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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밀 Feb 06. 2023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가족 여행


우리 가족에게 여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소’이다.


좋은 숙소가 아니면 도착해서부터 짜증을 내는 아이들 (와이프도 그러하다. 짜증은 안 내지만,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때문에, 항상 좋은 곳, 깨끗하고 깔끔한 곳만 다녔던 것만 같다. 큰 아이가 조금 큰 이후부터는 계속 그래왔던 것 같은데, 이러다 보니 어디를 가건 숙소비가 만만치 않아, 자주 여행을 가지 못했던 것 같다. (대신, 먹는 것을 나를 제외하고는 다 좋아하지 않아서, 식비는 많이 들지 않는다. 나? 휴가 끝나고 회사 가서 먹으면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수영장의 상태이다.

아이들이야 다 물을 좋아하겠지만, 내가 워낙 수영을 좋아하고 숙소 선정 시 수영장이 우선이기에, 그 영향도 숙소 선정에 매우 중요하다.


다른 부모들의 경우 아이들과 수영장을 가서 놀아주는 게 힘들다고도 하는데, 물론 나도 내 맘대로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수영장에 가면 와이프는 물에 한 번을 안 들어가도 될 정도로 아빠와 아이들만이 몇 시간이고 재미있게 논다. (삼십대 중반, 친구와 동남아를 놀러 가, 나 홀로 아침 9시에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오후 5시에 나온 건.. 아직도 이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이다.)


나와 둘째 딸아이의 여행지 선정에 있어 중요한 ‘수영장’, 와이프의 여행지 선정에 있어서 중요한 ‘깔끔한 숙소’, 첫째 딸아이의 여행지 선정에 있어서 중요한 ‘수영장 + 깔끔한 숙소’. 이것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좋은 숙소를 고집했던 것 같고, 우리 가족에게 여행이란.. 예를 들면, 유럽 배낭여행 같은 것이 아니라, 동남아 같은 휴양지에서 몇 시간씩 수영을 하는 것이 여행이다.. 란 인식이 되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도 커서 더 이상 물놀이에만 집착하지 않을 나이도 되었고,  무엇보다 나 역시 얼마 전부터는 취향이 바뀌었기에, 이제는 물놀이가 아닌, 여기저기 길을 거닐며 사람 사는 것을 느끼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역시 이제는 시장도 거닐고, 관광지도 둘러보고, 좁은 골목길도 걸어보며, 주변의 여러 상황들을 살펴보며 거기에서 재미를 느낄만한 나이가 충분히 되었다고 느껴진다.




이런 감정을 안고, 와이프와 상의하여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우리 가족이 매번 하던 ‘물놀이.. 물놀이.. 그리고 물놀이..’가 아닌, ‘다양한 볼거리 + 사람 사는 맛을 느끼기’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아직 경상 & 전라 지역은 가 본 적이 없지만, 이제는 좀 멀리 여행을 가볼 나이가 되었다.


차로 가는 길은 5시간 정도 걸렸지만, 가는 동안 아이들은 짜증 한 번 없이 너무나 기대에 차서 재밌게 갔다.

5시간 중 3시간은 아이브와 블랙핑크, 뉴진스 등의 걸그룹 노래를 아이들의 생라이브로 무한반복으로 들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도착해서 경험해 볼 여러 가지 재미난 일들을 상상하니, 오래간만에 귀에서 피도 나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해운대에 위치한 호텔이다.

고급 호텔이기는 하나, 수영장은 크지 않아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은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과감히 수영장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놀이는 3박 4일 일정 중 딱 하루만 3-4시간 정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갈치 시장 방문, 해변열차 타기, 해동 용궁사 방문, 감천문화마을 방문, 국제시장 방문, 송도 해상케이블카 타보기, 그리고 고향이 부산인 동료들에게 얻은 여기저기 토박이들만 안다는 맛집 방문 등이다.




체크인 후, 룸에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이 옷을 훌러덩 벗기 시작한다.


“왜? 왜? 왜 방에 들어오자마자 벗는 건데?”


“수영장 가야지!”


“아니, 애들아. 이번 여행에는 우리 수영장 한 번만 가기로 했잖아. 여기 부산에 볼 거 진짜 많아. 수영은 내일 하고, 오늘은 아빠가 일정 이야기 한 것처럼 일단 가볍게 해운대에 있는 골목 시장을 둘러보고….”


아이들이 나의 말을 끊는다.


“엉. 알았어! 근데 그건 내일부터 하고, 지금은 수영장 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막무가내다.

화를 내다가, 엉덩이 춤을 추며 애교를 부리다가.. 온갖 방법을 써가며 아빠를 설득시킨다.

결국, 일정을 다소 변경하여 첫날은 수영장에서 놀기로 한다.


숙소 고려 시, 수영장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예상한 바와 같이 내 만족을 시켜 주지는 못하는 수영장이다. 아이들의 눈빛도 보통 가던 호텔과는 다른 ‘좁은’ 수영장에 실망한 듯하다.


‘그래, 아이들도 수영장에 실망한 눈치이니, 오늘은 가볍게 물놀이를 하고 내일부터는 다양하게 많은 것을 보러 다닐 수 있겠다.’


난 여느 때와는 다르게 숙소 선정에 수영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음을 내심 다행이라 여긴다.




그리고 3박 4일.

우리는… ‘좁은’ 수영장에만 머물러 있는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해변열차 타기와 해동 용궁사 방문만 해 보고, 그토록 원했던 자갈치 시장은.. 근처에도 가 보지를 못했다.

그 많은 방문할 곳 리스트를 작성해 갔음에도, 결국은 거의 수영장에서만 살다시피 한 것 같다.


무엇보다 해변열차를 타고, 해동 용궁사를 방문하고, 해운대 안쪽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와이프와 나는 휴양지가 아닌 관광지를 거닒에 대한 기분 좋음을 오랜만에 만끽하였으나, 옆에서 계속 힘들다, 우리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숙소에 언제 들어가냐, 재미없다, 수영도 안 하는 게 무슨 여행이냐.. 하면서 투덜대는 두 아이들의 이야기를 몇 시간 듣다 보니, 흥이 다 깨져 버렸다




“오빠. 아직 얘네들하고, 어딘가를 걸으면서 보고 듣고 느끼기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지?”


“그러네….”


핸드폰 메모장에 적은 빼곡한 3박 4일간의 일정을 다시금 본다. 가고자 하는 곳의 20% 정도만 실행한 듯하다.

나중에 부산을 다녀와서 무엇을 봤냐고 한다면, 수영장 물만 보다가 왔다고 할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여행을 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냥..

다음에는 친구를 꼬셔서 여행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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