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은 아침마다 하루를 정연하게 쌓아 올리는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조용히 처리하고, 감정은 마음속 깊숙한 곳에 눌러 담아두는 편이었다. 그런 그녀가 현관 문고리에 걸린 도시락을 발견했을 때, 마음 표면에 얇게 고여 있던 고요가 무너지듯 흔들렸다. 투명한 뚜껑 아래 계란말이의 노란빛은 새벽 햇살처럼 부드럽게 떨렸고, 메모지는 바람결에 가볍게 흔들리며 오래된 이름 하나를 조용히 깨웠다. 오늘만은……. 그냥 먹어줬으면 좋겠다.
혜인은 도시락을 든 채 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몇 년 전 집을 나간 아빠와의 관계는 마무리되지 못한 문장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아빠는 원래 정 많고 살가운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중학생이 되던 무렵부터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고, 말수가 줄었다. 그러다 장대비가 내리던 어느 밤, 말 한마디 없이 현관문을 닫고 사라졌다. 그 이후 혜인은 감정을 정리하고 다듬으며 묵묵히 버텨내는 사람이 되었다.
시험장으로 향하는 복도는 겨울 빛이 길게 번져 있었다. 평소 혜인은 긴장 대신 차분함으로 자신을 다잡았지만, 오늘만큼은 가방 속 두 도시락이 부딪치는 작은 소리도 마음을 흔들었다. 하나는 그녀가 준비한 도시락, 다른 하나는 너무 늦게 도착한 마음이었다. 걷는 동안 겨울 빛 아래 그녀의 그림자는 길고 얇게 흔들렸다. 혜인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혜인은 아빠의 도시락을 꺼냈다. 뚜껑을 여는 순간 따뜻한 김과 함께 오래된 향이 천천히 올라왔다. 계란지단은 예전 그대로 폭신했고, 고추장 불고기의 달큰한 냄새는 한때 식탁에 흐르던 평온함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자 오래 묻어둔 장면 하나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린 혜인이 젓가락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면, 아빠는 웃으며 “그거 하면 더 맛있지?”라고 말하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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