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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 그림 읽는 남자 Jul 14. 2023

비 오는 날, 산수화 감상(下雨,欣賞山水畫).

옛 그림 산책. 7




1. 더위만큼 길고 긴 장마.


 그 무덥다는 하지(夏至)를 지나 초복(初伏)도 지났다. 해도 예년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찰나에 장마가 찾아왔다. 더위만큼이나 장마도 예전보다 기간이 길어졌다. 그만큼 지구온난화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길고 긴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날에는 어떤 그림을 보는 것이 좋을지 고심하던 중 너무 제격인 그림들을 찾았다. 이번 7월은 비와 함께 감상할 그림들로 구성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2. 비 오는 풍경, 고색창연(古色蒼然)의 하다.

2_1. 심사정의 강산야박도(江上夜泊圖).


 조선 후기 문인화가라 하면 화성(畫聖) 겸재 정선(鄭敾, 1676~1759) 만큼이나 이름을 떨친 이가 있으니 바로 현재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역설적으로 대역죄인의 자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중국 남화(南畵)와 북화(北畵)를 임모하면서 화훼(花卉), 초충(草蟲), 영모(翎毛)를 비롯하여, 산수(山水)가 가장 뛰어났다.


심사정, <강상야박도>, 1747년, 153.2x61cm, 비단채색, 국립중앙박물관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는 1747년 심사정이 40대에 그린 것으로, 그의 산수화(山水畵) 중에서도 북종화풍(北宗畵風) 원체(院體)를 잘 구사한 것이자, 복고풍이 느껴지는 득의작(得意作)이다. 그림의 전경(前景) · 중경(中景) · 원경(遠景)이 짜임새가 균일하여, 삼원법의 균형을 잘 갖추고 있다.


 묵색(墨色)도 온건 습진 것이 화풍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수목의 기법이나 산과 암석의 준법(皴法)도 고식(古式)의 틀을 벗어나지 않아 고법의 양식을 탐미하게 해준다.


 그리고 원경(遠景)의 부분을 보면 미불과 동기창의 기법과 산수에 착안한 것이 눈에 보인다. 이렇듯 전체적인 화면은 북종화(北宗畵) 기법이지만, 자세히 보면 남종화 기법도 절충된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우리 산세의 핍진(逼眞)함을 표현한 진경산수는 아니지만, 고식(古式)의 방고(倣古)로 자연의 실사(實寫)를 아취(雅趣)있게 담겨있는 득의작(得意作)이다.




2. 비 오는 풍경, 고색창연(古色蒼然)의 하다.

2_2. 이인문의 우경산수도(雨景山水圖).


 조선 후기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이 문인으로서 산수의 긍지(矜持)를 올렸다면 화원으로서 재능을 쌓은 이가 있으니 바로 유춘 이인문(李寅文,1745~1824 이후)이다. 이인문은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 이후)와 동갑내기이자 같은 도화서(圖畫署) 화원이다. 이인문의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16세기 이후부터 이미 역관, 의관, 잡과 등 중인계층 출신이다.


 전문직의 중인계층이었지만 화원으로서 업을 시작한 것은 이인문이 처음이다. 비록 중인 신분이지만 당대 명망 높은 문인들과도 어울릴 정도로 문인의 예술성이 뒷받침된 인물이다. 화원이 되기 전에는 심사정(沈師正, 1707~1769) 등 여러 화가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화원이 된 이후 39세 때인 1783년 규장각 초대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이 선발된다.


이인문, <우경산수도>, 18세기, 121.2x56.3cm, 지본담채, 국립광주박물관


 이인문이 그린 우경산수도(雨景山水圖)는 비가 내린 뒤 산세의 모습을 담아낸 그림이다. 원경(遠景)의 산을 미점준(米點皴)으로 처리하여 미법산수(米法山水)의 필의(筆意)를 한껏 보여주고 있다.


 중경(中景)의 부분은 비가 온 뒤 산수의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구름이 낀 안개가 서려 있고, 근경(近景)은 초가와 수목이 배치되어있다. 화면을 삼원법(三遠法)으로 원근감이 조성되어 감상의 깊이를 높여준다.


 또한, 심사정의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처럼 묵색(墨色)이 온건 습진 하여 그림의 격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번지듯 스며든 담묵(淡墨)과 부드럽고 습윤한 농묵(濃墨), 즉 발묵(潑墨)의 효과가 차분하게 그림의 밀도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며 감상했으면 더 운치 있을 작품이다.




3.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과 한양.

3_1. 정선의 장안연우(長安烟雨).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은 금강산만큼이나 한양 및 한양의 근교를 많이 그렸다. 특히 본인이 살았던 인왕산 주변을 그림으로 많이 남겼는데, 아름답지 못해 심취까지 담아내었다.


정선, <경교명승첩_장안연우>, 1741년, 지본수묵, 39.8x30cm, 간송미술관 소장


 비가 내리는 날 북악산에 올라 한양을 내려다본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장안(長安)은 중국 당나라의 수도(首都)였다. 왜 비 내리는 한양의 풍경을 장안(長安)이라 했을지 의아스럽지만. 사실 나라의 수도라는 대명칭으로 쓰이는 명칭이다.


  다시 그림을 보면 안개 너머로 우뚝 남산이 보이고 관악산과 우면산, 청계산 등이 이어져 있다. 남산을 보면 우뚝 솟은 봉우리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유명한 남산의 소나무이다. 후경과 전경 사이를 여백으로 처리하여 안개가 자욱한 느낌이 들며 비 온 뒤 한양의 운치를 더해준다.


 후경의 남산과 그 주변 산은 미점준(米點皴)으로 처리하고 능선 사이는 농묵(濃墨)과 담묵(淡墨) 처리하였다. 마치 안개와 비가 섞인 운무(雲霧)가 깔린 것 같은 사실감이 느껴진다.      


 전경에는 우뚝 솟은 소나무가 눈에 확실히 띄는데, 저 부분에서 비가 내리는 한양의 풍경을 감상한 곳이 아닐까 유추해 볼 수 있다. 더불어 지형을 보면 아마 필운대(弼雲臺)로 짐작된다.




3.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과 한양.

3_1.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앞서 말했듯이 정선은 금상산 만큼이나 인왕산 부근의 한양과 근교를 많이 그렸다. 그중에서 득의작을 꼽으라면 당연히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75세라는 노년의 나이에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묵법(墨法)의 진가를 나타내었다. 비가 내린 후 인왕산의 웅건함이 실로 느껴진다.     


정선, <인왕제색도>, 1751년, 지본수묵, 79.2x138.2cm, 국립중앙박물관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다 그쳤으면, 산 능선에 안개가 해무(海霧)처럼 걸쳐있다. 아니면 인왕산의 기세가 강하여 구름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만큼 정선이 진심으로 모든 기량을 쏟아부어 완성한 걸작이다. 이전에 그린 그의 그림은 대체로 화면의 중앙을 중심으로 소소밀밀(疏疏密密)한 형태인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파격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특히나 인왕산의 매바위 및 바위 부분을 쇄찰법(刷察法)으로 처리하고 그 위를 다시 파묵(破墨)을 하였다. 이러한 기법이 비가 그쳤음에도 아직 비를 머금은 느낌과 더불어 바위의 반질거리는 질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농묵(濃墨)으로 쌓은 소나무와 파필(破筆)로 잎을 촘촘히 그린 나무가 능선마다 자리 잡고 있어 산수의 울창함이 느껴진다. 또한, 기와집 주변에 빽빽이 나열된 수림(樹林)이 비가 온 뒤의 습윤한 풍경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

     

 이렇게만 봐도 운격(韻格)이 느껴지는 그림이지만,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여러 가지 대조가 감상에 아취(雅趣)를 더한다. 바위를 쇄찰(刷察)과 파묵(破墨)을 내리꽂아 수직적인 운동감이 느껴진다면, 바위산 하단의 안개와 구름은 넓게 흐르는 수평적 시안을 줘 수직과 수평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적묵(積墨)의 흑으로 채워진 바위는 화면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반대로 하얀 구름과 안개로 둘러싸인 수림의 기와집은 적료하여 바위산과 대조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렇듯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공간과 필법이 조화로운 그림이다. 아마 겸재(謙齋)라는 본인의 호처럼 주역(易理)에 충실하였기에 노년에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한다. 예로부터 역리를 잘 풀이하면 변화와 조화에 능통해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역리를 그림으로 잘 활용한 사람이 바로 겸재(謙齋)라 할 수 있다.




4.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신다(潤物細無聲).


 비 오는 풍경은 옛사람들이 즐겨 그린 자연의 소재였다. 관념으로 그리던 실제의 경관을 그리던 우경(雨景)은 수묵의 격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를 보면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신다(潤物細無聲).’ 라 하였다. 그만큼 비는 있다가도 없지만,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아마 옛 문인들은 찰나(刹那)의 순간 사라지지만 흔적이 있는 만물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장마 기간에 옛 그림의 운치를 감상하면서 비와 사색을 보내는 것도 계절의 묘미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1. 중앙일보, 조선의 미 1, 중앙일보사, 1983.

2. 고연희, 조선의 산수화, 돌베개, 2007.

3. 홍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강의 3, 눌와, 2013.

4. 이예성, 현재 심사정(조선남종화의 탄생), 돌베개,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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