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고, 정말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던 밤이 있었다. 무엇을 잃어서라기보다, 더 이상 기대할 마음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2019년 겨울, 단체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몸을 실었지만,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멈춰 있었다. 아침이 오면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낡은 외투처럼 몸에 걸렸고, 밤이 되면 무게는 더 또렷해졌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종종 혼자만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버스 안은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일정한 속도로 뒤로 밀려났고, 좌석 사이로 낮은 대화와 숨소리가 섞여 흘렀다. 창문에 머리를 기댄 사람도 있었고,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노래 한 곡이 흘러나왔다. SES의 ‘달리기’였다. DJ의 목소리가 스치듯 지나간 뒤, 익숙한 멜로디가 버스 안을 채웠다. 밝은 리듬과 달리, 노래는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가사는 또렷하지 않았지만,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충분했다. 괜찮아, 잘될 거라는 말이 버스의 진동에 섞여 흘러왔다가 사라졌다. 노래는 앞으로 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고, 동시에 멈춰 선 나를 가만히 비추는 거울 같았다. 숨이 차도 계속 달리는 사람의 호흡을 잠시 상상하다가, 나는 이내 그 장면에서 물러났다. 아직 달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때는 이상하게도 부정하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하고 저녁이 되자 야외에서는 바비큐 준비가 시작되었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며 기름이 튀는 소리가 났고, 연기는 밤공기 속으로 천천히 퍼졌다. 불빛은 주황색으로 흔들렸고, 그 아래에서 사람들의 얼굴은 낮보다 훨씬 부드러워 보였다. 웃음소리와 접시 부딪히는 소리, 고기를 뒤집는 소리가 겹치며 밤은 점점 따뜻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마음은 불판의 열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서서히 식어 가고 있었다.
고기를 다 먹고 난 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거실로 모였다. 텔레비전은 켜지지 않았고, 대신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온 거실을 채웠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사소한 농담, 서로를 향한 웃음이 파도처럼 번졌다가 잦아들었다. 소리는 분명 생기 있었지만, 내 귀에는 물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둔하게 닿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었지만, 웃음은 점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말한 뒤, 나는 거실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가 이내 풀었다. 안에 남는 것도, 밖으로 나가는 것도 모두 선택처럼 느껴졌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숨을 고를 자리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결국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히자, 공기가 확 달라졌다. 실내에 남아 있던 온기가 끊긴 자리로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잠깐 나타났다가 이내 흩어졌다. 옷에 밴 고기 냄새가 늦게까지 따라왔고, 냄새는 조금 전까지의 풍경을 그대로 끌고 나왔다. 고개를 들자, 하늘이 펼쳐졌다. 낮보다 훨씬 깊어진 검은 하늘 위로 별들이 떠 있었다.
별들은 제각각 다른 밝기로 반짝이고 있었다. 어떤 별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희미했고, 어떤 별은 또렷하게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별과 별 사이의 간격은 생각보다 넓었고, 거리감이 하늘을 더 깊게 만들었다. 그 사이에서 북극성 하나가 유난히 안정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깜빡이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채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밤의 중심처럼 느껴졌다.
별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늘 사람들 속에서 나 자신을 조금씩 접어 두고 있었을까. 웃어야 할 타이밍에 웃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 고개를 끄덕이던 시간이 별빛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것은 타인을 배려해서라기보다,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북극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늘 아래서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거실 안에서는 여전히 웃음과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고, 그 소리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희미하게 번져 나왔다. 다시 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느슨하게 했다.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인식이 나를 조금 가볍게 만들었다. 그 순간, 당장 달리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조용히 내려앉았다.
방으로 돌아와 불을 끄고 누웠을 때도 쉽게 잠은 오지 않았다. 천장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고, 창밖에서는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사람들과 함께 웃던 얼굴과 혼자 바라보던 별빛이 겹치며 천천히 마음속을 지나갔다. 오늘의 나는 내일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무너지지 않게 자신을 붙잡아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식 하나만으로도 밤은 조금 덜 차갑게 느껴졌다.
지금은 멈춰 있어도 괜찮았다. 완전히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내 안에는 아주 작은 여백이 생겨 있었다. 여백 덕분에 숨을 조금 더 깊게 쉴 수 있었다. 돌아보면 겨울밤은 진짜 나를 찾기 위해 떠난 아주 짧은 여행이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던 밤이었지만, 그 밤 덕분에 나는 적어도 사라지지 않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기억은 지금도 조용히 나를 다음 밤까지 데려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