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Nov 23. 2022

애매함이라는 탄탄함

나이 28살. 지금까지 한 번도 "사귀자"라고 하고 누군가랑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언제나 스며드듯이 옆에 있었고 깊은 관계가 되었다. 인생은 정말 나에게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사람이 오고, 필요한 타이밍에 내가 떠나고 날 떠나가게 되어 있다.


이런 일은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곳이나 하는 일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언제나 물 흐르듯이 선택을 해왔다.


예를 들어서,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지금의 나의 순간순간을 빛나게 해 준다면 그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공부나 일에 집중을 하는 것이 가장 재밌고 그것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순간에는 거기에 에너지를 더 쏟는다.


찐 인생 파트너는 신기하게도 이러한 나의 상황과 상대의 상황이 잘 맞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나도, 상대도, 무언가를 힘들게 포기할 필요 없이 서로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바깥에서 산다"는 것은 절대로 불안정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회에서는 계속해서 나를 어떠한 <틀> 안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외국인"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효도인 외동딸"로서.


나는 물처럼 유목적으로 존재할 때가 가장 안정감을 느끼고 실제로 안정적이고 건강하다.  


언니와 살게 된 지 3년 정도가 지났지만,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썸 타는 거냐"

"둘이 사귀는 거냐"

"도대체 어떤 관계냐"


그래서 언니와 가끔 이런 대화를 나눌 때도 있다.


-앞으로 이런 질문을 받으면 '가족'이라고 할까? '부부'라고 할까?

-'부부'고 '가족'이지 뭐. 뭐가 다르겠어.


언니랑 있으면 "있는 대로, 그대로" 살아갈 수 있어서 좋다.


우리의 관계는 어떠한 약속도 없다. 따라서 매일매일이 특별하다.


우리는 늘 "당연한 것" "원래 그런 것"은 없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365일을 같이 있어도 하루에 몇 번이나 고맙다는 사랑 표현을 하고 배려의 캐치볼을 한다.


상대에 대한 "기대"가 아닌 "내 선택과 의지"로, "의심"이 아닌 "관심과 배려"로.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니는 나에게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람.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는 사람. 내가 스스로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단점까지도 잘 아는 사람.


그리고 누구보다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언니가 써준 편지엔 "어떤 순간에도 네가 행복한 게 내 바람이야"라는 말이 있었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이 더러운 세상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깨끗한 언니라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니의 삶의 그림에 내가 있다면 언제나 든든한 나무처럼 언니 곁에 서 있을거야.

작가의 이전글 언니가 나를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는 걸 알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