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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Dec 14. 2022

이민생활 - 부부의 의미

동지여야 할 우리


얼마 전 나의 사랑하는 베프가 마흔 중반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어쩌면 평생 독신으로 살 지도 모르겠다 말하던 친구였다. 친구는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결혼이 특별히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남은 삶을 함께 해도 좋을 만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랬던 친구가 운명 같은 사람을 돌고 돌아 만나, 옛말 그대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일사천리로 결혼을 했다. 정말 친구의 말대로 결혼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던 거다. 이 사람이다 싶으니 형식과 절차는 그저 차례대로 척척 진행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누구나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람이다.' 싶어서 결혼을 결심하지 않을까. 이 사람이라면 남은 인생을 손 꼭 잡고 함께  걸어갈 수 있겠구나 싶어서. 그렇게 '부부'란 법적으로 인정받은 후천적 가족이라는 의미 외에도, 각자의 삶 속에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삶의 동행이자 동반자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특히, 캐나다의 1세대 이민자에게 '부부'는 조금 더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캐나다가 철저하게 가족 중심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가족 다음으로 하루의 긴 시간을 보내는 직장은 사회의 일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는 곳 정도의 개념이라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직장 사람들끼리 회식은 연례행사 정도이고, 친한 직장 동료라 해도 근무시간 외에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드물다. 일반적으로 회사는 아침 일찍 시작해서 4-5시면 퇴근길 러시아워가 시작된다. 일찍 퇴근한 사람들은 보통 아이들과 놀아주고 함께 집안일을 하고 장을 보고 식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가족과 함께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거나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을 수리하고 가꾸는 일을 한다. 상점들은 보통 8시간 영업시간을 지켜 일찍 문을 닫고, 가장 늦게까지 영업하는 술집(pub)도 10시쯤 영업을 마친다. 즉, 8시면 슬슬 도시 전체가 적막해지고 10시면 술집조차 문을 닫기에 딱히 갈 데가 없다는 뜻이다. 가끔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들 일찍 집에 들어가 삶이 가족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가 싶기도 하다.


이민 1세대에게 '부부'가 특별한 두 번째 이유, 그것은 이민자인 우리가 이곳에서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부부가 결혼을 하고 함께 이주해 왔든, 캐나다에 이민 온 후 결혼을 해서 가족을 구성하게 됐든 마찬가지이다. 이미 한국인의 가치관과 문화를 각인한 채 어른이 된 사람들은 사실 이곳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어도 많은 면에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사회에 속해 활발히 일을 하고 친구를 사귀고, 평생 공부하며 살아가고 있다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나와는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배경으로 자라난 사람들과 살아간다는 건, 누가 옳고 그르다 말할 수 없어서 끝내 이해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사각지대를 인정한 채 관계를 이어가는 조금은 헛헛한 그런 것이다. 게다가 죽을 때까지 허물며 가야 할 (빌어먹을) 언어의 장벽 덕에 생각이 다른 것조차도 100%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기본적으로 가족이라는 버블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캐나다 사회에서, 나의 한국적 가치관과 배경에 대한 이해와 함께, 내가 한국어로 표현하는 '나'라는 사람을 바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부부' 뿐인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부 사이가 뜨끈하지 않으면 참으로 더 춥고 외롭고 힘들어지는 것이 이민 생활이다.  게다가 이민 초반의  생활은 한국에서 내가 가졌던 것들을 내려놓고 (물질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부부가 함께 로 애쓰며 살아남아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가족 중 아이가 있는 부부에겐 아이가 주는 기쁨과 위로 또한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해 새삼 말할 필요가 있을까.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잘 살아가시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아이들은 곧 그들의 삶을 찾아 독립할 것이고 아이가 잘 자립 수 있을 때까지 돕는 일, 거기 까지가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캐나다이든 한국이든 부모의 삶의 이유가 아이들에게 투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는다. 게다가 책임감을 중시하며 독립적으로 자라난 캐나다의 아이들은 한국의 아이들보다 조금 이른 시기인 고등학생이 되면 자기 미래를 스스로 계획하고 독립된 존재로 인정받기 원한다. 이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가치관은 이미 1세대 부모의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정을 가진 이민 1세에게 '부부'란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며 삶을 함께 걷는 동반자이자 동지로서 특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언젠가 친구가 남편과 다투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밤 9시쯤 남편과 다툰 후 열받아 문을 쾅 닫고 집을 나와 둘러보니 주위는 온통 깜깜하고, 가게들은 이미 다 문을 닫아서 근처에 어디 혼술 한잔 할 곳도 없었다 한다. 달려가 울 수 있는 가족도 친구도 모두 한국에 있고, 한국말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캐나다 사는 한국 친구는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갈 데가 없어서 차를 몰고 어느 초등학교 주차장에 가서 혼자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한참 울다 보니 주변이 너무 깜깜해서 무서운 마음에 꾸역꾸역 집으로 들어갔다 한다. 그날 밤 친구는 싸운 남편 말고는 말을 나눌 사람도, 세차게 문 닫고 나온 집 말고는 딱히 갈 곳도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외롭고 서러울 수가 없더란다. 이것이 이민자 부부가 싸웠을 때의 현실이다. 남편이라고 다를까......




이민자의 삶이란 이렇게 늘 이방인의 느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이, 그중에서도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이 이민생활의 행복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어쩌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혹시 캐나다 이민을 꿈꾸는 누군가라면 감히 전하고 싶다. 혼자서 이민을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과연 내가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성향의 사람인지, 무엇보다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외로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부부가 또는 가족이 함께 이민을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다른 여러 가지 현실적인 준비 이전에 당신 부부가 가장 힘든 순간에도 서로에게 삶의 동지인지,  함께 있음으로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관계인지를 돌아보시기를 권해 드린다. 어쩌면 당신은 이민을 고려하는 수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캐나다 생활보다는 언제나 내편인 내 부모, 형제자매와 친구들이 있는 그곳, 어쩌다 부부 싸움한 날 밤엔 전화 한 통으로 달려 나온 친구와 집 앞 호프집에서 소주 한 병 비우고 털어버린 후 들어갈 수 있는 한국이 훨씬 더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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