나의 요리실력은 점점 늘었다. 무엇을 해주든 한 마디씩 해주고 맛있게 먹는다.
잘 자고,
아이는 일단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면 5분 안에 잠이 든다.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오늘의 일과를 마친 아이는 푹 자는 거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강한 생활리듬을 가진 아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미적대거나 뒤척임 없이 번쩍 일어난다. 화장실에 가서 장을 비우고 한식으로 아침을 먹고 여유 있게 학교에 간다.
여느 집이건 아침이면 깨우고 먹이고 챙겨 보내느라 전쟁인 집이 많은데,아이의 아침은 바쁘지 않다. 먼저 일어나면 나를 깨워주며 잘 잤냐고 인사를 해준다.
더할 나위 없는 숙면의 힘이다.
잘 놀고,
아이는 사교육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종일 놀아야 했기 때문에 학원에 갈 이유가 없었다. 글자는 책을 읽어주니 7세 때 자연스럽게 읽기 시작했고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한글을 떼지 못해도 너그러운 대안학교에 들어갔기에 그 흔한 학습지도 풀 기회가 없었다. 사교육을 안 하기로 약속한 학교에 다니다 보니, 주로 오후시간에 노는 시간이 많아 학원 다닐 시간이 없다는 게 더 맞겠다. 피아노와 기타도 혼자 놀면서 익히는 걸 좋아한다. 방학 때에는 무조건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뒹굴뒹굴 쉬고 놀겠다 선언하고, 학교 다녀오면 바로 나가 놀고 밥시간되면 알아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