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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너부리 May 28. 2023

엄마는 출석 대장!

보복 여행 아니고 보복 출석

마흔이 되기 전부터 어린 딸 둘을 홀로 키우신 엄마는 나의 학창 시절 12년 동안, 국민학교 입학식과 중학교 졸업식, 국민학교 5학년 학부모 참관수업, 이렇게 딱 세 번 학교에 오셨다. 당시에는 소풍이나 운동회 때 가족들이 함께 오는 일이 자연스러웠는데 나는 줄곧 친구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시골에 있던 학교를 다녔기에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학교의 큰 행사는 주로 봄, 가을에 열리는 경우가 많다. 농사가 한창 바쁜 기간과 겹쳐 부모님들이 학교에 오시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그럴 때에는 다른 친구 부모님들이나 할머님들이 자연스럽게 챙겨주셨다. 엄마의 부재가 딱히 슬프지도, 친구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았던 듯싶다.


갑자기 비가 오면 맞으며 집에 가야 하고,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혼자 걸어가야 한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거나 숙제를 집에 놓고 왔어도 책임지는 것은 '나'였다. 결혼 전 선배들에게 워킹맘으로서 힘든 점 중에 하나가 각종 행사 참여가 어려워 생기는 미안함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위로는 했지만, 공감은 어려웠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아주 작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엄마로서의 공적인 역할이 갑자기 주어진다. 보육기관과 교육기관에 아이가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역할이 더 커진다. 교육과정 설명회, 공개 수업, 학부모 도우미, 교육청이나 학교 주최의 강연, 소풍, 가족 체육대회, 학예 발표회 등 아이들 성장과 학부모와 기관의  소통에 필요하지만 근무 시간과 겹쳐 참석을 망설이게 되는 활동들이 생각보다 많다.


2021년과 22년을 되돌아보면 사실 어떻게 흘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늘 허덕였다. 첫째 아이는 그 상황에서도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하루에 세 개씩 학원을 다녔다.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는 엄마, 아빠 때문에 둘는 말이 더뎠고, 격리 상황 때마다 주양육자가 바뀌어 불안 증세를 보일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양쪽 어머님들이 하던 일을 멈추시고 아이들을 챙기러 와주셨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아이들 때문에 늘 불안해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각종 행사가 없는 상황이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만 못 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못 가는 상황, 못된 생각이지만, 나를 기다리고, 찾을 아이의 눈을 떠올리면 항상 생각이 많아진다.


아이들이 전면 등교를 하고, 마스크를 벗으면서 멈추어 있던 각종 체험활동과 학부모회 활동이 시작되었다. 일을 쉬고 있는 가난한 엄마는 보복 여행은 못하지만, 보복 출석(?)이다!


학교교육과정 설명회에 가서 학급 학부모회장을 덜컥 맡고, 어린이집 도우미 활동에 모두 '참여'에 응답하였다. 학교뿐 아니라 학원에서 하는 각종 행사에도 전부 참여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출석 대장'이 되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새벽에 나가셔서 밤늦게까지 식당일을 하시며 나를 돌보셨다. 것도 모자라 여름이면 수박밭에 나가 일당을 벌어 오고, 추수철에는 남의 논에 추수를 도우러 다니셨다.


본인은 그때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에 늘 자부심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도 가끔 미안하다고 하신다. 결혼 전에는 그 마음이 싫고, 아프기만 했다. 아이를 낳고,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야 그 미안함이 나에게 닿는다.


어쩌면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그런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될까 두렵나 보다. 친구가 별로 없는 조금 외톨이 엄마이지만, 행사에 가면 박수도 크게 치고, 환호도 크다. 첫째는 조금 부끄러워 하는 것 같지만, 둘째는 엄마 최고!를 외친다. 아이들의 사회 생활(?) 기억 한 귀퉁이에라도 존재하고 싶다. 당분간은 '씩씩한 출석 대장'으로 지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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