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사라진 아침에도 햇빛은 같은 각도로 방 안을 가로질렀다. 커튼 사이로 스며든 빛은 바닥 위에 길게 누워 있었고, 그 위를 떠다니는 먼지들은 금빛 입자처럼 천천히 가라앉았다. 혜정은 침대에 앉아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방 안에서는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오늘을 시작하고 있었다.
사무실의 공기는 오래전부터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연한 베이지색이었다. 커피 향이 부드럽게 남아 있었고, 웃음은 굳이 이유를 찾지 않아도 나왔다. 시간이 쌓이자, 색은 바래 회색으로 내려앉았다. 말은 문장 끝을 다 맺지 못한 채 공중에서 끊겼고, 어느새 금이 간 도자기처럼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키보드 소리는 빗물 없는 날의 빗소리처럼 건조하게 울렸다.
혜정은 그 안에서 자신을 최대한 작게 접었다. 노트와 펜을 늘 같은 각도로 두었고, 종이를 넘길 때는 숨소리마저 줄였다. 질문은 목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삼켜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대답을 대신했다. 어느 순간부터 어깨는 돌처럼 굳었고, 퇴근 후에도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몸이 먼저 보내는 신호를 그녀는 애써 외면했다.
비가 오던 어느 밤, 혜정은 우산을 쓴 채 퇴근했다. 빗소리는 귓속까지 파고들었고, 가로등 불빛은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 번져 흐릿한 별 무리가 되었다. 신발 안으로 물이 스며들었지만 멈춰 서서 털어낼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날따라 집에 가야 할 이유도, 회사에 남아야 할 이유도 희미해졌다. 그녀는 빗속을 걷는 사람이 아니라, 빗속에 잠긴 사람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선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스스로 지킬 것만 생각하라는 짧은 문장이었다. 혜정은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 말은 위로도 조언도 아니었다. 다만 오래 버틴 사람의 체온처럼 손에 남았다. 그날 밤, 이곳이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마음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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