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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햇살 Nov 15. 2022

캐나다의 교육 - 그 딜레마에 관하여

뛰어노는 아이들,  한숨짓는 엄마들


지난번 '캐나다의 교육'에 관한 단상 같은 글을 업로드하고 나서 몇 분의 댓글을 읽고 나니 문득, 내가 너무 캐나다 교육의 긍정적인 부분만 언급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잘못된 편견을 심어드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나 혼자 보고 덮는 글이 아닌 소수라 할 지라도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것의 무게를 실감한다. 글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글은 상상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어떤 글을 읽고 내 안에 나만의 무엇을 형성하게 하는 힘이 있다. 가끔 글이 화면으로 시각화되어서 펼쳐졌을 때 내가 읽고 상상한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실망하기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의 글이 누군가의 안으로 들어가 펼쳐졌을 때 내가 전달한 무엇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 아침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와 관련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학생들(JK, SK, 1-12학년)은 모두 집에서 먹을 것을 준비해서 학교에 간다. 고학년 학생들은 근처 식당에서 사 먹거나 집에 와서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도시락을 싸간다. 아이뿐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에서도 보편화된, 이 도시락 문화는 엄마이자 아내로서 참 좋기도 하고 귀찮기도 한 묘한 것이다. 아이가 한 명인 나는 남편 것, 아이 것, 그리고 출근하는 날 내 것까지 많아야 세 개의 도시락이면 되지만, 캐나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이 셋의 엄마만 되어도 도시락 대여섯 개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많이 개선되어 질이 아주 좋다는 한국의 학교급식 사진을 보면, 몹시 부러워지는 캐나다의 한국 엄마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이런 캐나다의 엄마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귀한 날이 있는데 그게 바로 Pizza Day다. 대부분의 학교는 원하는 학생들에게 단체로 Pizza 주문을 받고 점심시간에 교실까지 배달해 주는 Pizza Day를 일주일에 한 번 운영한다. 피자 가게와 학교가 협업해서 운영을 하고 일부 수익금은 학교의 여러 가지 교육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데 쓰는 Fundraising(모금활동)의 일종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정에선 이 Pizza Day를 아주 반겨한다. 엄마의 도시락 싸기 휴가날 이라고나 할까.


J로부터의 메시지

오늘은 아이 학교의 Pizza Day, 어젯밤 아이는 '엄마 내일은 쉬는 날이네.'라고 했다. 엄마는 내일도 일이 있는데 뭔 소리인가 했더니 자기의 도시락을 안 싸도 되니 쉬는 날이라는 계산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평소와 달리 8시가 되어도 기척이 없는 것이 이상해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아이가 사라졌다! 깜짝 놀라 여기저기 찾아보니 안방 바닥에 아이로부터 배달된 메시지가 하나가 도착해 있다. 또박또박 한글로 '학교 잘 갔어요.'라고 적은 아이의 필체이다.


'아......!' 

이러려고 아이는 어제 나에게 내일은 엄마가 쉬는 날이라고 말했던 거구나. 나를 쉬게 해 주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준비를 하고 예쁘게 메시지를 적어 안방 문틈으로 밀어 넣은 다음 키득 거리며 학교로 종종 향했을 너의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사랑스러워 미소가, 그다음엔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아...... 너는 이렇게 잘 자라고 있었구나.'

이렇게나 빨리 잘 크고 있는 너인데 느린 엄마는 너의 자라나는 속도를 따라 자라지 못해 종종 안달하고 걱정하며 너를 힘들게 하기도 했구나.




캐나다의 교육은 참 가시적이지가 않다. 초등학생의 경우 교과서를 주교재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집에 들고 온 적도 없기 때문에 일부러 구입해서 아이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는 이상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알 도리가 없다. 성적표(report card)는 한 학기에 한번 받아 오는데 과목별로 a, b, c, d가 적혀있고 책임감, 독립심, 협동심 등의 파트에 코멘트가 달려있다. 아이는 매일 학교 갈 때 가방에 달랑 도시락 가방을 넣고, 손에는 농구공을 튕기며 신나게 룰루랄라 등교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면, 오늘은 뭘 만들고 뭘 하고 놀았다는 얘기 정도를 들려준다. 한국인 엄마는 놀란 가슴을 숨기고 "뭐 새로운 거 배운건 없어?" 하고 묻지만 "Nothing."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한국에서 자라나 새 학년이 되면 양손 가득 새 교과서를 받아오고, 미리 그림 부분만 넘겨보기도 하며 새책 냄새에 설레어했던 남편과 나. 한 달에 한 번 월말고사를 보고 등수까지 적힌 성적표를 받아오고, 시험을 못 보면 회초리로 맞기도 하며 자라난 아줌마, 아저씨인 우리는 가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캐나다의 교육 스타일에 참 막막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교과서는 그저 선생님이 참고하는 부 교재일 뿐,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에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할지는 전적으로 선생님에게 달려있는 캐나다 교육,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것만큼이나 지표로 나타내기 애매한 책임감과 독립심, 그룹 활동과 협동심 등을 중시하는 것이 캐나다 교육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하루 일과를 짚어보면 이렇다. 7시 반쯤 일어나 8시 등교, 3시에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인사하고 가방을 던져놓은 후, 1시간 반 정도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뛰어놀다 온다. 돌아와서 1시간 동안 피아노 연습과 수학 문제집 풀이라는 엄마가 정해 준 제일 하기 싫은 일들을 후딱 해치운 후 또 열심히 뛰어논다. 뭘 하고 노나 보면 농구나 축구, 잡기 놀이나 숨바꼭질.. 등등을 하고 논다. 해 질 녘쯤 집에 들어와 밥을 먹고 책을 읽으며 쉬거나 30분 정해진 컴퓨터 게임시간을 즐기고 9시 반에 샤워를 하고 10시에 잔다. 숙제가 없는지 물으면 무슨 조화인지 매번 학교에서 다 끝냈다 한다. 고등학생인 옆집 아이도 숙제가 좀 더 많아지고 취침시간이 좀 더 늦을 뿐 별로 달라 보이지가 않는다.


이런 아이들의 하루를 지켜보는 뼛속 한국인 엄마, 아빠는 나도 모르게 가끔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아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학교에서 무얼 배우고는 있는 것일까?' 내가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 학교 생활이 잘 상상도 안되고, 비교군이라고는 내 어릴 적 한국에서 빡시게 학교와 학원을 다니던 기억뿐이니, 하루 종일 신나게 놀기만 하는 것 같은 아이들을 보면 슬쩍 한숨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뛰어노는(엄마가 보기 마냥 뛰어노는 것 같은) 아이들, 속 타는 한국 부모. 이것이 이민자로서 바라보는 캐나다 교육의 실상이다.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라나고 있다고 애써 믿으며 웃고 있지만, 가시적으로 질 좋은 한국의 공교육과 사교육을 생각하며 갈등에 빠지기도 하는 그것 말이다. 그러다가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초등학생 자녀가 하교 후 몇 개 학원을 돌아 늦은 저녁에야 집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또 조금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런 것. 한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 애쓰는데 왠지 자꾸 무언가가 빠진 것 같다.




오늘 아침, 엄마를 위해 혼자서 준비하고 등교한 아이의 메시지를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바라는 건 하나뿐인데...... 건강하고 선하게,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 주는 것.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자꾸 더 욕심이 생겼나 보다. 눈에 보이는 수우미양가가 없어 애태웠나 보다. 빠르게 자라나는 아이에게 너의 속도보다 너무 느리게 자라나는 엄마가 사과를 하고 싶어 진다.

'미안해...... 너는 열심히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는데 엄마가 너와 학교 교육을 믿지 못했나 봐.'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아이를 따라 엄마인 나도 열심히 더 성숙해져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이에게 배운 것을 복습해 본다. 사랑이란 그 사람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교육이란 믿어주고 기다리며 함께 성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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