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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gan Lee Feb 03. 2023

나이 서른에 갭이어를 갖는 이유

그냥 좀 쉬면 안되나요?

서른살이지만 좀 쉬어가겠습니다


갭이어(Gap year)는 통상적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을 말한다. 곧, 학생의 신분으로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인턴십, 여행,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어원이 이렇다 보니 나이 서른의 어른이가 갭이어를 갖고 있다고 하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특히 내 경우에는 나름대로 탄탄한 커리어를 쌓고 있던 터라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인들이 꽤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개인적으로 내가 이 나이에 직장인 갭이어를 갖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그냥 좀 쉬고 싶어서


뭔가 거창한 이유를 기대했다면 죄송하지만 솔직히 그냥 나는 회사생활에 너무 지쳐있었다. 직전 회사에서 잡오퍼를 받고 만족스러운 연봉협상 끝에 이직을 하게 되었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이직한 회사에 출근했던 첫날부터 앞으로 또다시 무한히 반복될 흔한 레퍼토리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꼈다. 그리고 슬프게도 내 예측은 일말의 반전도 없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경력직으로 입사해 출근 첫 주부터 주말근무를 하게 되었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 그렇게 성공적인 이직에 대한 glory는 사라져 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팀원들의 텃세와 생각했던 것보다 셌던 업무 강도, 그리고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던 업무까지 종합 3종세트와 다름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로도는 급격하게 쌓여갔고, 그렇게 나는 입사를 한지 반년도 안되어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간혹 좀 더 다녀볼걸 하는 후회는 안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 내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당장에 그만두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24/7 예민보스인 건 둘째 치고, 주말에 데이트하는데 잘 놀다가 갑자기 주르륵 눈물이 난 적도 있음)


2. 인생은 어차피 마라톤


초중고 교육과정을 거쳐 대학생이 되고,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꿈과 목표가 확고했던 탓에 숨 돌릴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심지어는 대학생 때 일 년간 휴학을 할 때도 해외 인턴십을 구해 마카오에서 그 일 년을 꽉꽉 채워 일을 하고 돌아왔었다. 졸업 후에는 졸업식도 참석하기 전에 해외 취업이 돼서 바로 출국을 했고, 한국에 돌아올 때도 이직할 회사를 확정해 두고 들어왔다. 


그런데 이렇게 쉼 없이 달리다가 코로나로 인해 처음으로 내 인생 플랜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깨달은 건 인생은 마라톤이고 항상 잘 나가가는 사람도, 항상 못 나가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이십 대 중반까지 내 인생의 속도가 로켓이었다면 이십 대 후반은 한번씩 뒤도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람이 항상 열정적일 순 없잖아요?) 이러다가 또 언젠가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삶에 열정이 생기는 시기가 오겠지 싶다.


3.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어렸을 때는 재밌어 보이고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누군가 내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외교관, 여행작가, 호텔리어 등 (그 와중에 비슷한 결 무엇)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정확히 뭘 하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잊어가고는 했다. 특별한 어른이 될 줄 알았던 나도 결국 수많은 직장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게 왠지 슬프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 인생을 좀 더 즐겁게 만들어줄 일종의 놀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브런치 작가활동도 그중 하나이며 유튜브, 커뮤니티 개설, 방송 출연 등 나만의 소소한 인생의 재미를 찾아가는 중이다.


최근에는 링크드인에서 1일 1 포스팅을 하고 있는데 벌써 3주 넘게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달 기념으로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볼 예정인데 매일 글을 쓰는 게 절대 쉽지 않지만 하루하루 작은 성취를 통해 삶에 활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팔로워가 시작 전과 비교해 2.5배 정도 늘어났는데 꾸준히만 한다면 생각보다 금방 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4. 솔직히 심적으로 여유가 있다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했다 보니 (스물다섯에 시작했으니 요즘 기준으로는 꽤 빠른 듯?) 이미 경력 상 4-5년 차에 대기업에서 선임(대리)이라는 감투도 써봤고, 열심히 돈 모아 투자도 하고 서른 전에 집도 샀으니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대부분 이룬 셈이다. 쓰다 보니 내 자랑처럼 들리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그만큼 열심히 살았고 희생한 것들이 있기에 지금의 이 소소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사회초년생 때 남들보다 소비를 덜하고 열심히 일하고 이직하며 몸값을 불려놓으면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불안정한 시기에 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막말로 재취업을 하더라도 어디든 가겠지 싶은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마치 어른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미리미리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쫄리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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