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옛 그림 읽는 남자 Apr 06. 2023

봄날, 그 짧은 시간만큼 아름답다(春宵一刻直千金).

옛 그림 산책. 4




1. 봄날, 그 짧은 시간만큼 아름답다(春宵一刻直千金).


  입춘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청명과 한식도 지나버렸다. 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은 걸까 싶은 정도로 금방 지나가 버렸다. 송대의 문인 소동파는 “봄날, 그 짧은 시간만큼 아름답다. (春宵一刻直千金)”,라고 시문을 적을 정도로 예나 지금이나 봄을 맞이하고 보내는 마음은 같은 것 같다. 옛 문인들은 어떻게 봄을 누리고 즐겼을지 보여주는 몇 점의 그림으로 대신 위안으로 삼아보려 한다.




2. 봄날의 길은 정취롭다(春日路傍情).


이인문, <소년행락도(少年行樂圖)>, 18세기, 비단에 담채, 간송미술관

 

 한 사내가 급히 말을 몰고 어디로 달려가고 있다. 아마 아른거리에 보이는 건너편 성곽마을에 무슨 볼일이라고 있는 것 같다. 무슨 볼일일까? 그 궁금증은 당(唐) 시인 최국보와 이백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시문을 보면 사내들이 복사꽃과 버들을 꺾어 말타고 도성의 유명한 주점(酒店)을 간다는 것이다. 


 그 주점(酒店)들은 서역에서 온 여성들로, 이곳의 여성들은 한(漢)~당(唐)시기에 실크로드 무역으로 넘어온 여성들이다. 한족들 처지에서는 서역의 여인들이 얼마나 이국적이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래서 그림의 저 사내는 말의 고삐를 붙잡고 바삐 가고 있는 것이다. 봄이라는 계절이 사람의 마음을 설왕설래(說往說來)할 정도로 감흥 적이라는 사실을 이인문은 그림으로 담아내었다. 


 그림을 보면 말을 타고 다리는 건너는 사내를 전경(前景)으로 삼고 저 멀리 보이는 성곽의 마을을 후경(後景)으로 그렸다. 그 사이를 강물로 배치하여 전경과 후경 사이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즉, 강을 건너가야 하는 사내가 말에게 속도를 재촉하는 상황처럼 보인다. 왼편에는 버들과 잎을 무성히 그렸으며, 버들은 바람에 나부끼는 것처럼 한들 한들 거린다. 멀리서 불어오는 춘풍(春風)일지 아님, 사내의 급한 마음을 버들잎으로 대신 표현한 것일지 아닐까 하는 재밌는 상상도 더해본다. 버드나무 아래에 분홍의 복사꽃(桃花)이 만발로 흐드러지게 펴고 있어 확실히 봄날의 춘흥이 느껴진다.




3. 한양의 상춘(賞春客).


정선, <필운대상춘(弼雲臺賞春)>, 18세기, 비단에 담채, 간송미술관 / 임득명, <등고상화(登高賞華)>, 18세기, 종이에 담채, 삼성출판박물관


 옛 문인들이 이인문의 그림처럼 시의(詩意圖)만 가지고 감상하지는 않았다. 직접 꽃놀이를 하러 다니며 그 자리에서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아취(雅趣) 있게 봄을 즐겨왔다. 특히나 당시 수도인 한양은 봄 놀이의 명소였다고 한다. 18세기 유학자 유득공은 쓴 『경도잡지』 “성북동은 도화꽃, 동대문 밖의 들판은 버들이, 필운 대는 살구 꽃” 등이 으뜸이라고 나와있다. 그만큼 당시 한양은 봄꽃을 보기 위한 상춘객들의 필수 코스였다.


 두 그림을 보면 꽃무리에 한창인 사람들이 보인다. 하나는 겸재 정선이 필운대(弼雲臺)에서 꽃(杏花)을 감상하러 배회하는 상춘객(賞春客)을, 다른 하나는 임득명이 꽃 피는 인왕산 주변에서 상춘의 감회(感懷)를 그린 그림이다.

 

 임득명이 그린 등고상화(登高賞華)는 수채로 그린 것 처럼 담채가 주르륵 흘린 것 같이 표현하였다. 더불어, 연한 담채로 나타낸 꽃나무와 수목을 다시 미점으로 찍어 그림의 시정을 극화시켜준다. 마치 무릉의 도원같은 연출이 느껴진다. 그림의 상단부분은 선비들이 오순도순 모여 상춘을 만끽하고 있다. 

     

 정선의 필운대상춘(弼雲臺賞春)은 말 그대로 필운대(弼雲臺)에서 상춘(賞春)을 즐기는 묵객(墨客)들을 그렸다. 등고상화와는 달리 꽃나무 수목, 그리고 도성안의 건물을 세세히 나타내었다. 또한, 건물사이에 안개를 자욱히 덮어내고 그 사이에 꽃나무들을 그려 등고상화와 같은 시정을 잡아주고 있다. 겸재가 그린 인물들도 임득명의 인물들처럼 도성의 상춘을 지긋이 감상하고 있다. 




4. 양춘(陽春), 오고 가는 봄. 


 세 그림 모두 준법과 주제는 차이가 조금 있지만, 그림에 상춘과 봄의 여흥(驪興)이라는 시정이 핵심인 같다. 옛 문인들이 즐기는 방식과 지금의 우리가 상춘을 맞이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봄이라는 주제의식의 결은 변함없다.


 이 꽃들이 지기 전에 너나 할 거 없이 다들 양춘(陽春)을 맞이하여 마음의 여유를 조금이나마 간직하길 바란다.




참고문헌.

1. 이성현, 노론의 화가 겸재 정선, 들녘, 2020.

2. 최열, 옛 그림으로 본 서울, 혜화1117, 2020.


매거진의 이전글 꽃을 찾아 봄이 무르익다(尋花春酣).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