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산책. 12
1. 청룡의 해, 갑진년(甲辰年).
24절기의 시작인 입춘(立春)과 함께 설도 지났다. 한마디로 진정한 청룡의 해인 갑진년(甲辰年)이 시작되었다. 다른 해보다 올해는 유난히 새해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아마 용이라는 상상 속의 즐거움과 청색이라는 푸른 의미가 많은 사람에게 길상(吉祥)의 가치를 주는 것으로 본다. 해도 바뀌었으며 용의 해이니 용이 그려진 그림 몇 개를 소개해 볼까 한다.
2. 왕실의 위엄과 문인의 운치.
2_1. 경복궁 사정전의 운룡도벽화.
경복궁 사정전(思政殿)에 가면 임금의 정좌 위에 구름 속에 두 마리의 용이 기세를 펼치고 있다. 사정전(思政殿)은 궁궐의 편전(便殿)으로 임금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궁궐의 정전(正殿)만큼이나 중요한 공간으로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다음으로 중요한 건물이 바로 사정전(思政殿)이다. 이러한 공간에는 대체로 왕과 혹은 왕실의 위엄을 보이는 일월오악병풍(日月五岳屛風)이나 용이 그려진 병풍을 치지만, 사정전(思政殿)의 경우 임금의 정자 뒷바닥과 천장 사이에 벽화가 펼쳐져 있다. 병풍만큼이나 시선에서 위엄과 긴장감을 갖춘 벽화로 아마 경복궁 재건 당시 흥선대원군이 왕실과 왕의 권위를 드높이고자 설치한 벽화로 추측된다.
그림은 대략 3m~5m 크기로 사정전의 건물 크기만큼이나 거대하다. 그림의 크기만큼이나 두 마리의 용도 용맹하고 매섭게 그렸다. 역경(易經)을 보면 용은 구름을 달고 다니고 호랑이는 바람을 끈다고 하였다. 그래서 용을 그릴 때 구름을 그리는 것은 필수라 할 수 있다. 사정전 벽화에 그려진 용들은 바다처럼 드넓은 구름을 휘감고 있다. 용의 여의주와 갈기 부분에 불꽃 문양으로 장식되어 그림에 화려함과 긴장감도 넣어주었다. 이러한 장식과 용의 세세한 부분을 봤을 때는 일반적인 화가의 솜씨가 아니라 도화서 화원 그린 것으로 보인다.
멀리서 보아도 용의 위엄과 장엄함이 느껴지는 그림이며 가까이서 보아도 그 장대함이 느껴지는 벽화다. 비록 그림의 바람처럼 조선의 영원함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현재까지 그림이 남아있으니 그림이라도 오래도록 보전되길 바란다.
2. 왕실의 위엄과 문인의 운치.
2_2. 전(傳) 심사정의 의룡도(醫龍圖).
의룡도(醫龍圖)는 심사정의 전칭(傳稱) 작품이지만, 다분히 심사정의 필의(筆意)가 담겨있다. 그러나 필의(筆意)만으로 전칭(傳稱)을 진작(眞作)이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문인의 아취가 있는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두 신선이 허허 걸걸 자리를 잡고 있다. 아마 소소하게 반주를 즐긴 모양이다. 흥이 극에 올라 신선이 소환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레 호랑이가 튀어나온 것인지 나무 사이에 호랑이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한 신선은 말을 의자처럼 등거리를 하고 있으며 다른 신선은 호랑이에 질세라 붓으로 용을 그리고 있다. 아마 두 신선은 용호상박(虎相搏)이라는 사자성어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사정전의 운룡도에 비해서는 세세한 점은 부족하지만, 문인의 운치로 봤을 때는 필법의 운필이 다분히 담긴 그린이다. 아마 여기(餘技)의 감흥으로 그림은 그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두 신선의 모습도 천진해 보이며 호랑이도 익살스러움과 무게감을 갖추고 있다. 이에 더 나아가 용의 경우 농담묵(濃淡墨)으로 채워진 구름 속에 담채로 용이 튀어나와 그림에 긴장감까지 선사해주고 있다.
3. 두 부자의 용.
3_1. 윤두서의 격룡도(擊龍圖).
윤두서(尹斗緖)는 송강 정철(鄭澈)처럼 가사문화를 꽃피운 윤선도(尹善道)의 후손으로 해남윤씨 종가의 문화를 이룩한 인물이다. 당대 문인 중에서도 그림에 격을 갖춘 인물로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과 함께 삼재(三齋)로 불린 만큼 명성을 쌓았다. 더불어, 장남 윤덕희(尹德熙)와 손자 윤용(尹熔)이 화업(畵業)을 쌓을 정도로 해남윤씨의 문화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하지만, 선대 윤선도(尹善道)처럼 당쟁(黨爭)에 휘말리는 일들이 많아 1713년 46세 때에는 고향 해남으로 낙향하였다. 그러나, 48세로 낙향에 비해 짧은 생을 살았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았지만 남겨진 서화는 생애와 비교하면 가치가 높다.
윤두서가 그린 격룡도(擊龍圖)를 보면 그의 삶과는 달리 그림이 화사하고 온화하다. 그러나 그림의 준법(皴法)으로 그림을 보면 긴장감과 날카로움을 느낄 수 있다. 격룡도(擊龍圖는 여동빈(呂洞賓)이라는 신선이 용과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으로 여동빈은 신선 중에서도 무(武)를 갖춘 인물이다. 용과 사투함으로 개인의 역량을 올림과 동시에 용의 뿔과 뼈, 비늘과 같은 부산물로 약재를 만들어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길상(吉祥)의 의미로 선물이나 혹은 주문제작형식으로 많이 그려낼 소재이지만, 윤두서의 경우 아마 본인의 성찰과 앞으로의 고단한 삶이라는 연속성에서 바라보는 감정에서 그렸지 않았을까 하는 기분이 든다. 용맹하게 사투를 다루는 장면보다는 아찔한 절벽에서 직선으로 용을 응시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용이 있는 파도의 물결은 요동치며 물거품 역시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점을 봐서 아마 여동빈은 본인이고 용을 맞서 싸워야 할 현실로 이입된다.
현실이 고단하기에 그림 역시 핍진(乏盡)되고 고독함이 하게 보인다.
3. 두 부자의 용.
3_2. 윤덕희의 격룡도(擊龍圖).
윤덕희(尹德熙)는 공재 윤두서의 맏아들로 호는 연옹(蓮翁)이다. 그는 아버지인 공재(恭齋)의 화풍을 전수하여 중국의 전통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그림을 그렸다. 주로 도석화와 인물산수화 등 인물이 들어간 문인화가 현재까지 남아있다.
그림을 보면 공재보다 더 사실적이고 용과 사투하는 여동빈의 모습도 격렬하다. 담채를 하지 않고 먹으로만 그렸음에도 농담묵(濃淡墨)의 조화를 일으켜 그림에 긴장감을 높여준다. 용과 사투하는 여동빈이라는 소재에 중심을 두었기에 이러한 결과를 돌출시킨 것으로 보인다. 당대 도석화에 명성을 올린 이유를 단연히 잘 나타나 있으며, 공재의 화풍을 답습한 모습도 다분히 느껴진다. 그러나 장식성이 강하여 공재보다 문인적 아취는 조금 아쉽지만, 당대의 화풍을 느낄 수 있어 좋은 작품이다.
4. 청룡의 해, 푸른 용의 빛.
작년 한 해는 사회적으로 암울하고 좋은 소식 거리 말한 이야기들이 없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소 격양되거나 침울한 느낌이 다분하였다. 그렇기에 이번 청룡의 해인 갑진년은 작년보다 더 밝고 힘 있는 소식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용이라는 용감무쌍하고 푸른 청색처럼 맑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