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끝난 뒤에도 지민의 방 안은 계절을 따라가지 못한 채 멈춰 있었다. 창밖에서는 여름으로 향하는 빛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색을 바꾸고 있었지만, 방 안의 공기는 늘 회색에 가까웠다. 수업이 있는 날에만 겨우 밖으로 나가고 돌아오면, 지민은 커튼을 치고 침대 끝에 앉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한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던 알림창이 이제는 오래된 시계처럼 잠잠했다. 화면을 끄면 냉장고의 낮은 진동음과 벽시계 초침 소리만이 방 안에 남았다.
방 안에는 사람 대신 물건이 늘어났다. 비워지지 않은 컵에는 물이 얇게 말라붙어 있었고, 마른 컵라면 용기에서는 플라스틱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눅눅해진 종이봉투와 배달 스티커가 붙은 비닐들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것들은 치우지 못한 쓰레기라기보다, 손대지 않은 시간처럼 보였다. 지민은 쓰레기를 미룬 것이 아니라, 건드리면 무너질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봄날의 기억은 늘 가장 느슨한 틈으로 스며들었다. 캠퍼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아이스라테를 나눠 마시던 오후, 투명한 컵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던 소리, 컵에 맺힌 물방울을 말없이 훔쳐 주던 손끝. 지민은 그 사람이 웃을 때마다 눈꼬리가 아주 조금 접히는 것을 좋아했다. 강의가 끝나면 굳이 먼 길을 돌아 함께 걷던 날들이 있었다. 꽃이 피어 있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때의 지민은 웃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아도 웃고 있었고, 하루는 쉽게 저물었다.
헤어지고 난 뒤, 지민의 하루는 눈에 띄게 작아졌다. 아침과 밤의 경계가 흐려졌고, 알람은 울려도 손이 먼저 뻗지 않았다. 빨래는 바구니에서 꺼내지지 않은 채 쌓였고, 설거지는 싱크대 안에서 서로를 기대며 높아졌다. 수업 시간에만 지민의 얼굴은 잠시 사람의 모양을 되찾았다. 강의실 문을 나오는 순간, 몸 안의 실이 끊어지듯 힘이 빠졌다.
어느 날 새벽, 지민은 숨이 막히는 기분에 잠에서 깼다. 방 안의 공기가 더는 버틸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지민은 종량제 봉투를 꺼내 쓰레기를 담기 시작했다.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가 밤의 고요를 자꾸 찢었다. 봉투가 채워질수록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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