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and Greet

절망과 희망의 교차점

by 어쩌다 초등교사

한국의 교사에게 3월은 긴 항해의 닻을 내리는,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교육의 시작점이다.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모습을, 학부모들에게는 전문성 있고 친절한 첫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3월 한 달간 교실도 깔끔하게 꾸미고, 마음도 다잡는다. 이때 학급 운영 전반에 걸친 견고한 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모든 교사들이 긴장감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한다. 보통 3월 셋째 주 수요일 즈음 수업 공개, 학부모 총회를 실시하고, 그로부터 2주간 개인 상담을 실시하여 4월이 되기 전까지 마무리한다. 국가 교육 과정에 의거 학교별 교육 과정을 수립하기에 개별학교에 따라 일정이 달라질 수 있으나, 필자가 근무했던 서울시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러하였다. 안정된 교사와 교실의 모습을 통해 학부모의 신뢰를 얻고 학급 운영에 대한 자신감도 확립한다.


처음 미국에 와서 나는 최소한 3주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학급을 꾸릴 체계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청소가 안 된 교실은 아무리 치워도 정리가 안되었고, 미국식 교실 꾸미기를 어찌해야 할지 감도 못 잡고 있는데, 시차적응도 안된 채 매일매일 이어지는 교사 연수에 파김치가 되어갈 즈음….. 새 학년도를 시작하기 하루 전날 Meet & Greet을 한다는 기절초풍할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부모와 아이들이 새 학년 시작 전 교실을 방문하여 선생님을 보고 인사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교실은 창고 수준이고, 학교 돌아가는 건 하나도 아는 게 없는데, 도대체 학부모를 만나서 뭘 한다는 것인가!


잘 차려진 식탁에서 교양 있는 모습으로 학부모를 만나겠다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은 와장창 무너졌다. 교실이 창고 같은 꼬락서니인데, 최소한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전에 그 교실을 쓰던 선생님이 물건을 죄다 놓고 간 바람에 그걸 버리는 일 만으로도 엄청났고, 교실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고… 미칠 것 같은 상태에서 교육청 교사연수에 갔는데, 다른 선생님들은 다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이 충격이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엄청난 막막함에 압도되어 갑자기 하릴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외모부터 튀는 동양사람인지라, 구석에서 조용히 울었을 뿐인데도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순식간에 웅성웅성 나를 둘러쌌다. 다행히 선생님들이 내 괴로움을 이해하는 듯했다. 선생님들은 '걱정 마! 괜찮아! 나 며칠 전 한국에서 온 Dr. Lee야!라고만 해도 괜찮아. 닥터를 말하는 순간 끝난 거야! 걱정 마!’라고들 농담까지 섞어가며 나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 자신이 이렇게 허술한 모습으로 남 앞에 선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고, Meet & Greet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감도 잡지 못한 채 수십 명의 사람들과 내 공간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엄청나게 압도되었다. 푸르다 못해 까만 바다 한가운데에 맨몸을 던지는 게 이런 느낌일까? 차라리 ‘닥터’ 리가 아니었으면 더 나았을 것 같았다. 마치 ‘깨끗한 쓰레기’와 같은 느낌? 닥터인 게 이 이상 수치스러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은 흐르고 드디어 Meet & Greet의 시간은 다가왔다. 한국처럼 준비하는 건 도저히 도저히 불가능이었다. 그냥 난 미쳤다 생각하고 담대하게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책상을 그룹별로 모아놓고, 선생님들의 조언에 따라 간식도 준비해 두었다. 멘토 선생님이 쓰실 프레젠테이션을 내 스타일로 각색하고, 학부모에게 나눠줄 유인물도 준비했다. 이판사판 이젠 물러날 데가 더 이상 없어 뻔뻔함의 갑옷을 입고 버틸 준비를 완료했다. 남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할 텐데, 나에게 Meet & Greet은 죽느냐 사느냐의 비장한 결전의 장이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정말 내 생각보다 엄청나게 밀려들어왔다. 그저 몇몇 학부모가 오려니 했는데, 한 학생마다 그 가족까지 몰려들어 교실이 꽉 찼다! 그런데, 내가 정말 미쳐버린 건지, 아님 죽기 몇 시간 전에 반짝 기운이 드는 건지, 엄청 여유 있는 미소가 나오는 거다. 그때 난 처음으로 내가 무대체질이었나 했다. 학부모 한 분 한 분 인사하고, 악수하고, 아이를 반기고, 모르는 거 질문하면 ‘나 며칠 전에 와서 아직도 시차적응하느라 힘들다’며 너스레도 떨었다. ‘교실이어야 하는데 창고라서 미안하다. 빨리 공부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놓겠다’ 하니 학부모들도 함께 웃으며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달라고 한다. 교실은 개판인 주제에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훌륭한 교사였는지도 잊지 않고 자랑하였다. 학부모들은 이 특이한 교사를 특별하게 생각해 주는 듯 따뜻하게 인사하고 갔고, 아이들은 나를 관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난 아이들을 미국에서 낳았다. 그 당시 남편과 유학 중이었는데, 한국에서 산후조리 와 줄 사람이 없었다. 남편과 엄청나게 걱정하며 나름 준비하고 신경 쓰던 와중, 출산을 2주 앞둔 날 초음파 중 오늘 당장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로 입원해서 유도분만으로 갑자기 아이를 낳았다. 황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막상 진통도 없이 너무도 수월하게 잘 낳았고, 지인들이 미역국과 보양식을 잔뜩 잔뜩 해주는 바람에, 애 낳은 나뿐 아니라 남편까지 그 음식으로 몸보신을 할 정도였다.


Meet & Greet이 바로 그러하였다. 아무런 준비가 없던 나는 그날로 나의 무식이 드러나며 모든 게 끝이겠거니 했는데, 이는 희망의 서막이 되었다. 난 수월하게 치러내었고, 작은 성공 덕에 나름 용기도 얻었다. 비록 처음 겪는 이벤트를 사전 지식도 없이 맞이해야 했지만, 한국에서의 20년 가까운 교직 경력이 헛되진 않았나 보다. 나의 건강과 사회적 관계 덕분에 내 갑작스러운 첫 출산이 수월했듯, 교사를 20년 하면서 겪은 수많은 위기 대처 능력이 빛을 발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별처럼 소중한 내 주위의 사람들. 나 혼자만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었던 일들이 주변의 도움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나도 언젠가 어느 누군가의 별이 되어 어둠 속의 희망이 되고 싶다.


겸허함과 감사함으로 또다시 다가올 미지의 위기에 무소의 뿔처럼 담대히 나가려 한다. 바다가 저기에 있는 한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들기에… Dr. Lee, 무서워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올라 타! 보기보다 짜릿해!


p.s. 아기는 정말 수월하게 낳았다. 그런데 키우는 일은 매일이 새롭고 고통스러운 도전이었다. 생각보다 수월했던 Meet & Greet 당일에는 앞으로 일어날 엄청난 어려움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차라리 그게 나았다. 알았으면 그날로 짐 싸서 되돌아갔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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