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은 온라인 쇼핑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라고 해봤자, 대형 마켓들 조차 일부 상품만, 그것도 작은 사진 한 장과 최소한의 상품정보만 올려놓는 형식적인 수준이었고, 배달비용을 더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었다. 그럼 캐나다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물건을 구입했을까? 물건 하나를 사도 가게에 가서 직접 상품을 보고 직원에게 이런저런 질문도 한 후에 사는 게 보편적이었다. 클릭 한 번이면 상품 사진과 정보를 구체적으로 살펴본 후, 싸고 빠르게 거의 모든 물건을 택배로 받아보던, 심지어 반품 신청조차 온라인으로 한 후 집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한국의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나에게 캐나다의 이런 아날로그 쇼핑 시스템은 처음엔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캐나다에는 온라인 뱅킹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돈을 보내려면 수표를 써서 직접 또는 우편으로 보내거나, 은행에서 머니 오더를 발급받거나 아니면 현금을 들고 가 만나서 전해 주어야 했다. 어디 가서 서류 한 장을 발급받으려 해도, 온라인 발급 대신 직접 가서 긴 줄을 서야 했고 일을 보고 나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있곤 했다. 학창 시절부터 온라인 쇼핑과 온라인 뱅킹을 하고 캐나다 이민 과정에 필요한 서류 발급도 거의 다 인터넷을 통해 처리한 우리 부부에게 이런 캐나다는 참 딴 세상 같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쯤의 한국은 더없이 빨라져 있었다. 우체통이 사라지고 ebook이 등장했으며 온라인 쇼핑과 온라인 뱅킹은 초등학생도 하는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원래부터 우리 모습이었다는 듯 온 국민이 빠르게 디지털 세상을 습득해 갔다. 하지만 그중 하나였던우리 부부도 캐나다에 사는 세월이 늘어갈수록 다시금 캐나다식 아날로그 문화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와 남편은 사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정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좀 옛날 사람인 것이다. 종종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골목길을 떠올리고, 준비물도 사고 뽑기도 했던 학교 앞 문방구나, 엄마 심부름으로 사소한 물건을 사러 다녀오면 잔돈 몇백 원은 내게 수고비로 쥐어지던 집 앞 구멍가게를 아련하게 추억하는 그런 세대 말이다.
그래서인지 뜻밖에 캐나다에서 다시 마주한 아날로그식 생활방식은 어린 시절 박제된 정서와 맞물려 생각보다 빠르게 스며들었다. 물건을 살 일이 있으면 직접 가게에 찾아가서 살펴보고 만져보고 사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직원들과도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좋아하는 카페에 가면 친절한 서버의 이름을 눈여겨보게 되고 다시 찾을 때 진심을 담아 "How are you?"를 묻게 되었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캐나다 사람들은 슈퍼마켓의 Cashier와도 뭐 이리 스몰토크를 오래 하나, 대체 모르는 사람이랑 뭐 이리 할 말이 많을까? 싶던 마음도 점차 사라지고 조금씩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물론 짧은 영어만큼.)
사실 이러한 캐나다 사람들도 마음을 여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옆집에 산다고 같은 직장에 다니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친구가 되지는 않으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바로 단골이 되지도 않는다. 내가 이들의 속을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 만난 관계이든지 이들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충분히 성실하고 믿을 만 한가를 관찰한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주고 신뢰하면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지조(고지식함?)가 있다. 이것이 바로, 손님이 없어 도무지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캐나다의 수많은 소형 로컬 상점들이 망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일 것이라는 게 우리 부부가 추측해 낸 가설이다.
그랬던 캐나다가 어느 날부터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코비드라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초래한 급속한 변화였다. 전 세계가 다 같이 맞이한 재앙,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생명체도 아닌 작은 무엇 때문에 다 같이 출렁이고,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어쩔 줄 몰라 당황하게 한 그것. 이제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도 많이 줄어들었기에 조금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그것이 일으킨 바람이, 영영 바뀌지 않을 줄 알았던, 아니 이것이 캐나다구나 싶었던 그 아날로그 방식을 순식간에 바꾸기 시작했다.
여전히 캐나다에는 특유의 아날로그 정서가 남아있고, 이제는 여러 방면에서 코비드 이전 생활로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 이미 파고든 온라인의 생활화만큼은 지금의 캐나다와 코비드 이전의 캐나다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십 분을 만나도 반드시 만나서 이야기하던 캐나다 사람들이 화상회의와 재택근무를 하고, 인터넷 쇼핑은 보편화되었으며 음식 배달이 꿈만 같던 이 나라에 배달음식이 흔해졌고, 수표도 현금도 아닌 e-transfer(인터넷 이체)가 가장 흔한 결제수단 중 하나가 되었다. 캐나다에는 시스템이 안 갖춰져서 못하는 거라던 나의 생각은 지극히 오만이었다. 필요해지니 순식간에 아날로그 사회가 디지털 사회로 탈바꿈되었다. 그 변화의 속도는 내 세대가 지켜봤던 아날로그 한국이 디지털 한국으로 바뀌어가던 그것보다도 훨씬 빨라서 어느 것이 원래 캐나다의 모습인지 조금은 헷갈릴 정도이다.
온 세계가 향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장점은 아마 내가 열거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를 듣고 자라나 종이책에 침을 묻혀 넘기며 책을 읽고,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에 마음을 전하며 성인이 된 나는,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정을 2번이나 지켜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하기보다는 많이 아쉽고 조금은 슬프기까지 하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맞이했던 처음의 디지털 세상은 편하고 신기하고 경이로왔으나 그 편리함과 맞바꿔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메타버스가 보편화되는 이 시점에 아날로그 타령이라니 웬 뒷북인가도 싶다. 캐나다에서 인터넷으로 한국의 플랫폼인 브런치에 글을 업로드하는 내가 하기엔 민망한 투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살면서 경험해봐야, 잃어봐야 그것이 소중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편리하고 빠르고 무한한 디지털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서로 모르는 우리가 눈 맞춤하며 안부를 묻는 순간 같은 것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을 동물과, 로봇과는 다르게 구별 지어 주는 것이 아닐까. 대형 쇼핑몰 사이트에서 깔끔하게 정리된 상품정보를 보고 클릭으로 원하는 물건을 주문하는 편리함 대신, 직접 가게에 가서 직원과 안부를 나누고 서서히 신뢰를 쌓고, 필요한 물건을 추천받아 살펴본 후 무겁게 들고 오는 수고를 택하는 비효율적인 방법은 어쩌면 AI는 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닐까.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끼어 애매한 세대인 나, 코비드 이후 변화하고 있는 여기 캐나다에서 조금은 더 아날로그에 머물고 싶은 마음을 담아 메아리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