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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랑이 Mar 31. 2023

연남동 생선구이집

"80대 어머니들의 일하시는 모습에도 배움이 숨어 있었다"

구미에 살고 있는 언니가 인생 2막을 위해 펫푸드 스타일리스트에 도전을 했다.

그동안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며 베이킹을 배웠고 집에서 키우고 있는 삽살개 강산이가 아토피가 심해서 늘 간식을 만들어 먹이다가 펫 푸드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했다.


사범과정 교육을 위해 서울에 있는 펫푸드 협회에 6주 강의를 매주 토요일마다 교육받았고  매주 토요일마다 언니의 교육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맛집도 다니고 분위기 좋은 커피숍도 찾아다니며 50이 넘어 시작한 인생 2막을 위해 애쓰는 언니에게 분야는 다르지만 강사의 길을 가고 있는 선배 강사로서 수업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상담을 해줬다.


 언니는 왜 진작에 뭘 배우려 하지 않았을까?

 40대에 시작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후회가 된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도전하고 나를 위한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전혀 늦지 않았다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나도 그동안의 강사 생활을 돌이켜 보면 큰아들이 4살일 때  가기 싫다고 우는 아들을 등 떠밀며 어린이집에 밀어 넣다시피 하고 곧바로 수업이 늦을까 봐 허둥지둥 다른 어린이집 4세 반 수업을 간 적이 있다.  


수업을 받는 아이들을 위해 재미있게 수업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같은 또래 우리 아들이 좀 전에  울었던 모습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그때는 일을 안 하고 온전히 육아만 하는 엄마들을 무척 부러워했다. 남들보다 빨리 시작해도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후회도 남기 마련인 듯하다.


언니를 만나는 토요일이면 교육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근처 맛집을 검색하던 중 교육 장소 바로 옆 건물에 남동 생선구이집 본점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 동네 맛집으로 가성비가 좋고 생선구이 한상 차림 밥상으로 나온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언니 교육이 끝나기 전에 미리 도착을 했고 가게 앞 의자에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딱 봐도 사장님 이신 듯 보였다.  주차가 걱정되어 물으니 가게 앞 도로에 세우면 된다고 정히 걱정되면 건너편 철물점 뒤 우리 주차장이 크게 있으니 거기에 주차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생선가게는 한건물인 듯 보이는데 같은 메뉴의 생선구이집이 또 있었다.  문은 따로 있어서 처음 가는 사람들은 어느 가게가 원조인지 선택하기 어려울 만했다.


나는 블로그를 통해 검색을 했고 눈치 빠른 내가 보기에는 이분이 원조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사장님께 옆집에 대해 물어보니 할머니는 자신 있게 "옆집은 1000원 더 비싸서 9000원이야~ 가서 먹어봐 우리 집과 달리 맛없어! "라고 말씀하신다.


저 자신감에 신뢰가 쌓이는 건 왜일까? 가게 앞 할머니 사장님 전용 의자에 앉아 언니를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해서 택시 기사님들이 차를 세우고 한분씩 끊이지 않게 들어가고 나오신다.  


잠시 후 언니를 만나 들어가니 메뉴는 하나이며 1인상, 2인상으로 나누는 기준은 생선구이 마리 수인 듯했다. 우린 생선구이 정식 2인상을 주문했고  가자미, 고등어, 김치, 깍두기, 어묵조림, 콩나물 무침,  돼지고기 장조림, 고춧잎 양념무침, 미역국 이렇게 나온다.


주방 풍경보니 좀 전에 그 할머니 사장님과 남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계산을 하고 계셨고 주방에는 할머니 세 분이 일을 하고 계셨다.


생선구이는 따뜻하고 비린맛도 안 나고 아주 훌륭했다. 따끈따끈하고 큼직하게 잘라서 조린듯한 장조림도 진짜 맛있었다. 그리고 고춧잎 무침 또한 너무 맛나서 더 먹으려고 접시를 들고 주방 쪽으로 가서 "사장님! 고춧잎 좀 더 주세요!"라고 하는데 주방에 일하시는 할머니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울 엄마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 사장님은 "엄마도 팔십 넘었어?"라고 하시는데 아니요!라고 말은 못 하고 네!라고 대답을 했다. 사실 우리 엄마는 70대 초반인데 그렇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일하시는 세분들의 표정은 힘들어하지도 웃지도 밝지도 않으시고 또한 말도 없으셨다. 그런데 몸은 계속 움직이며 상을 차리시고 크지 않는 주방에서 세분이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고 계셨다.




몸이 일을 기억한다 느낌을 받았다.  그분들이 만든 밑반찬은 엄마들의 세월의 맛이 느껴졌다.

프랜차이즈의 깔끔한 식당은 아니었고 간혹 콩나물은 설익어서 비린맛이 살짝 나기도 했지만 식당 안에서 식사하시는 기사님들은 아주 맛있게 콩나물을 듬뿍 담아 드시는 편안한 모습이었다.


마치 열심히 일한 아들이 일하다가 배가 고파 급히 집에 와서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드시고 있는 듯한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 식당의 또 다른 장점은 혼밥을 해도 어느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고 한 명씩 계속 오면 귀찮을 법 한데 전혀 그런 내색 없이 무표정하게 주방에서 1인상을 내오신다.


손님들 또한 단골인 듯 무표정하지만 익숙하게 들어와서 편안하게 식사하시고 누구 하나 친절 하게 묻고 따지지도 않는 편안한 식사를 하는 그런 식당이었다.


언니와 나는 식사를 하면서 같은 모습을 보고 같은 생각을 느끼고 있었다.

주방에 일하시는 할머니들이 팔십이 넘은 나이에 저렇게 일하실 수 있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50대에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언니는 서울까지 교육받으러 오면서도 내가 나이가 들어서 노안 때문에 잘 안 보이고 감각이 떨어진다는 푸념도 했는데 할머니들을 보니 안 늦었구나라는 생각과 그분들은 평생 밥하시고 자식들 키우고 일하시면서 몸이 일을 기억하고 있는 전문가라는 느낌도 들었다.


남들이 성공한 걸 보면 부럽고 남의 세상 이야기인 듯 하지만 이 세상에 내가 해야 할 일 하나, 잘하는 일 하나 찾아내기는 더 어렵긴 하다.


찾아내지 말고 경험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경험만큼 정직하고 정확한 것은 없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면 용기 내어 도전하며 늦게 도전했다고 후회하지 말고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에 도전한 나를 응원했으면 한다.


연남동 생선구이집 할머니들을 보는 순간 우리에게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고, 그 나이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식당이 요즘 새롭게 오픈하는 깨끗한 인테리어에 친절한 식당과는 다른 분위기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간다는 것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편안한 분위기와 훌륭한 가성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후 언니는 펫푸드 스타일리스트 과정을 잘 마쳤고 헬로 도꾸참이라는 공방을 오픈했다.

늦게 시작했다고 하지만 열정은 대단해서 1일 1 작품을 만들어 인스타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펫간식을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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