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mas is around the corner. 요즘 라디오를 틀면 자주 들리는 말이다. 온 세상에 축복이 눈처럼 내리는 그날이 바로 며칠 후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캐나다 온타리오, 그중에서도 GTA(Great Toronto Area, 광역 토론토)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걸 알 수 있는 특별한 알람이 있는데 그건 바로 FM 라디오 방송인 CHFI 98.1에서 별다른 멘트도 없이 하루종일 쉬지 않고 한 달여 동안 크리스마스 관련 음악을 틀어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FM 98.1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지붕과 마당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기 시작한다. 아빠들이 퇴근 후에 사다리를 세워놓고 지붕에 올라 크리스마스 등을 달기 시작하고, 엄마들은 현관문에 크리스마스 리스를 꺼내 단다. 지하실과 차고(garage)에 고이 접혀있었던 크리스마스트리가꺼내지고 아이들은 학교 미술시간에 크리스마스 카드와 오너먼트를 만들어 온다. 상점마다 크리스마스 상품이 진열되기 시작하고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 달 동안 천천히 사다 나르기 시작한다. 밤이 되면 동네는 달콤한 사탕맛이 날 것 같은 크리스마스 마을로 변신한다.
2022년의 크리스마스는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는 코비드와 끝나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 세계적 불안과 불황속에 찾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집집마다 장식은 소박해졌고 사람들이 고르는 선물은 간소해졌다. 모두가 함께 움츠린 모습이랄까. 게다가 우리 가족은 차례대로 코비드에 걸려 몇 주째 집콕 중이다. 덕분에 연말이면 여기저기 크고 작은 파티에 바쁘게 참석하던 것도, 매년 가족같이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하던 우리 집 홈파티도 올해는 생략이다.
몇 주째 나의 일도, 아이 등교도 멈춘 상태로 집에만 있다 보니, 예전 같은 들뜸은 없는 연말이지만, 이렇게 조용히 지난 한 해와 나 자신을 돌아보는 마무리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고 선물을 주고받고 시끌시끌 한 해를 마무리하다 보면 설레는 마음에 기분이 좋지만, 약간은 달뜬 상태로 허둥지둥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코비드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집에 갇혀 살짝 열이 오른 몸으로는, 기운도 입맛도 없어서 생각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 될 수 있구나 싶다.
2022년 우리 가족에게는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남편의 염원이던 단독주택(detached house)으로 이사를 했고, 코로나가 잠잠해지자마자 4년 만에 한국에 방문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고, 5년 이상 기다려 온 자궁수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도 경험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나라는 사람은 새로운 일이든 사람이든 친근하게 다가오면 푹 빠졌다가 허우적대고야 똑바로 봐지는 편이라, 늘 실수를 통해서야 배우고 상처받고 나서야 사람을 알게 된다. 내가 그렇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한해 이기도 했다.
내가 그러지 못해서 나는 흐르는 물처럼 잔잔한 사람들이 좋다. 들쑥날쑥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그러나 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는 사람들. 내가 천방지축 나돌아 다닐 때 가끔 잊기도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이 아플 때면 어느새 내 곁으로 와 있는 소중하고 감사한 인연들이 있다. 이제 나이가 드니 진짜는 오히려 요란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내세우는 사람일수록 속 빈 강정인 경우가 많고, 내가 얼마나 사랑이 많은 사람인지를 떠벌리는 사람일수록 사랑하는 건 자신뿐인 경우가 많다.
분위기에 취해 달뜬 마음대신 청명해진 정신으로 돌아보는 2022년의 마지막이 감사하다. 마흔 중반에도 여전히 어른이 덜된 나는 2023년에 조금 더 어른스러워 지기를 기대해 본다. 보내는 해에 많이 연습했으니 오는 해에는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기. 내 자리에서 꾸준히 나의 사명을 감당하며,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기. 늘 반복되던 영어마스터하기와 몸짱 되기라는 새해 계획 대신 올해 나의 목표는 '성숙해지기. 잔잔하게 살아가기.'라고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