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꿈에서 깼다

by 싱클레어

찬란했던 스페인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 나는 이 사회에서 밥벌이를 해야하는 시기를 앞두고 있었다. 학점은 어느정도 봐줄만했고, 스페인 교환학생 시절동안 스페인어 실력도 늘었고, 무엇보다 오랜기간 유럽에서 지내다보니, 소심하고 조용했던 성격도 조금은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변해있었다.(다시 한국에 오래 살다보니 또 성격이 돌아오긴 했지만..) 학교를 다닐 시간은 고작 1년 남아있었다.


당시 코로나가 유행을 하기 시작했던터라, 학교는 원격강의를 도입했다. 워낙 집에서 학교가 멀었던 나에겐,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남는 시간에 나는 앞으로 무얼하며 살 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무엇을 할지 깊은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외교부에 들어가야지.”라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는 과정이 싫진 않았다. 나는 워낙에 외국어도 좋아했고, 정치외교학과 전공 수업 덕분에 외교부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과목을 이미 공부를 해놓은 상태였다. 아 참, 스페인에 갔다오니 20대의 중반을 바라보는 나였기에 나는 현실적으로 될 가능성이 높은 외무영사직에 지원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시험에서 한 가지 변수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PSAT이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빠른시간에 풀어내는 시험에는 약했다. 꾸준히, 천천히 공부해서 지식을 쌓은 후에 보는 내신 시험이 나에겐 더 잘 맞았다. 그래서 실제로 수능은 생각보다 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왠걸. PSAT은 완전 수능형 문제였다. 빠른 시간안에 정확하게, 그리고 응용해서 풀어내는 것. 그런 것들을 요구했다. 공부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피셋 공부에 바쳤다. 시간을 재고 꾸준히 풀고, 오답노트를 만들고 정말 열심히 했건만..! 나는 피셋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2년가량의 시간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를 했지만, 결과는 불합격. 절망적이었다. 내가 내 꿈에 다가가겠다는데, 심지어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데. 왜 안되는걸까? 내가 멍청한걸까? 자존감까지 깎아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아니었다. 그렇게 피셋을 불태웠기에, 365일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에, 취직은 정말 쉽게 할 수 있었다. PSAT보다 훨씬 쉬운 NCS(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보는 시험)가 나에게는 쉬울 수 밖에 없었다.


아마 더 해볼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 해봤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합격했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가끔은 들곤 한다. 하지만 그만둔 걸 후회하지도 않는다. 나는 2년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잠도 줄이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줄여가며 공부했고, 해볼 수 있는 건 모두 다 해봤다. 그래서 마지막에 ‘불합격’ 글자를 봤을 때, 생각보다 덤덤했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또 유통업에서 근무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나는 꽉 막히고,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환경을 못 견뎌한다. 숨이 막힌다. 사실 지금 직장에서도 가장 힘든 게 그런 부분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자기주도적인 환경에서 나는 빛을 발하는 사람이다. 취업을 하고 깨달은 사실이다. 취업을 하기 전엔 전혀 알 수가 없던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그래서 만약 내가 외무영사직을 합격했더라도 아마 나는 보수적인 공무원 조직 문화에 숨이 막혔을 거다.(물론 지금만큼은 아닐거라고 자부한다.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10년간의 꿈에서 깼다. 무엇이 남았나. 적어도 한 가지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정말 달콤한 꿈을 꾸었고,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고. 그래서 후회는 없다고. 그 꿈에서 깨어 현실을 만났을 때, 그 현실은 고통과 고뇌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배운 것도 많았다고. 치열하고 찬란했던 나의 10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