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공정함’이라는 게 있긴 할까

by 싱클레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일을 함에 있어 가장 큰 가치를 두는 것은 바로 ‘공정함’이었다. 뻔뻔하게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정부의 행태가 불공정해서 외교관이 되고 싶었고,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이 싫어서 기자가 되고 싶었던 나의 성향을 본다면, 불공정함을 참지 못하는 건 어쩌면 나에겐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본사와 멀리 떨어져 있는 현장근무라 보는 눈이 많지 않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유독 부조리함에 예민한 내 성격 때문인지 나는 회사에서 불공정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나에게 너무도 충격적이고, 힘들게 다가왔다. 1순위 가치관이 매순간 침해당하는 회사에 있다는 건 나에겐 고문과도 같았다.


솔직히 첫 1년차 땐 일도 사람도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책임을 다했다. 배우려고 노력했고, 맡은 일을 떠넘기거나 아예 하지 않거나 하는.. 그런 무책임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1년 후 마케팅팀으로 발령이 난 후엔 전의 업무보단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내 나름 최선을 다했다.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유통업 특성상 고된 일도 있기 마련이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상사들 눈엔 그런 내 모습이, 내 노력이 보이지 않았나보다. 아니, 보였지만 못 본 척을 했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2년이 넘게 일하는 동안, 다른 남자 동기들에겐 고과를 주었지만, 나에겐 단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주겠다고 말을 해놓고 결과적으로는 주지 않았고, 나중에서야 주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을 더 챙겨야 해서.. 라는게 이유였다. 그 챙겨야 하는 다른 사람은 일은 안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 즉 승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 혹은 빽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불공정함이 너무 싫었다. 내가 어려서? 내가 여자라서? 그게 정말 이유가 되는건가? 억울함에 눈물이 터진 날도 있었다. 일한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건 참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비참했다.


2024년의 말미엔, 출퇴근길이 너무 힘들어서(왕복 3시간 이상 걸렸다) 집에서 가까운 마트로 인사 이동 신청서를 냈다. 이유는 많았다. 거짓말도 아니었고 실제로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었다. 급격한 스트레스로 인한 알레르기와 비문증, 경미한 공황장애,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결혼. 마음이 불편하다면 몸이라도 편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간절한 심정으로 지원했다. 심지어 본사 인사팀 과장님에게 상담까지 받았다. 내가 겪고 있는 건강문제, 사람문제, 그리고 결혼 이야기까지. 나는 가감없이, 거짓말을 단 하나도 보태지 않고 말했다. 집이라도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본사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지만 결과는? 나는 어느 곳으로도 인사발령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 빽, 아는 사람 빽을 쓴 직원들은 원하는 곳으로 쉽게 갔다. 내 건강 문제와 결혼보다 그들의 빽 유무가 그렇게 중요했던걸까? 왜 회사를 다니면서 이렇게 실망감과 박탈감을 느껴야하지? 내가 원한건 단지 일하는 곳에선 열심히 일하고, 일한만큼 대우 받는 거였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선 그건 절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 나도 빽이 있었다면 굳이 상담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지점으로 갔을 것이고, 고과도 훨씬 쉽게 받았을거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건,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는 거였다. 빽이 있어도 쓰고 싶지 않다. 정치질을 해야만 고과를 받는 것도 싫다. 이유는, 그건 공정하지 않으니까. 누군가는 남들보다 노력했을텐데, 나의 회사가 했던 행태는 그런 노력을 처참히 짓밟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트에는 정이 들었다. 마트에서 일하는 게 마냥 싫은 것이 아니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부조리함이 싫은거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친구들과, 가족들과, 남자친구와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래 그렇더라. 어쩔 수 없더라. 빽은 있다면 쓰는 게 좋지.”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원래 그런건 없다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조직생활에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특히나 많은 사람이 모여있고, 정치질을 해야 성공하는 조직일수록 더. 그런 것들을 나는 배워가기 시작했다.


어쩌다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온 마트에서 나는 마트 업무 이외에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배워가고 있는 듯 하다. 이 끝은 어디일지 매일 매일 불확실함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이전 05화진상고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