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사이로 스며든 한 줌의 햇살이 오래 잠들어 있던 상자를 두드릴 때, 잊고 지냈던 마음 한 조각이 조용히 깨어났다. 햇살은 먼지 입자를 금빛 씨앗처럼 흩뿌리며 방 안에 고요한 온기를 드리웠다. 소린은 상자를 들어 올리다 손끝에서 낯익은 촉감을 느끼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색이 바래버린 테이프는 오래된 편지지처럼 들떠 있었고, 그 틈 사이로 은근한 하늘빛이 숨을 참듯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 누군가가 남긴 작은 신호 같았다.
상자를 열자, 하늘빛 돌고래 인형이 잔물결처럼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천의 촉감은 세월을 지나도 은근한 파도 빛을 잃지 않았고, 작은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는 오래도록 숨을 품어온 것처럼 깊었다. 손끝이 닿자 미세하게 꺼지는 공기의 감촉도 어린 시절 그대로였다. 닳은 귀퉁이와 헐거워진 바느질마저도 오랜 시간을 함께 견딘 친구의 얼굴 같았다. 소린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어린 날의 감정 속으로 천천히 잠겨 들어갔다.
돌고래를 잃어버렸던 그 시절, 방은 텅 빈 바닷가처럼 적막했다. 침대 위의 빈자리는 바람만 머물렀고, 소린의 울음은 그 바람 사이에서 잔물결처럼 흔들렸다. 장난감 바구니를 뒤엎을 때마다 들리던 플라스틱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자신을 탓하는 매서운 파편처럼 들렸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어둠 속을 헤집으며 돌고래를 찾았지만, 방은 끝내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울음은 며칠 동안 벽과 창 사이에 희미하게 걸려 있었다.
그 무렵 엄마가 사다 준 ‘대신할 인형’은 돌고래와 완전히 달랐다. 지나치게 둥글고 커다란 눈은 묘하게 멍해 보였고, 얼굴은 새것 특유의 인공적인 광택을 머금고 있었다. 배를 누르면 억지로 웃는 소리가 삐걱대며 흘러나왔는데, 그 웃음이 오히려 방 안의 적막을 더 크게 울렸다. 겉보기에는 풍성하고 화려했지만 품에 안으면 이상하리만큼 단단해서, 소린의 팔 안에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다음 날 아침이면 인형은 꼭 발치에서 뒤집혀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제 집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은 그림자 같았다.
새 인형은 돌고래의 온기를 단 한 번도 흉내 내지 못했다. 소린은 잠들기 전마다 빈 팔 안을 조용히 쓸어내리며 익숙한 무게를 그리워했다. 잃어버린 건 인형 한 마리가 아니라, 마음을 붙일 자리였다는 걸 어린 그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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