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햇살 Dec 06. 2022

조금 더 자랑스러워해도 돼

대한민국, 파이팅


J는 내가 캐나다에 온 후에도 자주 안부를 주고받는 사촌 동생이다. 오늘은 곧 결혼할 다른 사촌의 결혼식 문제로 J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J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서도 어쩐지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곰곰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뭔가 석연치 않은 이 마음은 전화하는 내내 들었던 J에 대한 애잔함이다. 보통은 시차 때문에 주로 문자를 주고받아 몰랐는데 오늘 통화를 하는 동안 나는 J가 왠지 억눌려있고 기죽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는 동생이지만 J는 제약회사에 다니는 미혼의 직장인이다. 운동을 꽤 좋아해서 그의 SNS에는 수상 스포츠를 즐기거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사진들이 자주 올라온다. J는 어렸을 때 꽤 귀여운 외모와 영특함으로 어른들, 특히 부모님의 사랑과 기대를 많이 받았는데 J의 부모님은 특별히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대한민국 중산층 이셨지만 가끔 무리를 해서까지 J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려고 노력하셨다. 초등학생 J를 위해 강남의 학군이 좋다는 곳으로 세를 얻어 이사를 하는 게 유난스럽다며 나무라던 내 부모님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이제 성인이 된 J는 오늘 너무나 어른스럽게 나와 가족의 안부를 묻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필요한 일을 처리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통화 내내 조금은 과할 정도로 공손한 그에게 자꾸 마음이 쓰였다. 부탁을 들어주어서 고맙다 하는 내 인사에 어쩔 줄 몰라하고, 내가 어른스럽다고 칭찬을 하자 그런 얘기는 태어나 처음 듣는다며 몹시 쑥스러워했다. 현재 대학생인 자신의 친동생이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니는 이야기를 J가 자랑스럽게 하기에,  나도 그가 최근 여러 차례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한 것을 언급하며 칭찬하자 "성적도 안 좋은데 뭘."이라고 대답했다. 성적보다는 완주한 것만으로도 너무 멋지고 자랑스럽다라고 하자 "완주는 다 하는데 뭘....."이라고 다시 말을 흐렸다.


J가 지금 앞에 있다면 술 한잔 따라주며 묻고 싶었다. '너무나 잘했는데. 너무나 잘 살고 있는데. 왜 그렇게 풀이 죽어있어. 부탁한 사람은 나고 잘해준 사람은 너인데 왜 자꾸 내게 고맙다고 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거니. 내가 너를 자랑스럽다고 말한 건 네 말대로 내가 너의 누나이기 때문이 아니야. 네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기 때문이야. 어른스럽다고 말한 건 네가 예의 바르고 또 최선을 다해 가족을 챙기는 모습이 대견해서야. 내가 못하는 걸 해내는 네가 대견해서.' 하지만 이 마음은 조심스러워 전해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J에게 "넌 충분히 매력 있고 멋진 사람이야."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성인이 된 J는 눈에 띄게 비범하지는 않지만 평범하고 성실하게 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평범한 것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수면부족의 입시지옥을 무사히 지나와 또다시 취업경쟁으로 소모되면서도 버텨냈고 자기 몫을 감당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훌륭한 것이 아닌가.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지 않아도, 유명한 무엇이 아니어도, 마라톤 대회에서 등수를 차지하지 못해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 대단한 것들을 해내고도 기죽어 있는 J의 모습이 왠지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캐나다에 와 처음 내가 느낀 것들 중 하나는 내가 참 작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나'라는 사람을 묘사할 때 따라다니던 수식어들, 출신, 인맥, 나이, 외모, 내가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지 따위의 것들은 한국이라는 우물을 벗어나니 더 이상 나를 대변해 주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다. 캐나다에서 만난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내게 궁금해한 것들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캐나다에서 첫 직장 면접을 보았을 때 면접관이 내게 물은 것은 캐나다에서 하고 있는 봉사 활동에 관한 것들이었다. 한국에서도 같은 분야에서 일했던 내 경력이 완전히 무시된 것은 아니었지만, 내게 지금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지를 물어보았을 뿐 과거에 한 일에 관한 질문은 받지 않았다.


그렇게 우물 밖 나 자신이 작게만 느껴지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캐나다에 살아갈수록 점점 자신감을 회복해 갔다. 친구에게 손으로 그림을 그려 만든 카드를 주면 예술작품이라며 소중히 간직해 주고, 어린 시절 체르니 30까지 배우다만 내가 피아노를 치면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칭찬해 주었다. 가끔이지만, 구멍 투성이인 내 영어를 듣고 모국어와 전혀 다른 언어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하냐며 궁금해할 땐 몹시 부끄럽기도 했다. 한국의 많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조금 손재주가 있고, 남들 다 배우는 피아노를 남들만큼 적당히 배우다 말았고, 중고등 학교 필수 과목 중 영어를 좋아했던 평범한 한국 사람인 나를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참 쉽게도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칭찬을 듣고 있으니 내가 조금은 멋진 사람이 된 듯 내 안의 내가 자라나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선 칭찬받지 못했던 것들로 칭찬받으니 처음엔 그 말이 진심인지 그저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는 예의일 뿐인 건지 헷갈렸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처럼 모든 것에 치열하게 살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치열하지 않다'는 말은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하고, 그러고도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고 필요하면 열심히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남들과 비교하거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악기를 배우는 사람은 그 악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배우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사람은 그 나라와 문화가 좋아서 배우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대부분의 것들을 잘하는 일은 보기 드물고 그럴 필요도 없다.




캐나다에서는 요즘 같은 연말이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나 뮤직, 댄스 스튜디오 등에서 학생들이 주인공인 콘서트나 공연을 준비한다. 공연을 위해 커다란 무대를 빌리고, 부모가 보러 가려면 별도로 티켓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러 가보면 두 가지 이유에서 깜짝 놀라게 된다. 먼저 아이들의 공연이 민망할 정도로 서툴고 실수 투성이 인 것에 깜짝 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고 온 아이들에게 휘파람을 불고, 잘했다고 최고라고 활짝 웃으며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는 어른들에게 다시 놀란다. 내가 이렇게 잘했어요를 보여주는 무대라기보다는 아이들에게 큰 무대에 서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동안의 노력을 함께 축하하며 즐기는 축제 같은 분위기이다.


이러한 캐나다 사람들을 보면 나는 함께 즐겁게 웃다가도 어릴 때부터 이토록 작은 것으로 칭찬받고 자라나는 이들이 조금은 샘나고 부럽기도 하다. 반면, 유치원 발표회조차 완벽하게 연습을 하고, 티브이 속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여러 분야의 세계 대회에서도 꽤 완성도 있는 무대를 보여주어 놀라게 하는 한국인들을 생각하면 그 재능에  대놓고 표현할 수 없는 자부심을 느끼다가도 이내 조금 애처로워지고 마는 복잡한 심정이 된다. 다들 잘하는데 열심히까지 하니까 칭찬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대한민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까지 왜 이렇게나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만 할까? 이 질문은 내게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이다. 한국사람들이 너무 재주가 많아서 그렇다고, 좁은 땅에 인재는 많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어쩌면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하고 비교하는 한국인 특유의 성향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지만 나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오늘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월드컵 16강 경기가 있었다. 때로는 실수도 있었고 우리 모두에게 아쉬움도 있겠지만,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세계지도에서 한눈에 찾기 힘들 만큼 작은 나라, 그나마도 반으로 나눠진 그 나라의 선수들이 세계 수많은 나라 중에 오직 32개 국가만 출전할 수 있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을 했고, 부상도 마다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경기를 마쳤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응원을 했다. 너무나 대단하고 장한 일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8강에 못 갔으면 어떤가. 졌으면 어떤가. 마라톤 순위에 못 들었으면 어떤가. 내 사촌 동생 J도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열심히 일하는 자신을, 예의 바른 자신을, 마라톤을 완주하는 자신을 조금 더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J들이 좀 더 자주, 인색하지 않게, 많은 칭찬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1등을 못해도,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아도 "잘했어. 해낸 것만으로도 대단해"라고 칭찬하고, 들려오는 칭찬에 "뭘요. 아니에요." 대신 당당하게 "고맙습니다!"라고 밝게 웃으며 대답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파이팅.




                    

작가의 이전글 아날로그 캐나다, 온라인 쇼핑에 눈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