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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맥스 Feb 28. 2024

2화) 남자, 51세에 오븐을 들이다

남자 51세에 홈베이킹을 시작하다 2 

무소유 법정스님 길상사 결론은 겨우 오븐이란 말인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 삶의 소명은 무엇인가?

지천명을 고민하다 인생에 가장 큰 고민이 오븐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로 귀결되는

이런 터무니없는 코미디를 하고 있다. 


40년전, 

커서 큰 일 할 놈이라고 늘 말하던 우리 엄마.

큰 놈 될텐데 가방도 넘어다니지 말라고 누나들을 혼내던 엄마. 

그 큰 일 할 놈이 오십되어서 큰일은 못하고 오븐을 살지 말지로 며칠을 고민하고 있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이 글을 읽으면 얼마나 억울할까?) 


월화수목금금금을 몇년 살았던 때문이지....

그냥 세포노화가 심해지는 50대에 접어들어서인지......

아니면 코로나 후유증인지..... 

아니면 이것들의 합인지 알 수 없으나, 

작년에 한참 몸이 안 좋아지면서

정형외과 안과 비뇨기과 한의원 여러 병원을 동시에 다니기는 했지만

죽을 병은 아니었다. 

병보다는 이제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구나는 허탈감 또는 박탈감 또는 불안감...

그런 감정들이 더 컸다... 

카드번호 16자리는커녕 여덟 자리도 못 외워서 입력시간 지났다고 다시 하라고 하고

노안이라 번호를 다시 보려면 안경을 벗어야 하고

그사이에 입력시간 끝났다고 할 때마다 다시 확인되는 나의 늙음. BEING Fragile.....old and weak....

더욱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때 한참 보고 들었던 말씀이 법정스님이었다. 

법문을 한 달간은 매일 들었고

스님이 활동하셨던 성북동에 길상사에도 주말마다 갔던 거 같다.

그냥 마음이 허해지는 느낌을 채우러 가는... 

스님 묵었던 진영각 마루에 앉아서 담너머 나무를 한참을 보던 그런 길상사. 


길상사. 평안함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스님말씀 중에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워졌느냐에 있다.



그래 무소유지.. 가지려 하지 말고 불필요한 것은 덜어내야지..

그런 마음으로 살고자 그렇게 다짐을 하고는 ㅎㅎㅎ

그런데 지천명을 고민하던 나는 오븐을 살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것도 인생의 고민이 되었다. 그냥 코미디다. ㅎㅎㅎ


쿠팡이 답을 주다 

인생최대의 고민은 쿠팡이 마무리해 주었다. 

베이킹 오븐을 입력하니 답이 나온다. 

역시 쿠팡이다... 쿠팡 주식을 사야 할 거 같다....

예전에 미국에서 쓰던 자리차지하던 큰 오븐도 아니다

10만 원대의 작은 오븐, 미니오븐이다. 

후기를 몇 개보니 나쁘지 않다.

주문했다. 

다음날 도착했다. 

쿠팡 멤버십도 가입했다. 

그때 하길 잘했다. 이날 이후 우리 집에 쿠팡맨은 매일 왔다.

밀가루 머핀틀 오트밀 소형저울 카카오가루 베이킹소다 베이킹파우더 등등등 등등등

베이킹의 친구는 밀가루가 아니라 쿠팡이다.

다시 쿠팡 주식을 사야겠다 ㅎㅎㅎㅎ 

미니오븐 이후 쿠팡에서 구매해야만 했던 리스트들은 다음번에 자세히 보도록 하자. 

 

 

미니 오븐이다

작다. 화력도 약하고 조절도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역시 오븐이다. 

바로 둘째가 원하는 초콜릿케이크를 돌렸다. 

레시피는 유튜브 하다앳홈을 따라 했다. 

5분 영상을 보면 간단하게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밀가루에 설탕좀넣고 버터좀 넣고 크림좀 넣고 베이킹파우더 넣고 

소금넣고 카카오파우더 넣고 반죽해서

오븐 170도에서 30분 돌렸다. 

 

그런데 진짜 케이크 비슷한 것이 나왔다

험한 것이 아니라 귀엽고 좋은 것이 나왔다!!!!!!!!!!!!!!!!!!!!!!!!!!!!!!!!!!!!!!!!!!!!

웬떡이 아니고 웬 케이크.  

야호~~~~~~~~~~~~~~~~~~~~~~~~~~~~~~


나는 이때 살짝 느꼈다. 

나의 천명은 밀가루에 있는가 보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또다시 물욕이 차오른다

될 거 같다.

어렵지 않았고 대충 따라 하니 케이크가 나왔다. 

'자 그럼 이제 유튜브에 있는 모든 빵을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거잖아'

유명 베이커리 빵도 내가 모두 한번 만들어 보리라. 

물욕이 솟구친다. 


카스텔라 케이크 머핀 스콘 쿠키 마들렌 휘낭시에 카스텔라 소금빵 바게트 에클레어 

다나와 내가 다 만들 테다.

그럼 반죽기... 휘핑기...부터 필요하다. 

오십견에 어깨도 아파죽겠는데 반죽하다 휘핑하다 팔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그런데... 그런데 내 지천명이 정말 밀가루일까?

다시 두 번째 인생고민을 나의 첫 번째 케이크 초콜릿케이크가 가져왔다. 

반죽기... 휘핑기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쿠팡에 주문을 하나... 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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