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비교하며 살았을까

by 꿈담은나현


식당 문을 나서자, 저녁 공기가 얼굴에 바로 닿았다. 실내에 남아 있던 말들과 시선이 아직 옷자락에 붙어 있는 듯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는데도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잠시 멈춰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대화가 한 박자 늦게 숨처럼 따라 나왔다.


모임의 대화는 늘 비슷한 순서로 흘러간다. 안부는 짧고, 근황은 길다. 이번에 뭘 샀느니, 어떤 직장 생활을 한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면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신 성과가 테이블 위에 놓인다. 누군가는 자신이 아닌 자식 이야기를 꺼내고, 누군가는 그 옆에 기준을 조용히 얹는다. 웃음소리는 둥글지만, 그 안에는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흐름이 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 대기업 들어갔대.” 말이 끝나자, 숟가락이 잠시 멈췄고, 누군가는 물을 한 모금 넘겼다. 감탄이 이어지고 고개들이 자연스럽게 끄덕여졌다. 그다음 시선이 아주 자연스럽게 내 앞에 머물렀다. “너는?”이라는 말 앞에서, 나는 대답보다 먼저 숨을 고르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표가 있는 것 같다. 언제까지는 무엇을 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어디쯤 도착해 있어야 한다는 약속 같은 것. 열 살이면 연필심이 닳아야 하고, 스무 살이면 교정의 잔디처럼 푸르러야 한다. 서른이 되면 직장과 결혼 이야기가 자연스러워지고, 마흔이 되면 휴대폰 화면에는 아이 사진이 채워진다. 그 흐름에서 비켜서면 질문이 늘어난다.


처음에는 걱정처럼 들리던 말들이 반복될수록 무게를 얻는다. “그래서 계획은 있어?”, “이제는 좀 자리 잡아야지.” 말하는 사람은 가볍게 던졌을지 몰라도, 그 말들은 마음 한쪽에 차곡차곡 쌓인다. 어느 순간부터는 누가 묻지 않아도, 내가 먼저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명절에 집에 가면 그 시간표는 더 또렷해진다. 밥상이 차려지고 국을 뜨는 사이, 부모의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너도 이제 안정적인 게 필요하지 않겠니.”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럽다. 나는 젓가락을 잠시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인다. 악의가 없다는 걸 알기에, 그 말은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조용하다. 창문 너머 얼굴은 낮보다 솔직하다. 불을 켜지 않은 채 신발을 벗고 서 있으면, 하루 종일 참고 있던 생각들이 하나씩 고개를 든다. 정말 늦은 걸까, 잘못 가고 있는 걸까. 아무도 묻지 않는 질문들이 그제야 나를 향해 쏟아진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그 질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취업 공고를 새로고침하던 화면 위로 계절만 몇 번이나 바뀌었다. 자격증을 하나씩 손에 쥐고 들어간 직장에서는 형광등 아래 하루가 반복되었다. 키보드 소리는 늘 같았고, 출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얼굴은 어딘가 한 박자 늦어 보였다. 모두가 앞으로 가는 길에서, 나만 신호등 앞에 멈춰 선 기분이었다.


어느 날, 예전에 나보다 먼저 취업했던 지인을 만났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사실 나도 다시 시작할지 고민 중이야.”라고 말했다. 그 말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그러나 깊게 내려앉았다. 내가 부러워하던 시간표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짐이 될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무렵, 밤이 되면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화면 속에는 잘 정돈된 삶들이 쉼 없이 이어졌다. 환하게 웃는 얼굴, 햇빛이 잘 드는 집, 축하받는 소식들. 그 안에서는 누구도 머뭇거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불을 끄고 누우면 방 안은 어두웠지만, 그 장면들은 눈 안쪽에 오래 남아 잠을 방해했다.


어느 날 밤, 화면을 켜려던 손이 멈췄다. 더 이상 그 안에서 나를 비교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이었다. 팔로우 목록을 하나씩 정리하자 숫자는 줄어들고, 방 안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조용함 속에서 내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시계 초침 소리는 처음으로 나를 재촉하지 않는 시간처럼 흘렀다.


그 이후의 하루는 아주 평범했다. 특별한 성취도, 자랑할 만한 소식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봤고, 멈춘 신호 앞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도착해야 할 곳보다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날이었다.


해가 저물 무렵, 집 근처를 잠시 걸었다. 가로등 불빛이 바닥에 길게 늘어졌고,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며 낮은 소리를 냈다. 특별히 생각하지 않아도 발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짧은 산책이 하루의 끝을 천천히 접는 느낌이었다.


저녁 무렵, 카페에 들러 메뉴판 앞에 섰다. 예전 같았으면 괜히 남들 눈에 무난해 보이는 걸 골랐을 것이다. 그날은 잠시 고민하다가, 평소 잘 마시지 않던 음료를 주문했다. 컵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는 순간, 별것 아닌 선택이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졌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에서 내려와, 나 자신의 속도를 다시 확인하게 된 기록이다. 비교는 여전히 주변에 남아 있고, 사회의 시간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더 이상 그 위에 나를 올려놓지 않기로 했다. 늦어 보이는 걸음일지라도, 속도는 분명 나의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보다 앞서 있는지를 묻기보다, 오늘의 내가 스스로에게 조금 더 편안해졌는지를 살피며 걷고 있다.


오늘도 괜찮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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