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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 그림 읽는 남자 Jul 10. 2023

들여다본 전시. 5 / 국립대구박물관 기획특별전

<이건희 기증 특별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


 이번 국립대구박물관 기획특별전인 <이건희 기증 특별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시작으로 국립광주박물관에 이어 세 번째 전시이다. 더불어 두 번째 지방 나들이 전시이다. 『이건희컬랙션』의 고미술은 그의 현대미술품만큼이나 대중적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대체로 서울 및 수도권 중심으로 예술문화와 전시들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상경해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기획전시 혹은 특별전시를 하면 지방까지 찾아가서 관람 및 체험을 하는 문화소비층이 증가하였다. 이번 대구에서 개최하는 <이건희 기증 특별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 역시도 지역사회 및 시민들에게 문화생활을 이바지함과 더불어 수도권에서도 찾아와서 관람을 즐기는 전시이다.   

    

 <이건희 기증 특별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전시 중인 미술품 중에서 인상 깊었던 몇몇 개의 회화를 중점으로 소개해보려 한다.


<이건희 기증 특별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 포스터




1. 군자의 표상_죽석(竹石)과 묵란(墨蘭).

1_1.  정학교의 고목죽석도(怪石墨竹圖).


 문인화는 사물의 외형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사물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나 사상을 나타낸 그림이다. 형태의 미감보다는 사의(寫意)적 경향을 중시한다. 문인들은 사의성(寫意性)으로 그려진 산수화와 함께 화훼(花卉)도 문인화의 중요 소재로 활용하였다. 특히 화훼(花卉)는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즐겨 그렸다. 사군자(四君子)라 하는 매난국죽(梅蘭菊竹)이 이에 해당한다. 조선의 경우 15~17세기는 한 가지 화목을 간결하게 그리는 것을 추구하였다. 18세기는 여러 가지 화목을 다양하게 그리는 화가들이 등장한다. 조선말에서 근대 초기에는 문인적인 요소가 아닌 장식적이고 화려한 화풍(畫風)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정학교, <고목죽석도>, 20세기, 각 141x45.5cm, 지본수묵, 국립중앙박물관

 몽인 정학교(丁學敎, 1832~1914)의 <고목죽석도>를 보면 근대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몽인 정학교는 근대서화가이자 서예가인 우향 정대유(丁大有, 1852~1927)의 아버지이며 전기(田琦, 1825~1854), 오경석(吳慶錫, 1831~1879), 유재소(劉在韶, 1829~1911), 이하응(李昰應, 1820~1898) 등 추사학파들과 교류한 인물이다. 더불어 윤용구(尹用求, 1853~1939), 안중식(安中植, 1861~ 919), 오세창(吳世昌, 1864~1953)과 민영익(閔泳翊, 1860~1914) 근대기 인물들과도 서화로써 친분을 쌓았다. 안중식처럼 장승업 그림에 화제를 남기는 등 서화계에 남다른 입지를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심하게 변형된 추상적 형태의 괴석을 잘 그려 '정괴석(丁怪石)'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정학교가 그린 <고목죽석도>는 기괴하면서 입체적인 괴석이 압도적이다. 왼편 괴석은 대나무처럼 곧게 하늘로 올라가 있다. 아마 왼편의 쭉 뻗은 대나무와 대치하는 방향으로 그린 그것으로 보인다. 대나무가 그려진 죽석도의 괴석은 왼편에서 오른편의 대각선 구도로 그려져 있다. 왼편의 괴석도 하단은 오른편에서 왼편의 대각선 구도로 나아가다 다시 왼편으로 쭉 뻗어 올라갔다. 서예의 대련 형식으로 고아함을 추구한 것 같지만, 장식성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괴석이라는 변하지 않는 부동심(不動心)과 대나무의 꼿꼿함이 화면을 뚫을 것 같은 입체감이 가장 큰 특징이다.




1. 군자의 표상_죽석(竹石)과 묵란(墨蘭).

1_2.  민영익의 묵란도(墨蘭圖).


 근대의 묵란(墨蘭)을 꼽으라면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과 함께 운미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을 함께 꼽을 수 있다. 민영익은 당시 외척세력인 여흥민 씨로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이다. 민영익은 조선 개화기 개화업무를 이끌었고 후에는 고급관료 생활을 하였지만, 정치 노선 등이 문제가 되어 반대파에 몰려 중국으로 망명(亡命)하였다. 망명(亡命) 후 민영익은 홍콩과 상해에서 활동한 상해화파(上海畫派)의 오창석(吳昌碩, 1844~1927)과 포화(蒲華, 1834~1911) 등과 시서화로 교유하며 독자적인 운미란(芸楣蘭)을 완성하였다.

민영익, <묵란도(墨蘭圖)>, 1904년 132x58cm, 지본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운미란(芸楣蘭)이라 불리는 민영익의 묵란은 비수(肥瘦)와 삼전(三轉)이 없는 난엽(蘭葉)이 곧으면서 힘차게 곡선을 그리다 서미(鼠尾) 부분이 뭉툭한 것이 특징이다. 삼전(三轉) 없이 운필을 치는 것은 상해화파(上海畫派)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운필(運筆)로 곡선을 치다 서미(鼠尾) 부분에 특징을 넣은 것은 젊은 시절 추사의 묵란을 임모한 영향일 것이다.


 <묵란도(墨蘭圖)>는 운미란(芸楣蘭)의 형식과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하단에 그려진 묵란은 밀집되어 군란(群蘭)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군란(群蘭)으로 그려진 난초는 복건성(福建省)에서 자생하던 건란(建蘭)으로 잎이 굵고 뻣뻣하며 직선형이 특징이다. 이렇듯 민영익은 건란(建蘭)을 힘이 있고 자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군란(群蘭)으로 그렸다. 더불어 난초의 힘찬 필획(筆劃)은 필법은 예서(隸書)이며 유려한 곡선은 행서(行書)의 필법을 차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상단의 묵란은 자연적인 생태가 아닌 화분에 심겨 있다. 제일 긴 엽(葉)은 다른 엽(葉)에서 보이지 않은 비수(肥瘦)의 삼전三轉이 드러나 있다. 혜란(蕙蘭)을 춘란(春蘭)의 형식으로 그린 난초이거나 혹은 하단은 상해화파(上海畫派)의 양식이라면 상단의 분란(盆蘭)은 기존의 필법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2. 도석인물화()의 신선향.

2_1.  이상좌의 불화첩(佛畵帖).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는 도교와 불교의 인물을 소재로 장수(長壽)와 화복(和福) 등 상서로움 뜻하는 그림이다. 도교적 인물은 선인상(仙人像), 도선상(道仙像), 군상(群像)으로 표현하였다. 불교적 인물은 사찰의 보수적인 불화보다 선종화적(禪宗畵的)인 의미를 주로 이룬다. 특히 석가여래, 보살, 나한 등이 등장한다. 화목(畵目)과 화제(畵題)는 선종의 조사(祖師)인 달마(達磨)와 함께 포대(布袋), 한산(寒山), 습득(拾得) 등과 같은 선사(禪師)를 많이 그렸다.


 그 밖에도 백의관음(白衣觀音)과 나한(羅漢) 등을 통하여 길흉화복을 빌었다. 이 밖에도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 유가적 인물과 고사를 활용하여 도가적 인물로 그리는 등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의 주요 인물들을 함께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상좌, <불화첩(佛畵帖)>, 16세기, 각 44.4x26.4cm, 지본수묵, 국립중앙박물관

 <불화첩(佛畵帖)>을 남긴 이상좌(1465~?)는 조선 전기 화가인 이상좌(1465∼?)는 노비 출신이었으나 그림을 잘 그려 중종(中宗, 1488~1544)의 천거로 면천(免賤)을 받고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특히 이상좌는 인물화를 잘 그리기로 유명하다.    

 

 <불화첩(佛畵帖)>의 인물들은 부처님의 불법(佛法)을 듣고 성인(聖人)이 된 나한을 그린 것이다. 이 화첩의 그림들은 종이 바탕에 채색 없이 묵필(墨筆)로 그린 것으로 본화(本畵)의 초본(初本) 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불화첩(佛畵帖)>에 그려진 나한을 보면 머리 위에 번호가 있어 16명의 나한을 그린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5점만 남아있다. 이상좌가 그린 <불화첩(佛畵帖)>은 비록 밑그림이지만, 필획이 유려하고 활달하다, 나한의 옷 선을 보면 굵은 선과 가는 선이 적절히 조화시켜 나한의 무게감을 돋보이게 해 주었다. 반면 얼굴은 옅은 선으로 그려 나한의 온화함이 나타나 있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나한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이상좌의 활달한 솜씨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2. 도석인물화()의 신선향.

2_2.  김홍도의 어가한면도와 운상신선도.


 도석화(道釋畫)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다.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김홍도를 가리켜 무소불능(無所不能)의 신필(神筆)이 하였다. 그만큼 김홍도는 산수면 산수, 풍속이면 풍속, 화조(花鳥) 면 화조(花鳥) 등 다재다능(多才多能)한 화가이다. 그중에서도 도석화에도 남다른 일가를 이룬 화가이다.     


김홍도, <어가한면도>, 18세기, 지본담채, 29x41.5cm, 국립중앙박물관

 <어가한면도>를 보면 한가로이 배 위에 잠든 어부가 그려져 있다. 물살을 보면 흔들림이 있어 보이지만 어부는 깊은 꿈을 꾸듯 아랑곳하지 않고 잠에 빠져 있다. 마치 세속을 멀리한 인물처럼 물아일체(物我一體)되어있다.


 화제는 ‘류하전탄야부지, 단옹취묵(流下前灘也不知, 檀翁醉墨)’으로 ‘앞 여울까지 흘러가도 모르고 있네, 단옹이 취기에 그리다.’라 적혀있다. 얼마나 취했으면 ‘류하전탄야부지(流下前灘也不知)’는 오른쪽으로 쏠려있다. 취기에 그린 그림이지만 그림의 주제와 화제의 내용이 한 쌍을 이뤄 그림의 격을 보여준다.




3. 시화(詩畫)의 걸작(傑作), 가을이 오는 소리.

1.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수많은 그림 중에서 서화동원(書畵同原)의 일격(逸格)인 그림은 그의 <추성부도(秋聲賦圖)>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김홍도의 그림 중 연도가 확인되는 마지막 작품이다. <추성부도(秋聲賦圖)>는 북송대 문인 구양수의「추성부(秋聲賦)」를 그린 산수화로 시의(詩意)를 나타낸 그림이다. 구양수의「추성부(秋聲賦)」는 가을의 소리를 빌려 인간의 짧은 삶의 비애(悲哀)를 담고 있다.


김홍도, <추성부도(秋聲賦圖)>, 1805년, 지본담채, 55.8x214.7cm,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은 보면 화면이 전체로 엷은 먹으로 칠하고, 산세와 능선에는 농담(濃淡)을 주어 어둑한 가을밤의 분위기를 잡아내었다. 또한, 나무와 바위를 갈필(渴筆)의 마른 붓으로 그려내 스산하고 건조한 가을의 인상을 안착시켰다. 그리고 화면 가득한 가을 숲이 가로로 팽창된 것은 마치, 가을의 정취감을 표현할 지면을 넓게 그려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동자의 손짓과 흔들리는 나무를 보면 그림의 시공간이 보름달이 뜬 언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추풍(秋風)이라는 가을 소리의 시작점이 화면의 왼편이다. 앞서 말한 갈필(渴筆)의 마른 붓으로 그린 나무와 산세는 가을바람으로, 왼편이 더 거칠고 역동적인 게 특징이다. 수목들은 누런빛의 낙엽을 무심히 떨어트리고 있으며, 그 사이의 별채(別墅)는 아무도 없는 듯 텅 비어있다. 별채(別墅)를 장식한 대숲(竹林)들은 푸석푸석 히 마른 잎을 흔들고 있다. 그리고 별채(別墅) 위에 훤히 떠있는 달은 아래와 대조적(對照的)으로 나타내어 가을 적막함이 느껴지게 해 준다.



 그림의 오른편을 보면 대각선의 방향으로 포치(布置)된 산과 언덕이 선비의 초옥(草屋)과 배경을 감싸고 있어 왼편과 사뭇 다른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초옥(草屋) 맞은편에 학 두 마리가 있는데, 무언가를 경계하듯 꼿꼿이 목과 다리를 내고 있다. 마치 곧 다가올 추풍(秋風)이 달갑지 않아 보인다. 다시 화면 중앙에는 초옥(草屋) 안의 선비와 왼편 언덕을 가리키는 동자가 나타나있다. 이러한 묘사들은 왼편과 달리 생동감이 있어 보인다. 초옥(草屋)에 둘러싸인 수목들과 앙상하지만 산세처럼 배경의 안정감을 주고 있다. 이러한 배치들은 왼편과 또 다른 대조점(對照點)을 느끼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김홍도는 구양수의「추성부(秋聲賦)」 를 왼편 여백에 옮겨 써 내려갔다. 그림을 보고 시를 읽으며 다시 그림을 보면 그 속 정경에 젖어들어가게 해 준다. 이렇듯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는 가까이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형성하였으며, 전체적으로 보면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라는 문학을 느낄 수 있는 시의(詩意)를 담아내었다. 김홍도는 글 속에 가을의 소리를, 그림으로는 가을의 색을 치환(置換) 시켰다.




4. <이건희 기증 특별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


 서울에서 시작된 <이건희 기증 특별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는 광주, 그리고 대구까지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서울에서 느꼈던 그 여운을 지방에서도 느낄 수 있어서 각별한 전시로 추억될 듯싶다. 더불어 우리의 고화를 대중적으로 선보인 전시여서 더욱 의미가 깊은 전시이다. 이러한 전시들이 향후에도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무리를 지어본다.



참고문헌.

1. 국립대구박물관 저, 어느 수집가의 초대, 국립대구박물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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