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소희의 하루는 아침부터 어긋나 있었고, 어긋남은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회의실에서 프레젠테이션 파일이 열리지 않았고, 급히 고친 수치는 다시 지적받았다. 상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말끝마다 가시가 돋아 있었다. “이건 몇 번이나 확인했어야죠.” 소희는 고개를 숙인 채 메모했지만, 글씨는 자꾸 삐뚤어졌다. 잘못한 건 분명한데, 마음속 어딘가는 자꾸 비어 갔다.
퇴근길의 공기는 축축한 회색이었다. 소희는 떡볶이가 든 봉지를 한 손에 들고 골목을 걸었다.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접혀 있던 어깨는 여전히 펴지지 않았고, 목뒤에는 묵직한 피로가 남아 있었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서 마주친 얼굴이 떠올랐다.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은 채, 그저 하루를 통과한 얼굴이었다.
비닐봉지 안에서 빨간 양념이 미지근하게 흔들렸다. 그 색은 유난히 선명해서 오늘 하루와 어울리지 않았다. 소희는 문득, 집에 돌아가도 떡볶이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테이블 위에 봉지를 내려놓고 혼자 캔 맥주를 따며 텔레비전 소리를 줄일 자신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늘 그래 왔듯, 오늘도 혼맥으로 하루를 접겠구나 싶어지자, 발걸음이 잠시 느려졌다.
골목 초입에 들어섰을 때 하늘이 갑자기 갈라졌다. 소나기가 쏟아지듯 떨어지며 바닥을 두드렸다. 소희는 반사적으로 가방을 끌어안고 나이테가 두터운 오래된 나무 아래로 몸을 숨겼다. 빗소리는 잎사귀를 때리며 쇠붙이 같은 울림을 만들었고, 운동화 안으로 스며든 물이 발바닥을 차갑게 적셨다. 앞으로 십 분만 더 걸으면 집이었지만,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비는 마치 오늘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때 빗소리 사이로 낑, 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긁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들렸고, 이번에는 분명 숨을 밀어내는 소리였다. 소희는 고개를 숙였다. 나무 그늘 끝자락, 빗물이 고인 자리에서 작은 몸 하나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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