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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Nov 22. 2022

캐나다와 상관없는 캐나다에서 그림 그리는 이야기

단순해지는 연습


어릴 때부터 나는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책, 영화, 그림, 음악, 사람, 그 안에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은 무엇이든 좋아했다. 어떤  경로로든 이야기의 소스가 들어오면 머릿속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이러니 책을 읽다가도 티브이를 보다가도 갑자기 몽상에 빠지기도 하고, 잠에서 깬 후엔 꿈속에서 펼쳐졌던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이불 속에서 반쯤 깬 상태로 꾸물거리기도 한다. 내 머릿속을 그림으로 그리면 어떤 모습일까. 항상 여러 개의 알록달록한 실타래가 통통 튀거나 때로는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과 이미지의 실타래들은 한 번씩 밖으로 풀어내 주지 않으면 가슴이 몹시 답답해져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뜨개실을 엮어 옷을 짜듯이 중구난방인 내 머릿속의 실타래들을 글로 그림으로 엮어 내 보면 결과물은 영락없이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를 닮아있다.




머릿속에 어떤 상념이 떠올랐을 때 습관처럼 글을 끄적이듯이,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면 불쑥불쑥 그림을 그리곤 했다. 글이든 그림이든 들쑥날쑥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규칙적으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꾸준히 해야 깊어진다는 깨달음은 나이가 들면서 생긴 지혜이다. 내킬 때만 불쑥 혼자서 그림을 그리던 내가 얼마 전부터 스튜디오에 가서 꾸준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미뤄놨던 여러 가지 일들 중의 하나를 캐나다에 온 지 11년 만에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이가 5학년이 되고 혼자 걸어서 등하교를 하게 되니 나에게도 자유시간이 늘어나 준 덕이다.


사실 글도 그림도 언제나 술술 엮어지고 모양새를 갖추는 것은 아니다. 재료가 내 것이라 해도 뜨개 솜씨가 엉성하니 자주 엉키고 모양도 허술해져 버리곤 한다. 그나마 글은 나를 담기에 좀 덜 불편한 편인데 꾸준히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그림은 영 내 맘대로 되지가 않는다. 서툰 솜씨로 한 작품을 끝내고 보면 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과는 영 딴판인 그림일 때가 많다. 맑고 따뜻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단순하고도 여운이 남게 그리고 싶은데, 언제나 결과물은 수많은 디테일이 주렁주렁 달린 그림을 그리게 된다.


어느 날 내 고민을 지켜보던 나의 그림 선생님이 일러주었다. "선을 빼고 면으로만 그려보세요." 선 투성이인 내 그림을 어떻게 선 빼고 그려야 할까.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다른 작가의 그림을 모사하며 연습해보니 뭔가 감이 잡힐 것도 같다. 선이 빠지고 훨씬 더 단순해졌는데 깊이는 오히려 깊어졌다. 다음 작품은 모사 아닌 내 그림을 면으로 그려보는 차례다. 젠장. 보고 그릴 때는 할만하던 게 내 머릿속을 그림으로 옮기려니 쉽지가 않다. 자꾸 무언가를 더하고 싶다. 색도 내 맘대로 안된다. 내 머릿속의 색이 종이 위에 얹히니 다른 색이다. 자꾸 덧칠하게 된다. 깊어지려면 덜어야 하는데 자꾸만 더하고 있다. 더하는 게 더는 것보다 쉽고, 덜어 내고 단순해지는 건 훨씬 더 어렵다.



'삶도 그림도 단순해지기는 그래서 깊어지기는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나이가 들수록 안으로도 밖으로도 덜어 내며 살아야 하는데 비워 내야 하는 생각의 실타래는 여전히 많고 내가 가진 물건들도 줄지를 않는다. 여전히 욕심이 남아 하지 않아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기웃거리는 나를 발견할 때면 부끄러워진다. 삶도 작품도 자꾸자꾸 연습하면 나아지겠지...... 망해가는 그림을 찢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그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이 과정이 나를 키우고 있음을 알기에 묵묵히 계속해 본다. 다음 그림은 조금 더 나아지리라. 내일의 나는 더 나아지리라.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내가 나아가는 곳을 기억하며 한 작품씩, 하루씩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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