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삼성 라이언즈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선수가 2016년 미국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날스에 입단하며 미국 진출을 했었다. 이때 한국에서 불리던 '돌부처' 별명 그대로 불렸었다.
아래 보시면 MLB 공식사이트 선수소개란 별명에 "the Stone Buddha (돌부처) " 라고 씌여있다.
구단에서는 이후 대구야구장에서 이른바 이벤트성 '돌부처 존'을 실제 운영하기도 했었다.
이른바 멘탈스포츠라고 하는 야구에서 정신력이 안중요한 포지션이 어디 있겠냐마난, 그중에서 경기 막판에 이기고 있는 팀을 그대로 승리하게 하는 마무리 투수야 말로 멘탈이 가장 중요할 듯 하다. 그러다보니 돌부처가 딱 정확한 별명 같다. 풍화나 부식에 강한 재질인 돌, 감정없는 부처님 같은 무표정함, 석상의 두께, 질감이 주는 묵직함까지.
그런 돌부처가 우리나라 바둑계에도 있었으니 바로 이창호9단. 영화승부의 주인공이다.
이창호 이야기, 다시 말해 조훈현 이야기 써보련다.
이창호의 스승, 조훈현의 어린 시절 흑백사진들...
10살때 일본에 바둑유학을 떠났다가 군복무를 위해 잠시 돌아온 그.
1974년, 약관의 나이 21세때 국내 첫 타이틀인 최고위를 획득하고,
1976년,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인 국수전(國手戰)마저 획득하며 한국바둑계 접수 시동을 거는데 !
그런데 조훈현이 생애 첫 두 타이틀을 차지했던 1974년과 1976년의 가운데인 1975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바로 10여년후, 일합을 겨루게 되는 그의 제자이자 라이벌인 이창호가 1975년 7월 태어났다.
1975년 이 당시, 영화에 나왔듯 이창호의 할아버지가 당시 전주에서 李시계점을 운영중이셨고, 이창호를 모델로 한 드라마 <응답하라1988>의 택이(박보검) 아부지가 극중에서 운영하던 봉황당 역시 李시계점을 모티프로 한거다.
할아버지로 어깨너머로부터 바둑을 배운 이창호 어린이.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때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흡수속도가 마치 스펀지 같아서 딱 1년후인 2학년 겨울방학때 어깨동무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1984년 1월 27일)
아래 사진 1등상을 받고 있는 9살의 이창호 어린이..
통통하니 귀엽네. 태어날 때 4.8kg로서 당시 유행하던 전국 우량아 대회에서 3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록에 따라 전북3위인지, 전국3위인지 갈리는듯 한데 전북 3위인들 안 대단할 이유가 없겠다.
저때까지만 해도 창호군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바둑시킬 생각은 없었고, 그냥 할아버지 손잡고 기원 놀러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주위에서 잘둔다고는 하니까 어느정도 두려나 궁금하던 차에 전국대회에서 덜컥 우승을 해버리자 생각을 달리 정하셨다고 한다.
아래 무지막지하게 복잡한 그림이 당시 우승한 결승전 기보이다.
아, '기보'가 뭐냐면 일종의 기록지이다. 음악에는 악보가 있듯이, 바둑에는 기보가 있다.
그림에 써진 숫자 흑백 번갈아.. ❶②❸④ ~~ 순서로 놓아진 거니까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수 있고, 또 누구나 기보를 보면서 순서대로 두어볼 수도 있다. 기보를 보니 창호 어린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큰 위기 없이 앞서나가며 13집이 넘는 큰 차이로 무난하게 승리했었다. 여담으로 당시 결승상대는 4살위인 류시훈 군으로 바로 직전인 1983년 같은 대회에서 우승했던 전국 최강. 나중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바둑계의 강자가 된 그 류시훈 맞다. 동생 류지인 양도 아마강자였었고.
재밌는것이 저 9살 창호 어린이의 우승소감이 바로 "장래 제2의 조훈현 아저씨가 되고 싶다." 였는데 그걸 정말로 이룰 줄이야 ! 저 당시에는 그 아무도 몰랐겠지.
무튼 어린 창호의 기재를 확인하신 아버님과 할아버님의 지원 하에 바둑을 지도해줄 스승을 찾게 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조훈현 이전에 먼저 만난 스승이 있었으니 바로 전영선 7단.
아래 스승인 전영선 프로와 바둑을 두고 있는 오동통통한 8살인지 9살인지 배뽈록 귀여븐 창호 어린이..
전영선 7단. 2년간 수시로 서울에서 전주로 내려가서 성심성의껏 창호를 지도하고. 저때부터 싹수가 보였는지 전영선 7단은 "창호는 내가 아니라 반드시 우리나라 최고수인 조훈현이 지도해야 한다! "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그러다가 1984년 8월말 창호가 전주에서 올라와 조훈현의 내제자가 되면서 그 말이 실현되었다.
그냥 보통의 제자 말고 스승의 집에 들어가 숙식을 하며 바둑을 배우는 제자... 내제자(內弟子).
난 예전에 '내제자' 란 말 처음 들었을 때 니제자 말고 남의 제자도 아니고, 나의 제자, 내제자라서 내제자인 줄 알았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84년 8월부터 서울 연희동 조훈현 집에 같이 살게된 창호. 프로가 되기 위한 열공 시작 !
즉 창호가 아무리 싹수가 보여도 아직 아마추어 신분.
스승과 또 남기철과 백사범과 맞붙기위해서는 프로입단 대회를 통과하여 프로기사가 되어야 한다.
85년 8월 10살때 처음으로 참가한 프로입단 대회에서 한번 물 먹고 재수를 하게 되고,
그 1년후인 1986년. 정현산 기사와의 최종국을 승리하며 당당 프로가 된다.
프로기사 이창호 초단 입단 !
그리고 프로기사로서 2년여...
계속 열공 열공.
밑에서부터 한판 한판 이기더니 제28기 최고위전에 챔피언이자 스승 조훈현에 맞서는 도전자로 정해지고 !
이창호가 업을 만들다 ! 헤드라인
業을 만들다! 아울러 Up을 만들다! 위로 위로 가보자.
그래 결승까지 간거 까지는 좋았다. 영화에서는 첫번째 사제대결때 바로 제자 창호가 이기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 제28기 최고위전 결승전 에서 패배했다.
이창호의 첫 쿠데타(?) 실패.
그렇게 '파천황'은 진압되었다고 했고 반면 스승 조훈현은 제자에게 승리한 이 대회가 공교롭게 V100. 딱 100번째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되었다.
희비의 엇갈림
그리고 쏟아진 헤드라인. 파천황(破天荒)은 진압되다 !
파천황, 뭔가 느낌있게 들려서 그런지 두루 아이디로도 많이 쓰이고, (유사 케이스: 광풍노도, 천지개벽, 패왕, 외) 무림 극화에도 단골로 나오는데,
즉슨,
중국 당나라때 아래 그림 형주지방.. 넓이도 꽤 넓고 지역단위 인재도 많이 나오는데 비해, 그 지역 예선 통과한 인재들이 정작 중앙 과거시험 무대에 가면 번번히 물을 먹기에 붙여진 이름.
천황(天荒).. 하늘이 내린 황무지대 취급
그러다가 유세라는 이름의 선비가 형주출신으로 최초로 전국단위 과거 급제했고, 즉 천황을 깨뜨렸다하여 파천황(破天荒)이라 했었다. 비슷한 말로 전인미답, 전대미문, 미증유..
이제껏 일어나지 않았던(unprecedented) 일이란 뜻. 그런 일이 일어날 뻔 하다가 일단 진압된 거다.
일단 진압됬을 뿐더러 그 다음 이어진 2개 대회 결승에서 더 패배한다. 이렇게 3개 대회 연속 패배하면서 다들 "앞으로 한 5년은 걸려야 하겠네" 생각했었다.
그렇게 "아직 멀은 것 같았던" 창호. 그러나 뚜벅뚜벅 갈길을 가고 있었고
1989년 상반기에 국내 전체 프로기사 중, 최다대국, 최다승리, 그러면서도 최대승률, 연승까지 스리슬쩍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14살의 창호, 일단 1989년 상반기의 연승 삘을 이어받아 그해 8월 8일 작은 사고를 하나 친다
제8기 KBS 바둑왕전에서 김수장 프로를 상대로 생애 최초로 우승을 해버린다.
참고로 아래는 우승직후 활짝 웃고 있는(?) 이창호 사진.
3일에 한마디했다던 어려서부터 과묵한 돌부처 창호답다. 다시 말하지만 진 거 아님. 우승자 맞음.
그나저나 영화의 그 아역배우 갸는 귀엽다고 해야할지. 살짝 깐족이기도 잘하고
(아 혹시나 나는 아역 김강훈 배우 팬이다. 라켓소년단하고 재벌집 손자 잘봤음 ㅎ)
하지만 창호가 KBS바둑왕전에서 첫 우승했다손, 이는 규모로도 작고, tv방송시간상 짧은 시간내에 빨랑빨랑 두어야 하는 속기대회 이다보니 정식 대회로 안쳐주는 듯한 분위기마저 감지.
반면 다른 일반 대회는 결승에 가도 번번히 스승에게의 도전이 실패했었으니 "창호야 너 도전에만 만족할래 ? " 하는 헤드라인이 뽑히던 때.
그런데..
그런데....
창호가 다시금 최고위전 도전자가 되며 작년 같은대회 결승에서의 조훈현에게 당한 패배를 되갚으려 폼 잡기 시작한다.
서봉수를 이기고 결승 진출 !
뭐 작년에도 동일하게 서봉수 이기고 결승에 가긴 했었지. 이번엔 다르려나 !
그러더니 현재스코어 4판 두어 2승2패.... 호각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
"선생님, 이번엔 좀 다릅니다 !" 제목 진짜 기가 막히게 뽑는다.
최종 5차전만 이기면 아까 말한 그 뭐시기 파천황이 되는거고, 전인미답의 전대미문틱한 미증유의 길을 걷게 되는데.. 아 그래서 어찌 되었는데 ????
남은 시합은 딱 한판. 2승2패에서 맞이한 5차전 대결 !
아래 기사제목으로 결과를 유추해보시라.
제목은 ........
"바둑 역사상 최강 10대, 이창호"
"바둑 역사상 최강 10대, 이창호" ?
이게 다야 ?
그냥 최강도 아니고 10대 중에서는 최강..
그건 이 바둑 지거나 이기거나 무관한 얘기아님?
무슨 청소년부 우승 기사 쓰는거야 ?
창호가 바둑 잘둔다는 건 알지. 그래서 5차전 이겼다는거야. 졌다는거야 ?
결론만 말하면 !!!
이창호의 승리였다.
5년은 더 걸릴거라는 제자의 승리가 1년만에 이루어진것.
그런데 차마 바둑계 언론들은 "새로운 황제 탄생!" 이나 " 파천황 !" 대신...
"이창호 최강 " 끝.
마치 응 그래 너 바둑 잘둬. 끝 느낌.
창호 입장에서는, 아놔. "매번 도전에만 만족할거냐메요? 기껏 결승가서 어차피 질꺼 뭐하러 가냐메요? 그래서 이번엔 이겼는데 어째서 지가 죄인이 된 분위기인가요 ?" 라고 할법하다.
마치 영화에서 유아인이 "자기 선생까지 잡아먹어 배부르겠네." 조롱하던 백사범에게,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제가 져야 할까요 ? " 격정토로하던 부분처럼 !
사실 난 이 부분이 영화에서 유아인 최고의 연기 장면이라 본다. 소리지르는 것도 아니고 잔잔히, 하지만 그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흘러나오던 이 장면. (일단 박수~)
암튼지간에 당시 소위 바둑계 잡지, 바둑전문기자들 창호 죄인 취급하다시피 했다.
솔까 자기 노력으로 딴 우승자인데 저런 기사 써도 되나 싶었던게 너무도 많았음.
TV 해설자들은 장례식 분위기 연출 작살이었고..
지금은 창호 자체가 또 하나의 레전드가 되어 다들 안면몰수하며 딴소리들 하지만 당시 글들이 다 박제되어 있는데 ???
그러더니 최고위전에 이어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인 국수전 결승에 가더니 창호 다시 승리 !!
그러자 이런 기사도 나왔었다
경악이란다.
축하는 못해도 세대교체 뭐 이런게 아니라 경악이라니 한일전에도 저런 기사는 안쓸텐데.
상대가 있는 승부에서 한쪽 당사자의 정당한 승리에 '경악'이란 단어 쓴거 자체가 진짜 파천황이자 전대미문 아니냐.
'이 정도는 약과' 인 걸 가져왔는데도 저 정도다. 아무튼 글쓴이 이름은 지워드렸다.
뭐 아래 같은건 일상이고
"슬픈 드라마"
창호는 감정 없나 ? ㅎ 뭐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다. 예전에 누가 선동렬에게 홈런치면 다음날 ooo가 홈런쳤다 가 아니라 "선동렬이 홈런을 맞았다!" 헤드라인이었으니
먼 훗날 일로 치부했던 조훈현vs이창호 대결시대가 임박하니 긴급좌담회.
"작금의 사태...이대로 좋은가?" 느낌
ㅎ그만 알아보자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제가 져야 할까요 ? "
창호 진짜 힘들었겠다.
아무튼 이렇게 1990년 최고위전 결승과 국수전 결승에서 스승의 벽의 한켠을 뛰어넘음으로써 스승의 은혜에 보답한 일전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