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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리 Aug 07. 2023

달과 바다

몽글몽글 순두부 서점 -4



제가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은 넘치지 않는 것이었어요. 과하게 다가오는 것이 없었으면 했어요. 그냥 이 서점이 친구네집 책꽂이 같은 느낌이길 바랬거든요.


뭔가 재미있는게 있나 슬쩍 훝어보는 호기심이었지요. . 키가 들쑥날쑥한 우리반 애들처럼 줄세워진 책 제목을 한칸 한칸 뛰어넘다가, 그러다 순간 친구가 혼자만 엄청 커져서 내가 모르는 세상 저 너머로 가버리면 어쩌나 아주 잠깐 초조해져버려서, 낯익은 제목에 한권을 무심코 책장에서 꺼냈지요. 연금술사라는 책의 앞장을 오른 엄지로 쥐었다가 사사사삭 그 힘을 풀며 빼곡한 글자 속으로 어쩔수 없이 나도 빨려들어가도록 시선을 뺏기게 두었을 때,


베스트셀러라던데 드럽게 재미없어, 너 읽을래?


가벼이 터진 웃음이 엄지를 멈춘 탓에 마음의 무게추가 깊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평행을 찾았어요. 하지만 긴장감이 사그러진 건 아니었어요. 그런 서점이어야 했지요.


웃기게도 그래서 “나는 재미없는데 얘는 재밌는 책”이란 종이를 써붙인 책장을 만들었지요. 서점에 가득 들어찬 책 모두가 다 나에게 재밌다거나, 다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라거나, 다 내가 알아야할 스토리일 필요는 없다고 늘 생각했으니까요. 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책들이 넘칠듯이 밀려와 저를 위협하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한 사람과 지낼 때 어떤 부분은 내가 잘 느낀 것이고, 어떤 부분은 모르는 편이 나았을것 처럼, 책들의 세계에서도 나와 잘 맞는 친구를 찾으면 되는 것이니깐요.


그런 의미로 책은 저에게 파도가 아닌 바다의 이미지였어요.  더하거나 덜해도 언제나인 것이라, 숨겨진 비밀이 없이 제 몸을 활짝 펼친 채로 수평선 너머까지 넘칠랑말랑.


그래도 그 수평을 지키는 것이 달의 힘이라는 것을 이제껏 살면서 배웠지요. 달은 저의 초조함이자 질투이며 탐구입니다. 그래서 “나는 재미없는데 얘는 재밌는 책” 꽂이 한뼘 정도 위쪽으로, 검푸른 바탕 안에 환히 떠오른 달 그림 엽서를 붙였어요. 바다 위에 달을 두고, 나는 재미없어도 너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으며 끄덕끄덕하다가 눈을 감았다가, 그러다 다시 궁금해 귀를 기울였다가.


그래도 언젠가 저 달에 닿고 싶은 탐험가의 꿈을 품은 채 오늘도 책 속을 따라가는데 역시나 눈은 감겨요. 하~. 오늘도 세상은 넓고 읽을 것은 많네요. 그 와중에 좋아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라, 당신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해볼게요. “얘는 재밌는 책”을 들고 문을 세차게 밀고 서점에 따지러 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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