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회사에서 배운 것

by 싱클레어

이 브런치북은 한편으로 나의 성장에세이다. 마트 업무의 세세한 면을 알려주는 연재글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을 내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마트에서 2년 가량 근무하며 배운 것이 있다. 아주 간단하고, 대부분의 모든 고전문학 작품들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와 같다.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스스로를 사랑하라.


최근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라는 소설을 읽었다. 그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크눌프와 하느님의 대화였다. 그 대화 중 하느님의 말을 조금 들고와봤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황했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했고 조롱당했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당했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했었다.“


크눌프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간다. 죽음을 앞둔 그는 하느님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을 듣고 납득을 하며 생을 끝마친다. 데미안 다음으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따뜻해지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언급한 이유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삶의 정답은 없고, 모두의 삶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것은, 업무지식이 아니었다. 사회생활하는 법도 아니었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법도 아니었다. 2년의 직장생활을 돌아봤을 때,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사실은, 이 세상 어떤 것도 나 자신보다는 소중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난 오직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야 했던 것이다. 일을 하면서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인신공격을 하는 상사를 만났기에 나는 그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고, 내 자신을 더 보듬어 줄 수 있게 되었다. 어리다고 만만하게 보는 직장동료들 덕분에 나는, 혼자서도 강해질 수 있게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갔다. 그 방법을 배우기 위해 한동안 놓았던 책을 다시 들었고, 왕복 3시간의 출퇴근길의 모든 시간을 책에 바쳤으며, 수많은 현자들을 만나며 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소리지르고 떼쓰는 업체들과 고객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그들을 동정하게 되었고, 똑같이 되지 않고, 올바른 길을 찾아나서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 받은 월급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시간을, 사랑하는 예술과 문학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다.


마트에 처음 들어와서는 정말 힘들었고, 여전히 인간관계로 인해 가끔 우울이 내 마음을 삼킬 때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덕분에 내 눈으로 나 자신을 온전히 들이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힘들고 불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하는구나. 나는 소중하고, 그 누구도 나를 절망에서 구해줄 수 없고, 위로해줄 수 없구나. 그 모든 건 내가 나 스스로를 믿고 사랑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거구나. 2년 전에 마트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삐까뻔쩍한 고층 사무실에서 내 업무만 제대로 끝나면 집에 갈 수 있는,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동기들을 만날 수 있는 본사였다면 나는 지금 조금 다른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기꺼이 내 손에 붙잡지 않았을 수도 있고, 현실에 안주하며 나라는 사람에 대해 탐구하며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또한 크눌프가 만났던 신이 나와 함께 하며 나를 성장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내 옆엔 헤르만 헤세의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이 놓여져 있다. 이 책의 클링조어의 말 중 한 구절로 1부를 끝마치려고 한다.


“오늘은 결코 다시 오지 않으며 오늘을 먹고 마시고 맛보고 냄새 맡지 않는 사람에게 영원히 절대로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태양은 두 번 다시 오늘처럼 빛나지 않을 거야.“


2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배웠다. 오늘을 마음껏 느끼고, 눈에 담고, 귀로 듣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자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