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시간동안 꿈꿨다. 외교관이 되기를. 간절하고 간절해서, 뒤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꼭 이룰 것이라고. 끊임없이 되뇌었던 나의 소중한 꿈이었다.
14살이었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라는 비정부 민간단체를 알게되었다. 그 홈페이지에서 우리나라의 땅,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 사이버외교관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하지만 학교 역사시간에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꼼꼼하게 배우면서, 나는 한국사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고, 누구보다 재밌게 공부했다. 일제강점기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공부하면서부터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본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올랐고, 위안부 할머니들, 독도, 그 외에도 여러 역사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아직도 남아있는 친일잔재들에 대해 혼자서 끊임없이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그 해 가을이었던 듯하다. 나는 반크에 가입했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위해, 그리고 단지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그 전까지는 이렇다할 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작가가 꿈이었다가도, 피아노를 잘 치니 피아니스트가 되어볼까, 아니! 대통령할래. 라며 여러가지 꿈을 꿨다. 당연했다. 나는 그 전까지는 고작 초등학생이었고, 공부보다는 뛰어노는 게 좋을 나이였고, 어떤 꿈도 제약없이 꿀 수 있는 어린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처음으로 가슴이 두근두근, 내 가슴이 뜨겁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 때 깨달았다. 아, 이게 꿈이라는 거구나. 이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구나. 그 날부터 외교관과 관련된 책은 모조리 읽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누구보다 역사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그 꿈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 그래서 영자신문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외교관의 자질, 외국어와 역사공부, 그리고 여러 지식 함유. 그 모든 걸 갖추고 싶었다. 영자신문 동아리에서 영어로 독도에 대한 기사를 내고,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 위안부할머니에 대해 발표했다.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 꿈이 내게서 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누가 나에게 외교관이 왜 되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당당히 대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어. 잘못된 걸 바로 잡는 사람이 되고싶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뜬 구름 잡는 소리 같아 보일수도 있겠지만, 진짜였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때 수많은 책들을 읽고, 학교를 경험하고, 사유하면서 형성한 나의 가치관은 지금까지도 나를 지탱해주며, 나를 밝게 빛나게 해준다.
대학생이 되었다. 영어는 꽤 잘했으니, 이제 다른 언어였다. 스페인어였다. 프랑스어, 독일어보다 훨씬 블루오션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스페인어. 설레는 대학생활 속에서도 나는 배움을 놓치지는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은 걸 해야하는 사람이었다. 남들 다하는 경영, 경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언어와 정치외교학과, 즉 사회과학을 배우고 싶었다.(사실 철학과도 관심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그런 학과를 선택했고, 아직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스페인어를 전공했기에 나는 앞으로 유럽에 나가서도, 남미에 나가서도, 그들의 문화와 사회를 더 빨리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 그리고, 정치외교학과를 이중전공했기 때문에,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나의 가치관, 그리고 옳은 길을 찾아나가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으니까.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장장 10년의 긴 시간동안 나의 마음 속엔 외교관이라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이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수많은 좌절을, 그리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꿈이었다. 평생을 외사랑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간들을 후회하진 않는다. 어찌되었건 꿈을 꾸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