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지 않기 위해 살아온 사람에 가깝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늘 어렵게 느껴졌고, 감정은 내 안에서만 소리 없이 움직였다. 웃어야 할 때는 웃었고, 괜찮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은 마음들은 서랍 속에 접힌 편지처럼 차곡차곡 쌓여갔다. 언젠가 읽어야 할 것을 알면서도, 꺼내지 않은 채로 말이다.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을 때, 나는 사람을 이해하는 말을 배웠다. 강의실에서는 마음을 설명하는 단어들이 칠판 위에 정리되었고, 교수님의 목소리는 일정한 리듬으로 흘렀다. 사람의 감정을 나누고 상황에 이름을 붙이는 법을 익혀갔다. 타인의 고통은 점점 또렷해졌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안개 속에 머물러 있었다. 교재 속 문장들은 분명했지만, 나에게로 오지는 않았다.
나는 말 대신 사람을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표정이 잠시 굳어지는 순간이나,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는 타이밍을 오래 보았다. 감정을 꺼내지 못하는 대신, 타인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하면 어쩐지, 그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머무는 법을 배워갔다.
봉사활동과 실습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하루를 건너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쉼 없이 말을 이어갔고, 어떤 사람은 입술을 꼭 다문 채 바닥만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 곁에 앉아 말보다 숨소리를 먼저 들었다. 방 안에 흐르던 정적은 두꺼운 담요처럼 사람들을 덮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시간을 조금 늦추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보다, 떠나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해 보이던 순간들이었다.
긴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색이 바뀌는 시간이었다. 바깥의 하루가 회색이라면, 집 안은 무채색에 거의 가까웠다. 복도 안의 희미한 불빛과 현관 앞의 고요한 공기가 하루를 접어주었다. 문을 닫는 소리가 경계가 되었고, 휴대폰을 뒤집는 순간 바깥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불을 낮추면 방 안에는 희미한 주황빛만 남았다.
빛 아래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 앉았다. 하지만 시간은 늘 길지 않았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대신, 나는 책을 천천히 펼쳤다. 책 속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도시를 걷고, 다른 나라의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종이가 스치는 소리는 현실과 나 사이에 얇은 막을 만들어주었다. 타인의 삶에 머무는 동안, 내 마음은 잠시 불리지 않아도 되었다.
어떤 밤에는 음악을 들었다.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가라앉은 마음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하루와 사람들 사이에서 접힌 감정들이 멜로디에 섞여 흘렀다. 음악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나는 그 안에서 숨을 고르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울음은 늘 그 문턱에서 멈췄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이었다. 방 안은 어둠에 거의 가까웠고, 시계 초침 소리만 또각또각 울렸다. 우연히 ‘한숨’을 틀어두고 있었다. 노래가 흐르다 한 문장이 귀에 닿았다.
“너만은 꼭 행복해야 돼
오직 널 위해서 살아”
그 문장이 방 안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에 쥐고 있던 이어폰 줄이 느슨해졌고,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빠졌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온 시간, 기대에 맞추느라 미뤄둔 마음들이 차례로 스쳤다. 그 순간,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요란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울음이었다. 오래 닫아둔 창문 틈으로 스며든 빗물처럼, 조용히 흘러내렸다.
나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노래는 계속 흘렀고,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옆에서 가만히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만 같았다. 나만 이런 하루를 견디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한 줄에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한 곡이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물을 마시려고 컵을 들었다가, 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잠시 멈췄다. 물이 넘칠까 봐 천천히 따르며 시간을 늘렸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침대에 바로 눕지 못하고, 불을 켠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해는 평소처럼 떠올랐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은 연했고,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움직였다. 나는 여전히 하루를 살았고, 해야 할 일들을 해냈다. 다만 발걸음이 전날보다 조금 느려졌고, 숨을 한 번 더 고르고 밖으로 나섰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며, 평소보다 조금 오래 멈춰 있었다. 늘 휴대폰 화면을 먼저 보던 손이 그날은 가만히 주머니 안에 머물렀다. 길가에 심어진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아무 일도 아닌 장면이었지만, 괜히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울음이 하루를 바꾼 건 아니었지만, 하루를 대하는 속도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울음을 미뤄온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끝까지 참아내는 힘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의 울음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다만, 나 자신에게 조금 덜 엄격해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여전히 감정을 잘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울어도 괜찮은 날을 마음속에 남겨둔다.
너 자체로도 괜찮아. 지금의 너로도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