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수 9단

by 벽난로

영화 '승부'를 보고 왔었다.

오늘은 영화에 안나왔던 서봉수 9단에 대한 글이다. 영화에 안나온 사람에 대한 영화평이라니 무슨말이지? 하실텐데 일단 들어보시라. 출발 ~~


딱 10년전인 2015년에 천만영화였던 <내부자들>이 개봉됬었다.

거기서 멀쩡한 양복 입고 나온 한 배우가 있었다. 극중 조 상무란 인물.

의자에 묶인 상대배우에게 “청소를 시켰으면 청소만 해주믄 되지 왜 쓰레기도 훔칠라카나요." 하더니

부하에게 지시를 한다

" 어여 (톱 하나) 갖구온나. 여 하나 썰고. 여기하고 여기, 복사뼈 위를 썰어야 안 되겠나." 헐 ㅎㅎ


부하에게 지시하는데, 마치 사무실에서 "폰트 11로 하고, 5부만 뽑고" 하듯 귀찮은 야근 처리하듯 무덤덤하게 말하던 극중 조상무를 맡았던 배우. 바로 조우진.


그때 그 앞에 묶여있는 배우는 다름 아닌 안상구

아니 이병헌..


그랬던 조우진이 이번 '승부'에도 출연하여 이병헌(조훈현 9단)과 연기 합을 맞춘다.

극중 남기철 9단으로서 말이다.


가만있자.. 남기철 9단?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 등 모두 실명 출연을 했는데 남기철 9단이란 실존인물은 기억에 없다.

기사명부 찾아봐도 역시나 그런 이름은 없는듯 하다.


물론 '남기철'이란 키워드로 떠오르는 몇가지 이름들이 있긴 했다.


먼저 한국 바둑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다시피 하신 한국바둑계의 아버지 故조남철 선생 (1923~2006)

조남철 선생의 존함에 바둑을 뜻하는 기(棋)를 넣어 오마주로 작명한 것이 아닌가 싶었고,


아니면, 영화 엔딩에도 나온대로

극중 백선기 사범, 이른바 백사범으로 나오셨던 故남문철 배우 (1971~2021)

바로 아래의 분

몰랐는데 이 영화를 찍고 얼마 안된 지난 2021년에 타계하셨다고 한다. RIP

이분 존함인 남문철을 오마쥬하여 남기철을 작명한 것일까? 싶기도 했다.


감독의 인터뷰나 기사등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 없어서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어쨌거나, 영화 제작에 시간이 지체된 여러 이유중 하나가 주인공인 조훈현과 이창호의 실명사용 등에 대한 허락을 받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건데, 즉 다시 말해 비중이 적지 않은 남기철9단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가명을 사용했다는 것은 즉 해당하시는 그 분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리라.

그럼 남기철 9단의 모델은 누구일까 ?


그 말을 하기에 앞서 한국바둑을 이야기함에 빼놓을 수 없는 '조서시대'를 언급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조서시대이다. 조선시대 아니다.

조서다 조서..

(소녀시대도 아님 --; )


영화에 나온대로 제자인 이창호에게 무너지기 전까지는 근 15년 이상 조훈현 1인 천하시대였는데, 그때 반발짝이나마 뒤에서 따라왔던 한 기사가 있었다.

이름하여 서봉수 9단.

(좌)조훈현 vs (우) 서봉수


그리하여 조훈현 vs 서봉수의 각축 시기를 조&서... 조서시대라고 불렀었다.

1953년생 동갑이었던 둘. 라이벌리로서 조건은 다 갖추었다.


그리고 이를 굳히기해준 영화 속의 한대사 "언제까지 조남시대 봐야하나~~ " 하던 부분

바로 조서시대를 떠올리게 해준다.


*주의 : 조남지대 아님 (조세호, 남창희 프로젝트 듀오그룹 )

조남지대 - 음악성 나름 굿!


남기철 9단은 바로 서봉수 9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두에 영화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안나오지도 않은 셈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극중 남기철이 중요인물인 것이...

이병헌은 제자인 유아인에게 연전연패하며 과음을 하며 무너졌다가 "하던대로 하셔. 숨죽이고 웅크리는거.. 당신하고 영 안어울려~" 는 조언과 함께 우산을 두고 가는 남기철로 인해 각성하게 되었었고,

마찬가지로 유아인도 바둑의 방향성 면에서 많은 방황을 하다가 ""배우려 하지 말고 스승을 이기려고 해 봐라" 는 남기철의 말에 역시 각성을 했었다.


그러고보니 둘다 남기철 아니 갓기철 9단 덕에 대각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럴 바에는 남기철 말고 서봉수와 비슷한 이름을 작명하지 그랬나.

예를 들어 서봉수 대신 서봉석 ?

아니면 서봉서 ? (아 이건 너무 우영우 느낌인가)

아무튼 '서울의 봄'의 전두환vs전두광처럼 이름을 비슷하게 했으면 더 실제적이지 아닐까 싶었다.


1953년생 동갑인 조훈현과 서봉수. 서봉수와 조훈현.

어려서부터 바둑신동이라고 불리며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인 세계 최연소 9살에 프로에 입단하고, 엘리트코스를 밟고 일본 유학을 거쳐 한국에 돌아와 한국바둑계를 제패한 조훈현 9단.


반면, 중학교 2학년때 바둑의 바짜도 모르다가 동네 기원에 가신 아버지를 모셔오라는 어머니 심부름 때문에 처음 기원에 가면서 우연찮게 바둑을 시작하며 정통이론은 개뿔, 그냥 시장통, 동네기원에서 바둑을 배운 잡초 서봉수 9단.

실로 극과 극의 차이


사실 처음에 둘의 사이는 꽤 좋았었는지 아래 같은 브로맨스 느낌 사진도 찍고..

그랬던 이 둘이 서로 복기도 안하는 사이가 된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이다.

아. 복기(復棋)란 것은 바둑이나 장기를 다시 둔다는 의미인데, 바둑이 끝나고 나서 하는 일종의 복습이랄까.. 자아비판(?)이랄까


"내가 아까 이렇게 두었는데, 저렇게 둘껄 그랬나? " "근데 그랬으면 난 이렇게 두고~~" 하고 살짝 토크를 하면서 서로 자신이 둔 수를 살피는게 복기인데, 때로는 본 바둑보다도 길게 이어지기도 한다.

패자는 패배의 아픔을 삭히고, 승자는 승자대로 잘못둔 수를 반성하던 그런 시간.


일본에서 돌아와서 아는 사람 없던 조훈현에게 동갑 서봉수는, 마찬가지로, 정식(?) 입단코스를 통하지 않은 서봉수에게 조훈현은, 즉 서로에게 반가운 친구 느낌이었겠으나, 하도 서로 칼침(?)을 놓다보니 나~중에는 둘이 서로 말도 안걸고, 본척 만척 하는데 언강생심 바둑도 다 둔 마당에 서로 얼굴 맞대고 앉아서 뭐 복기? 복기 ?

바둑 끝나자 마자 억지로 돌만 통에 정리하고 각자 쌩가며 집으로 횡~~하고 가던 사이.

귀한 사진. 조서의 복기장면


하여 영화상의 남기철9단의 진심어린 조언은 사실 영화적 구성이라고 봐야겠다.

물론 서봉수 9단이 조9단을 자신의 라이벌 이전에 스승 격이라고 부른 바도 있었으니 서로 적개심의 차원은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살짝 오글거리는 조언 사이도 아니었을거란 말이다.

즉 영화에서는 살짝 오은영 박사님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맞싸움 상대였다는 거 !


그랬던 조서시대 !

사실 조서시대라고 하고, 라이벌이라고 부르지만, 막상 성적을 들여다보면 조훈현9단 기준 69전 56승 13패.

즉 69번의 기전에서 조9단 56번 우승, 80%가 넘는 승률이니 라이벌이라기에는 좀 일방적인 느낌이었다. 한쪽으로 많이 쏠렸다.

그러다보니, 조서 라이벌시대인 동시에, 조훈현 1인독주시대 라는 두 가지 말이 모두 성립한다는 거다.


서9단이 예선부터 여러판을 이겨가며 어찌어찌 결승에 가도 맥없이 3대0으로 깨지면 여지없이 아래같은 기사가 나왔고,

서봉수 0대3 영패로 물러나다. 도저히 상대가 안되는가 ?

하지만 어쨌거나 반 발자국 뒤에서나마 쫓아온 서봉수9단이 있었기에 조9단도 발전했으리라.


사실 우리 바둑계 초기에는 조남철, 김인, 조훈현, 윤기현, 하찬석 등등 일본에서 유학을 한 기사들만이 우승을 하던 때가 있었다.

바둑두려고? 그럼 일본가야지. 하던 시절.

마치, 학생이 공부한다고 ? 그럼 학교 다녀야지? 하는 느낌.


그런 분위기속에서 서9단은 왠 일본? 난 그냥 동네 기원이나 시장통에서 싸우며 배운대로 할래 하는 느낌으로 한국 바둑계의 한 축을 담당한 것은 서봉수 특유의 잡초스러움과 자유스러움 때문이리라.


9년연속 . 지겨우셨겠다 ㅎㅎ

국수전이란 대회에서는 9년 연속으로 결승전에 조ㅡ서가 맞붙음... 국수전 뿐 아니라 다 저런식.

그러니 영화에서 또 "조-남 시대냐! " 하지 ㅎ

영화에서 조훈현-이창호가 "또 너냐?" 관계가 되지만 원조 "또 너냐?"는 조&서 커플이었다는 말씀.

말씀나온 김에 이번 영화 '승부' 만큼이나 스토리가 풍부할 <승부 2탄. 부제:조서시대>도 기대해본다.


슬슬 마무리하며,

서봉수9단을 언급할때,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 하나 있는데,

1997년도 한중일 대항전인 진로(眞露)배 세계대회 때, 중국,일본 기사를 연파하며 무려 9연승을 거두며 한국을 멱살잡고 우승시킨 것이다.


각국에서 초일류 기사들 몇명 선발해서 나가다보니 전부 세계 최강급이라, 서로간에 실력이 비슷비슷한 강호들끼리 맞붙게 되다보니 때로 한판도 못이기고 첫판에 나가 떨어질 확률이 일단 절반이고, 1회전 탈락이라도 부끄러울 일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어쩌다 3연승 정도만 해도 대단하다고 호들갑인데, 무려.... 9연승이라니!

이는 조훈현도, 이창호도, 이세돌도, 신진서도 못해본 기적같은 결과이다. 우리나라에도 없고, 세계 어디에도 없다. 중국의 기사가 7연승까지 한 적은 두번인가? 있는데, 8연승도 없다.

9연승에서 끝난 것은 서9단이 패배해서가 아니라 전부 다 이겨버려서 이길 중국,일본 기사가 한명도 안남아서이다. 더 있었다면 10 몇연승도 했을수 있단 거지.


당시 중국,일본은 바둑 교과서에 없는 서9단의 잡초식, 생존식 강수를 보며 경악하고 서봉수를 연구하기도 했었다.


PS. 일생의 라이벌. 조훈현-서봉수의 역대 결승대결 목록을 밑에 첨부한다.

서봉수 9단이 이긴 때는 ❤로 표시했다.


1974년 : 첫 결승에서 맞붙은 때. 이때는 서봉수9단의 승리 (근데 첫끝발은... 뭐다?)

제6회 명인전 - 서봉수 (3:1) 승리 ❤


1977년 : 한번 이겼으니 3번 정도야 뭐..

제11회 왕위전 - 조훈현 (3:2) 승리

제2회 국기전 - 조훈현 (2:1) 승리

제3회 국기전 - 조훈현 (3:0) 승리


1978년 : 흠...

제9회 명인전 - 조훈현 (3:1)

제13회 왕위전 - 조훈현 (3:0)


1979년 : 5년만에 승리

제10회 명인전 - 서봉수 (3:1) ❤

제19회 최고위전 - 조훈현 (3:1)


1980년 : 이 해 마지막 왕위전은 건짐. 한해 마무리가 중요하지~ 쿨럭

제5회 국기전 - 조훈현 (3:0)

제11회 명인전 - 조훈현 (3:2)

제24회 국수전 - 조훈현 (3:0)

제15회 왕위전 - 서봉수 (3:2)❤


1981년 : 오 3번연속 결승전 승리!! 나 혹시 넘어선거야 ?

제20회 최고위전 - 서봉수 (2:0)❤

제6회 국기전 - 서봉수 (3:2)❤

제12회 명인전 - 조훈현 (3:1)

제6회 기왕전 - 조훈현 (3:1)

제21회 최고위전 - 조훈현 (3:0)

제25회 국수전 - 조훈현 (3:1)


1982년 : ...는 개뿔. 한해는 쉬어가지 뭐. 쿨럭

제7회 국기전 - 조훈현 (3:2)

제13회 명인전 - 조훈현 (3:1)

제16회 왕위전 - 조훈현 (4:3)

제7회 기왕전 - 조훈현 (4:1)

제26회 국수전 - 조훈현 (3:1)

제1회 제왕전 - 조훈현 (2:0)


1983년 : 거봐. 작년 한해 쉬면서 숨고르기 하니까 올해 2:2

제18회 패왕전 - 조훈현 (3:0)

제8회 국기전 - 조훈현 (3:0)

제14회 명인전 - 서봉수 (3:2)❤

제8회 기왕전 - 서봉수 (4:3)❤


1984년 : 아이구 84년에도 쉬어 가시네

제23회 최고위전 - 조훈현 (3:0)

제27회 국수전 - 조훈현 (3:2)

제19회 패왕전 - 조훈현 (3:0)

제1회 박카스배 - 조훈현 (2:0)

제9회 국기전 - 조훈현 (3:1)

제15회 명인전 - 조훈현 (3:1)


1985년 : 악.. 85...도 쉬시게요 ?

제24회 최고위전 - 조훈현 (3:0)

제9회 기왕전 - 조훈현 (4:3)

제28회 국수전 - 조훈현 (3:1)

제19회 왕위전 - 조훈현 (4:3)

제10회 국기전 - 조훈현 (3:0)

제4회 바둑왕전 - 조훈현 (2:1)

제10회 기왕전 - 조훈현 (4:0)


1986년 : 계세요 ?

제4회 제왕전 - 조훈현 (2:1)

제21회 패왕전 - 조훈현 (3:1)

제29회 국수전 - 조훈현 (3:0)

제20회 왕위전 - 조훈현 (4:3)

제11회 국기전 - 조훈현 (3:0)


1987년 : 드디어 국수전 하나 탈환 !! 얼마만이십니까 ㅠ

제17회 명인전 - 조훈현 (3:1)

제11회 기왕전 - 조훈현 (4:1)

제30회 국수전 - 서봉수 (3:0)❤

제5회 제왕전 - 조훈현 (2:0)

제22회 패왕전 - 조훈현 (3:1)

제21회 왕위전 - 조훈현 (4:0)


1988년 : 와우~ 이 해는 3승3패 !! 다이다이

제31회 국수전 - 서봉수 (3:1)❤

제5회 대왕전 - 조훈현 (3:0)

제6회 제왕전 - 서봉수 (2:0)❤

제19회 명인전 - 조훈현 (3:0)

제13회 기왕전 - 서봉수 (4:3)❤

제32회 국수전 - 조훈현 (3:0)


1989년

제7회 제왕전 - 조훈현 (2:0)

제23회 왕위전 - 조훈현 (4:3)

제14회 국기전 - 서봉수 (3:2)❤

제20회 명인전 - 조훈현 (3:0)


1990년

제14회 기왕전 - 조훈현 (4:1)

제24회 왕위전 - 조훈현 (4:0)


1991년

제15회 기왕전 - 조훈현 (3:1)

제16회 기왕전 - 조훈현 (3:0)


1992년

제15회 국기전 - 서봉수 (3:1)❤

제17회 기왕전 - 조훈현 (3:0)


1995년 : 마지막 결승대결. 이게 벌써 30년 전이라니 !!

제12회 박카스배 - 조훈현 (3:0) 승리


종합결과 : 조훈현 9단 기준

69전 56승 13패 (81.1 %). 즉 69번의 대결에서 조9단 56번(이나) 우승


서봉수 9단 입장에서는 라이벌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성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75~1990년초까지 자칫 조훈현 독주기에 김빠질 수 있는 한국바둑계에 힘을 불어넣어준 서봉수 9단. 그가 있었기에 조훈현이 있었고, 이창호가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간간히 시니어리그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시는 서봉수 9단의 좋은 대국 응원하며, 싱크로 높은 사진으로 마무리한다.

-일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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